인생을 굳세게 견디어 나가는 데는 다음의 두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세상 늑대들과 함께 으르렁거리며, 눈앞에 있으면서도 만인에게
고루 가지 않는 삶의 향락의 한 몫을 얻고자 맹렬하게 서로 물어뜯는
생활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생활이며, 유물론의 이른바
<생존경쟁>이다. 또 하나는, 참되고 성실하고, 기쁨에 충만한 신과의
교제로까지 정신을 끌어 올리며 사는 길이다. 신과 교제를 갖는 사람에게는
생존경쟁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또 근심이나 좌절은 마음에 생길 수가 없다.
이 두 가지 방법의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생활은 항상 결함투성이의
결과밖에 안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끊임없는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생활의 양식을 삼아 살고 있는데, 그 상태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거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인 것이다. 그들은 신을 상대로 또 동시에 세상을
상대로 부단히 싸움으로써 많은 힘을 너무도 빨리 소모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이것으로 악인이 되어 버리는 것도 아니며, 단호히
세차게 선인이 되고자 하지도 않는 인류의 대부분의 생활이다. 단테는 이같은
사람들을 지옥의 입구에 놓았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마음의 불안과, 양쪽의
강력한 동료들로부터의 경멸에 골치를 앓는 끊임없는 음울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정의로부터도 은총으로부터도, 그들은 멸시 당한다. 우리도 그들에 대해
말하지 말고, 그저 보고 지나치자. (단테 신곡 지옥편 제 3곡 50행)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사람들 축에 끼이는 일이 없도록, 서둘러 단호히
결심을 하라.
이사야 61:1-3.10, 히브리서 10:35-39. 요한계시록 3:12.15
꼭 같은 밤과 낮
이제 연장은 망가졌나이다.
가장 어려운 일이 이루어지고,
내 모든 행위는 무로 잠겨 버렸나이다.
주여, <당신의 행하심>은 언제 시작되나이까.
깊은 꿈속으로부터 서서히,
하나의 모습이 나타나 보인다.
아득한 저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참아라, 소망은 곧 이루어지리라.>
내 마음이여, 너는 죽음도 생명도 아니다.
조용한 신뢰에 충만해 있다.
너는 어둠도 빛도 아니다.
가슴이 설레이는 새벽 어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