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자기 인식에 충동하고 자극하고 몰아붙여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까? 여러분,
이 질문을 잘 음미해 보세요. 이 안에 답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음미하면 반쯤은 해결한 거나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해답을 찾으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 이 문제를
음미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자기 인식에 이르려면, 가르쳐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여러분에게
구루가 있어야 한다면, 여러분의 영감을 촉발할 사람, 여러분을 격려할 사람, 칭찬할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그런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설사 자기 인식에 도달하고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떠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맙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혹은 어떤 관념을 촉발시킬 영감에 의지하는
순간, 두려움이라는 구속이 생깁니다. 따라서 영감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참 영감이
아닙니다. 실려가는 시체, 싸우는 사람을 그저 바라본다고 합시다. 이 광경이 여러분 마음에 어떤생각을 일으키지 않을는지요? 야심만만한 사람을 보았거나, 지위 높은 관리가 들어오자 그
발치에 무릎을 꿇는 사람을 보았다면, 이런 일이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까요?
네, 영감이라는 것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떨어지는 나뭇잎, 사람의 손에 죽은 새의 시체에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배우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생각하면 여러분은 이 배움의 길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의
악몽이 되고 맙니다. 누구를 따르지 말아야 하고, 스승을 모시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따르지도 말고 모시지도 말고, 강, 꽃, 나무, 짐을 지고 가는 아낙네, 여러분 가족,
여러분의 생각으로부터 배우세요.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배울 수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
자신으로부터만 배울 수 있습니다. 이래서 이러한 배움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관찰하고 줄기차게 의문을 제기하는 마음입니다. 관찰을 통해, 몸부림을 통해, 행복한
순간, 눈물겨운 순간의 체험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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