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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누구인가?

몽골에서 말을 탓을 때 제가 탄 말이 길을 따라 가지 않고 자꾸 강쪽으로 걸어 갔습니다. 아무리 고삐를 잡아 당겨도 자기 마음대로 얕은 늪지대를 지나 강쪽으로 가는 것이였 습니다. 말을 잘 다룰 줄 모르는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말이 강가에 다다르자 불쑥 고개를 숙이고 맛있게 물을 먹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말의 주인은 제가 아니라 말 자신이였습니다. 말을 탓다고 제가 말의 주인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였습니다. 이처럼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훌륭한 스승은 나 자신입니다. 피카소는 어제까지의 작품을 오늘 다 파괴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자신의 스승이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새로움을 위하여 자신을 파괴 할 수 있는 귄리는 자..

당신은 언제 기도하는가?

당신은 언제 기도하는가? 기쁨이 넘칠 때, 행복이 가득할 때, 혼란이 없고 편안할 때 기도하는가? 아니 불행하고 혼란스럽고 두려울 때 기도를 하면 그때 그 기도는 애원이고 기원이다. 그대가 불행할 때, 그대는 누군가가 도움을 줄사람이 원하고 도음의 손길을 뻗쳐줄 보다 높은 실체를 찿는다. 다양한 형태를 띤 그 탄원의 과정을 우리는 기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대는 구걸사발을 누군가에게 내민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 문제되지 않는다 천사든 아니면 그대가 신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투영이든 상관 없다. 구걸하는 순간 그대는 무언가를 얻는다. 하지만 그것이 실재적인지 안닌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대는 그대의 혼란과 불행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대는 그대의 전통적인 구걸을 꺼내서..

만약 그대가 순간과 더불어 살기시작 한다면.

만약 그대가 순간과 더불어 살기시작 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존재와 더불어 일치하는 것이 하나의 기적임을 깨우칠 것이다. 그리고 이 기적은 그대의 존재의 요술을 부린다. 그때 그대는 깊은 행복감에 젖을 것이다. 평상시 그대가 느끼는 행복감은 단지 행복의 표면에 지나지 않았다. 만먁 그대갸 행뵥속에 머물 수 있다면 그 행뵥을 더욱 더 깊어질 것이다. 만약 그대가 삶을 활기차게 살기시작 한다면 그때 그대는 존재의 새로운 질로 하여 각성으로 하여 하나의 새로운 목적으로 하여 모든 것이 변형된다. 슬픔에 거슬러 투쟁하지 말라. 그리고 행복을 갈망하지도 말라. 왜냐하면 그것이 방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쇼의 신심명 강의 중.

진리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말일 많고 생각이 많으면 진리로 부터 더욱 멀리 헤메이리라 따라서 말과 생각이 멈추면 모를 것이 없느니라. 무념이 그 문이다. 무언이 그 문이다. 무심이 바로 그 길이다. 어떻게 이를 성취할 것인가? 무엇을 하여 그대가 이를 성취할 것인가? 단지 이 법문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만으로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그토록 교활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 법문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음이 사고를 시작한다면 눈리가 법문의 주위를 어지럽게 돌아다닐 것이라고 승찬은 말하고 있다. 마음은 그래 이 법문이 옳아 하고 말할 것이다. 따라서 그대는 진리로부터 더욱 멀리 헤메이게 된다. 마음은 또 아니야 그것은 불가능해 어떻게 생각을 멈춘단 말이야 하고 말할 것이다. 따라서 그대는 방황하게..

필요한 것은 하고 원하는 것은 하지말라.

저는 그동안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싶어 후회되고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원하는 것을 다 해야만 내 인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인생은 원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원한다고 해서 부모가 다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분명 해줄수 있는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활이듯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가 아는 이 중에 무엇을 한번 사고샆다고 하면 그것을 손에 넣기 전 까지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든 아니든 한번 그렇게 원했다 하면 그것을 기어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잠을 잡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백화점으로 달려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원한것을 소유한다는 사실 그 자체..

순수한 있음을 나는 신이라고 부른다.

당신 내면의 신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여전히 삶을 판독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메시지이다 삶 전체는 단 한가지 사실 즉 너는 신이라는 사실만 끊임없이 가리키고 있다. 일단 이것을 이해하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 당신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신은 죽음속에서 집으로 돌아 가리라는 것을. 랍비 번함이 죽어가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대는 무엇때문에 우는가? 나의 전 생애는 오직 어떻게 죽느냐를 배우기 위한 것이였는데.... 인생 전체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느냐 어떻게 죽느냐 어떻게 사라지느냐를 배우기 위한 훈련에 불과하다. 당신이 사라지는 그 순간 당신의 내부에 신이 생겨난다. 당신의 존재는 신의 부..

진실에는 언어가 필요없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교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언어교수는 삶의 가장 거짓된 형태이다. 진실에는 언어가 필요없다. 비언어적 차원에서만 진실을 만날 수 있다. 달은 저기 있다. 달을 보는데 그릇이나 물은 필요없다.어떠한 매개 믈도 필요없다. 그져 달을 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비언어적 만남이다. 삶 전체가 맨손안에 있다. 당신은 오직 삶과 비언어적으로 접촉 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명상의 전부이다. 언어가 방해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 교육에 의해 습득된 개념이 당신과 진실 사이에 개입하지 않는곳에 존재하는 것 그것이 명상의 전부이다. 오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