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

儉 武

별관신사 2014. 7. 25. 04:04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무위자연의 도를 따라 임금을 보좌하는 자는 무

력으로써 천하에 강권을 휘두르게 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항상 모든 것을 도에 복귀시키고자

한다.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군대가 있는 곳에는, 가지덤불만이 자라고,

큰 전쟁 다음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르게 마련이다.

善者果而已, 不敢以取强.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果而勿强.

잘 다스리는 자는 모든 것이 재물로 여물어 열매

를 맺게 할 뿐,

강권을 잡고 휘두르려 하지 않는다.

열매를 맺게 하되 자만하지 않으며,

열매를 맺게 하되 공을 내세우지 않으며,

열매를 맺게 하되 무위자연의 도를 따르며,

열매를 맺게 하되 강권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만물은 장성(將盛)하면 노쇠하게 마련이다.

무력적 강권 행사는 도에 어긋나며,

도에 어긋나면 이내 멸망한다.



바로 앞에서 <천하는 신통한 보물이다. 함부로

다룰 수 없다>라 했고, 또는 천하의 신기(神器)는 삼

라만상이라 어느 한 사람의 자의(恣意)나 강권으로

조작되거나 지배될 수 없음을 밝혔다.




이번에는 특히 무력적 강권 행사로 세계를 제패

(制覇)해서도 안 되고 또 할 수도 없음을 밝혔다.




다음 장에서 노자는 <무력은 상서럽지 못한 것이

다, 군자가 쓸 것이 못된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사용

하기도 한다. 사심없이 써야 하고 무력적 승리를 거두

어도 좋다고 해서는 안된다>라 했듯이 부득이한 경

우의 무력행사는 어쩔 수 없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

나 절대로 무력을 가지고 강권을 행사하거나 남을

정복하거나 세계를 제패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반

대했다.




노자의 강력한 반전(反戰)사상은 가장 중요한 이

유는 물론 무위자연의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만큼 인위적으로 조작된 자의적

(恣意的)이고 조직적이고 비인격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비인도적이고 비평화적인 난동은 없을 것이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무도한 방법으로 대자연의 평화와

조화를 파괴하는 범죄행위이다. 그러면서 전쟁만큼

인간들의 능력과 재물과 지혜를 대량으로 조직적으로

탕진하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왜 전쟁을 하나? 오직 나를

내밀고, 내 앞에 남을 굴복시키고, 내가 남의 것을

다 취하고 싶은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나를 내밀고, 남을 누르고,

남의 것을 다 취해 가졌다 치자! 그래서 어찌하

겠다는 것이며, 그래서 얼마나 흡족하다는 것이냐?

나 자신은 유구무원하고 무궁무진한 도에 비하면 아

무것도 아니다. 더욱이 나의 욕심은 무엇이며, 그것을

채웠다는 사실이 뭐 그리 대단할까? 도의 끝없고

광대한 생육화성의 진리 앞에 나의 조작(造作)을

비할 수가 있을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전쟁을 감행하면서 무위자연의

도를 따라 만물이나 만민이 다 제자리를 지키고 제

본성을 따라 대 조화 속에서 안락하게 생육화성하며

물화(物化)하는 순환(循環)과 복귀(復歸)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고 땅과 사람을 사멸의 구렁으로 끌고

들어가는가? 이보다 더 큰 인간의 아욕(我欲), 집착,

고집의 미망(迷妄)이 없을 것이다.




인간들은 전쟁이라는 가장 대대적이고 조직적이고

강압적인 작위로써 대자연의 창조와 발전을 파괴하고

있다. 그래서 노자는 <군대가 있는 곳에는 가시

덤불만이 자라고, 큰, 전쟁 다음에는 반드시 흉년이

따르게 마련이다>라고 통탄했다.


그리고 무위자연의 도는 모든 것을 여물게 한다.

여물게 하는 것, 즉 열매를 맺는 것이 선(善)이라고

했다.




[선(善)이란 열매일 뿐이다.]노자의 이 말은 지극히

중요하다. 좁은 뜻으로는 <잘 싸우는 자는 용감하고

위난을 막는 효과만 거두면 된다>로 풀지만,

보다 광범하게 노자의 뜻을 파악해야 한다.


노자가 무위자연을 내세운 뜻은 인위적인 일시적이고

국한된 성과보다는 대장연의 큰 창조와 끝없는 발전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노자에게 있어 <열매,

성과, 결실>이 선(善)인 것이다. 노자는 무조건 삶을

부정하고 죽음을 찬미하지 않았다. 그가 현세적 순간적

한정적인 삶을 부정한 것은 영원하고 무궁한 큰 삶을

찾기 위해서였다.




노자의 이러한 선(善)에 대한 생각은 ≪주역≫을 통한

유가사상과도 통한다. 유가에서도 <하늘과 땅의 큰 덕은

삶이다(天地之大德曰生)>라고 했으며, 또 <음과 양을 도라

한다. 이를 계승한 것이 선이다(一陰一陽謂之道, 繼之者善也)>

라고 했다. 즉 도는 음과 양, 즉 하늘과 땅의 조화이며

만물을 생육화성하는 것이다.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 선이다.




유가나 도가를 막론하고 중국사사아에서 선은 바로 생(生)

이다. 이 생은 영구한 만물의 생육화성, 생생불이(生生不已)

이다. 즉 영원한 창조와 발전, 그것이 선(善)이다.




본장 끝에서 노자는 권위있게 단정했다. 무위자연의 도에

어긋나는 무력행사는 이내 사멸만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고.




한편 도를 터득한 성인이나, 삶의 창조와 발전을 계승하는

선자(善者)는 모든 것을 이룩하되, 오만하지 않고, 스스로

취하지 않는다고. 즉 제 9장에서 <공을 이루고도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천도(天道)>라한 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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