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자연을 따른다고 하였다. 자연이란 스스로 있는 순박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도 순박하게 자연과 더불어 생성화육해야 한다.
되도록 인간적인 욕심과 작위를 버려야 한다. 우선 사람은 먹어야
자기 생명을 유지하고 다음으로 남녀가 짝을 지어야 종족이
단절되지 않고 번성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즉 <식(食)과 색(色)>은
인간이나 동물의 기본적 욕구다.
그런데 인간은 동물과 달리 집단생활을 문화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게 문화적으로 발전하고 번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비극의 씨가 도사리고 있다. 즉
노자의 말대로 <복 속에 화가 숨어 있었다>(제58장)
문화는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인류를
타락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노자는 다시 도로 복귀하기를
주장하였다. 이것도 도의 법칙이다.
도는 원심력을 가지고 있어 뻗어 나가지만, 동시에 구심력에 의해
되돌리기도 한다. 나가기만 하면 도에서 벗어나고 별똥별같이
벗어지고 만다.
문화는 결국 인간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라 했다.
우선 욕심 중에 가장 크고 가장 비극적인 것이 지배욕이다.
내가 임금이 되겠다는 욕구다. 그러나 도는 만물을 생성 · 양육하고도
주인인 체를 하지 않는다. 제 34장에서 <만물을 감싸고 사랑해
키우면서도 주재하지 않는다>고 한 대로다. 또
제2장에서 <만물이 자라도 자기의 소유로 삼지 않고, 만물을
생성화육하고도 자기의 자랑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공업을
성취하고도 높은 자리에 처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노자는 지배욕이나 공명심을 버려야 진정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다음에는 일체의 사치스런 재물 욕, 관능적 향락 등을 배제했다.
제12장에서 <여러 가지 색은 눈을 멀게 하고 음악소리는 귀를
멀게 하고, 요리는 입맛을 버리게 한다.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고, 귀중한 재물은 인간의 행동을 사악하게 만든다.
그러기 때문에 성인·은 배를 채우거나 눈을 위하지 않으며,
헛된 사치나 관능 허식을 버리고 근원적 실속을 차린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제3장에서 <인민의 마음을 허정(虛靜)하게 만들고,
인민의 배를 실하게 채워준다>고 했듯이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실속 있게 배를 채우라고 했다.
다음으로 노자는, 인간은 지식이나 학문을 버리라고 했다.
지식이나 학문이 결국은 간교하게 악용되어 자연스럽게
생육화성할 백성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정자는 지식과 학문을 최대한으로 악용하여 권모술수를
농하고 또는 상벌이다, 법령이다 하며 백성을 농락하기 때문이다.
제 20장에는 <학문을 없애야 걱정이 없게 된다>고 하였고,
또 제 18장에는 <지혜가 나음으로써 큰 거짓이 있게 된다>라 하였고,
또 제65장에는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국적(國賊)이다>고 하였다.
물론 노자의 학문 · 지식 배척은 우민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본래 도는 하나의 혼돈한 것(混而爲一)이다.
사람들이 선이다 악이다 하고 논하는 것같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고 분별하고 분석하고
제 멋대로 하나만을 내세우고 나머지를 배척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도에서 이탈되고 전체의 생육화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즉 인위적인 것을 배척하는 일환으로 학문 · 지식을 배척한 것이다.
인간은 지식을 가지고 제 멋대로 남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또 감정적으로도 남을 괴롭힌다. 사랑하면 좋아하고 미워하면 해친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만큼 믿을 수 없다.
노자는 제 79장에서 <천도(天道)는 편애하지 않는다.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하였다.
노자에게 있어 선(善)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만물을 키우는 도는
감정적 편애를 하지 말아야 한다. 즉
공평무사(公平無私)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는 것이다.
제7장에서는 <천지가 오래 갈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자신을 위하지 않기 때문에 남하고 다투지도 않는다.
싸우고 다투는 것은 자기의 욕심,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다. 서로 욕심을 채우고자 하니 다투기 마련이다.
노자는 다투지 않는 자가 이긴다고 했다.
제73장에는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고 잘 이긴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물같이 유약하고 처하(處下)하라는 뜻에 통한다.
삶의 길은 유약이고, 죽음의 길은 강견이다.
제76장에 <사람은 갓 났을 때는 유약하지만
죽어서는 단단하게 된다>고 하였다·
결국 인간은 욕심 · 지혜 · 농간 · 조작을 버리고 허정한 자연,
순박한 자연의 품에 안겨야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조화를 이루고
저마다 스스로의 생성화육을 이룩할 수가 있다. 이것을 하나로 돌아간다,
또는 하나를 지킨다고 하는 것이다. 노자의 포일(抱一)과 복귀(復歸)의
뜻을 우리는 현대적 위기와 더불어 깊이 음미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