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힐티)

2월3일

별관신사 2014. 3. 10. 03:36

그리스도 자신이 신을 분노의 아버지 운운하고 표현한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런 표현을 가장 했음직한, 저 방탕한 아들의 비유(누가복음 15:11이하)에
있어서도 그렇지는 않았다. 또 구약성서도 그 가장 아름다운 대목에서는

그와 같은 견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이 뒤에 와서 이와 같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떠들어대어,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신앙을 꺼림칙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신의 노여움이란, 실은 신이 우리들의 생활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지상의

어떤 재보가 있더라도, 또 학문, 예술, 교통의 온갖 진보가 있더라도, 우리의
생활은 오늘날과 같이 내적으로 황폐하고 위안이 없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이 대지는 옛날 그대로이며, 아마도 전보다 잘 가꾸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햇볕>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 속에 있어야
할, 또 있을 수 있는 <축복>이 없는 것이다.
이같은 벌은 순전히 저절로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불손하게도

멸시당하는 신의 불변의 세계 질서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성실히 회개하여 신의 질서로 돌아간다면, 사함을 받을 것도 또한
확실하다.


신의 축복

아침의 이슬과 저녁의 비를
당신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당신의 축복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우리들 위에 쏟아집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달려
하루도 두려움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당신에게 매달려
따른 자들 가운데 멸망한 자는 없습니다.
신의 축복이란 어떠한 것인가.
아직 그것을 규명한 자는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그것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잠들어 있을 때, 조용한 발걸음으로
축복이 찾아 드는 자도 있으며,
그 이웃집 근방에는
부단히 먹구름이 자욱히 끼는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천부의 소질을 타고났으면서도
모든 기쁨에게 외면 당하는 자도 있거니와,
고통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행복에 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여, 당신 백성의 후예는
당신의 진실한 과실을 먹을 수 있으니,
다른 자들은 자신의 죄만이 아니라
조상의 죄까지도 보상해야 합니까?
주여, 당신은 저희 죄인에게는
이 비의 구함을 허용 않을 지라도
저희 자손들의 괴로움과 기쁨을
원컨대, 항상 축복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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