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2) 한창 시련에 부딪쳐 있을 때에 사도의 이 훈계에 따른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도 자신도 한창 심한 고난 속에서 과연 이와 같은 무한한
기쁨을 항상 가졌는지 어떤지 의심스럽다.
실로 그리스도조차도 그것을 갖지 못하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26:37
그러므로 언제든지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의 삶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며, 다만 시험을 의미하는 데 불과한 시련은,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필요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시련에 부딪쳐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러한
말만으로는 여간해서 납득되지 않는다. 그들은 왕왕 그것을 그들의 고난에
대한 조롱이라거나 무정한 말에 불과하다고 풀이하는 수가 있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에게 진정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막연히 생각에 잠기거나,
나아가서 상처를 받고 고뇌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그리고 오히려,
단지<주여 도와주소서>하는 단순하고 짧은 신음의 기도로써도 좋으니,
<구원이 올 산을 향하여 눈을 들도록(시편121:1)> 하라는 것이다.
동포교회 찬미가 374번, 히브리서 10:32-39
개인에게 있어서나 민족에 있어서도 시련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계속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어느 쪽에 있어서도, 어느 시기에 이르면, 그 이후의
시련들은 모두 무의미해지며, 따라서 그후에는 오직 신의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도상에 있는 것이다. 예레미아 2:19.20.25.
산 중턱에서 (요한 계시록 3:8)
신이여,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무거운 빗장이 파괴되고, 문이 열렸습니다!
<온건히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저는 드디어 바늘구멍을 빠져 나왔습니다.
제 마음은 진실한 뜻을 관철할 용기를 얻어
풀려나고, 영혼은 깊이 쉽니다.
시대를 심판하기 위해 오는 우뢰가
멀리 아득히 울리는 것이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