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ㅣ 형에게.

별관신사 2012. 10. 25. 07:51

어제는오랬만에 황령산엘 갔었습니다. 출발할 때는 날씨가 괜찮
았는데 오전10시경부터 약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오랬동안 회색의 도심에서 살았나 봅니다.

황령산 올라가는 길 양 옆의 벗나무들의 잎이 노랗게 물들어 하
나둘씩 떨어져 길가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도심의 길옆인 그곳
에도 이제 가을이 오는것을 오늘 처음으로 느끼는 날이였습니다.

진정 저도 속물 이 다 되어있는듯 합니다.회색의 숲속에서 가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싸움꾼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비판하고 정치를 욕하고 아웅다웅 거리며 그렇게세상과 타협하

며핏대를 세우느라 어느듯 가을이 성큼 다가와 노래를 부르는 줄
도 몰랐습니다. 형! 올해 여름은 힘들었지요?이글거리는 태양은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사정없이 햇빛을 여름 내내 쏱아 부었고

우리의 위정자들은 또 다시 그네들의 영달을 위하여 어리석고 착
한 국민들을 선동하여 편가르기를 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
은 싸움꾼의 전형적인 싸움 기술을 이제 우리에게 전수하기

시작하려나 봅니다. 이제는 그것도 수십년을 속고 나니 이제 이력
이 나서 어리석은 중생들이 으례히 하는 짓거리거니 합니다.
형!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힘들고 더웠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

었고 더위를 참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뒤척거리며 세월은 가
는가 봅니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
다고 하더니 가을은 오는가 봅니다.

형! 올 여름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무성했던 여름의 아우
성과 이글거리던 대지가 식어 가겠지요?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
은 오듯이..... 그런데 올해의 가을과 겨울은 또 걱정입니다.

온 나라가 정치판이 되어 이웃끼리 치고박는비정한 관계가 또
한번 우리의 가을을 힘들게 할 모양입니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
이지요? 형! 이제 우리는 그런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그 판에서

아예 눈을 돌려 버립시다.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순조롭게 사
는 길인것 같습니다. 초연한 삶은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지요.
사람들의 심리는 참 이상하지요? 정치를 욕하면서도 슬그머니

그들의 뒤에 줄을서니 말입니다.그것은 분명 그 대가를 기대하는
심리가 작용하는것이지요? 정치인들의 갋지못할 에고는 정말
흡혈귀같습니다. 올해 벌써 한바탕 싸우는 모습을보고 저는 정

말 놀라웠습니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 물론한 여자는 결과
에깨끗이 승복한다고 어렵게선언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대단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형! 승복은 정말 가슴에서부터의 승복은

마음의 편린을 남기지않는것이 아닐까요? 지금 그 사람의 가슴
에 한쪽의 편린도 남아있지 않을까요? 형!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붓다도 하기어려운 마음의 결정인것 같습니다.

승자가 의기양양해 하는 한 패자는 마음의 어지러움에서 탈피하
지못할 것 같습니다. 한 쪽에서는 승리의 잔치를 하는데 패자더
러 깨끗이 승복하고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축하를 하고 협조를

하라구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지독한 에고이스트들이
니까요. 형! 우리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패자가 있기에 승자가
있는것을 말입니다. 세상에는 승자만이 있을 수 없지요.

실패한 자를 귀중히 여길 줄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있기에 승자가
있는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형 ! 저의 오늘이 말씀이 형의 잔잔
한 심기를 어지럽힐 것 같군요. 저는 어제 황령산 벗나무의 노란

삶의 퇴색해가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생의 무상함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여름의 그 무성했던 아우성과 젊음과 패기와 그리고 희망과
열정이 이제 맥없이 길 바닥에 나딩굴며 무수한 군상의 발길 아래

밟히는 그런 무상함 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삶의 윤회를 믿더
라도 그것은 분명 허무입니다. 형 손님이 온다고 전화가 와서 이만
줄입니다. 아직 잔서가 남아있어 이마에 땀이 맺힘니다.

몸조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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