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대체 무엇을 바라는가. 마음이 착 가라앉았을 때, 당신은 자신에게
그것을 묻고, 그리고 정직하게 대답하라. 당신은 일할 필요도 없고, 걱정도
없는 그런 향락 삼매경의 호사한 생활을 -그것도 그것을 향유할 만큼의
욕망과 힘을 항상 갖춘 상황에서의 일이지만-이를테면 마호멧교도들이
공상하는 그러한 천국에 가까운 것을 바라는가. 그러나 그런 생활은
현대의 문명사회에는 어디에도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당신의
경우에는 그런 생활은 도저히 바랄 수 없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왜 차라리
고생스럽지만 확실한 인도속에서 큰 걱정도 없이, 거의 변동 없는 마음의
깨끗함과 침착성을 가지고 계속할 수 있는 생활을 바라지 않는 것인가.
이러한 생활이라면 누구든지 가질 수가 있다. 단지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그리고 주어진 그 길을 걸어 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자신도 까맣게 모른다.
또 그것을 잘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반대로 일부 사람들중 어떤 자는
되지도 않는 것을 바라며 헛되이 힘을 소모하고 있다.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그 의욕이 끊임없이 흔들려서, 그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능한 것, 즉 자신의 힘과 현실의 세계 질서에 상응한
것을 확고하고도 참을성 있게 바라는 사람들은 항상 그 목적을 달성해 왔다.
또 철저하게 주의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는 단계적인 것으로서,
결코 인생의 모든 단계를 멋대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의 하급단계에 있으면서 상급 단계에 속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리하면 원래 하급 단계에서 해야 할 것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를테면 당신이 병들었다 치고, 만일 낫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그것을 위해 바른 길을 찾기를 원하라. 그러나 신의 뜻이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병에 견디어 내는 길을 찾기를 원하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건강해 지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병의 상태에 순응하도록 하라.
당신은 그 때문에 꽤 오랫동안 당신의 온 의지력을 바쳐야만 할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이루어졌다면, 그 다음에 당신의 눈앞에 확실히 나타나는
당신이 바라는 다른 과제를 시작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진보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