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그러면 마땅히 부딪혀야지요. 여러분은 흔히 걱정거리가 생기면 문제를 피해
가려고 합니다. 절에 가거나, 영화 구경을 하거나, 잡지를 뒤적이거나, 라디오를 틀거나,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립니다. 그러나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되돌아오면 여전히
문제는 거기에 있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왜 처음부터 그 문제와 부딪치려 하지 않습니까?
걱정이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여러분은 시험을 앞두고 걱정합니다.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진땀을 흘리고 잠을 설칩니다. 떨어지면 부모님들이 실망할 겁니다.
"해냈어요. 시험에 합격했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시험
결과가나올 때까지 걱정합니다. 이 상황을 비켜갈 수 있습니까, 이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습니까!
없지요? 그렇다면 맞붙어야 합니다. 왜 걱정합니까?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쨌거나 붙거나 떨어지거나 할 것입니다. 걱정하면 할수록, 두려워하면 할수록,
신경을 쓰면 쓸수록 그 만큼 여러분은 사고 기능의 장애를 받습니다. 그래서 막상 그 날이 오면
글 한 자 쓸 수 없게 됩니다. 그저 시계만 쳐다보겠지요. 나도 다 겪어 본 일입니다.
마음이 자꾸만 어떤 문제 쪽으로 쏠릴 때, 끊임없이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일 때, 우리는
이런 상태를 걱정이라고 합니다. 자,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런 상태, 걱정하는 상태를 없앨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에, 문제가 뿌리를 내릴 토양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겠지요? 위대한 철학자들은 이 마음의 속성을 알아내기 위해 오랜
세월을 썼습니다. 마음에 대해서 씌어진 책도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온 관심을 이 마음이라는 것에만 쏟을 수
있다면 말이지요. 자, 마음이라는 걸 자세히 관찰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배워
온 것, 경험에 대한 기억, 부모님,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온 말, 책에서 읽은 내용, 주위에서 본 것,
이 모든 것이 마음의 내용물입니다. 관찰하고, 구별하고, 배우고, 이른바 덕성을 쌓고, 생각을
나누고, 바라고, 두려워하는 것 이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표면에 나타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인종적 야심, 행동의 동기, 충동, 갈등이 내재해 있는 무의식의 심층 역시 마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의식이라고도 불리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늘 어디에다 관심을 쏟고 싶어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염려하고, 주부가 부엌일을
염려하고, 정치가가 인기나 국회에서의 지위를 염려하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어디에다 관심을
쏟고 있는 마음, 다시 말해서 어떤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은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없습니다. 무슨말인지 아시겠지요?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은 빈 마음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늘 전전긍긍하고 있지요? 늘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요? 어제 들은 말, 조금 전에 알게 된 것, 내일 할 일 같은 것으로 꽉 차있지요? 비어 있을
때가 없습니다. 이것은 축 늘어져 있다거나, 일종의 정신적 진공 상태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 - 이 생각이 고상한 것이든 유치한 것이든 - 으로 꽉 차 있으면 마음은 작고
비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마음은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문제를 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문제가 아무리 크고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에 집착하면 마음은 아주 비좁아집니다. 빈
마음, 따라서 산뜻한 마음만이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고 문제를 풀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강가에, 혹은 방안에 앉아 있을 때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공간,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그 공간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잡다한 생각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채워져 있는 한,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 가정 주부의 마음이나 위대한
과학자의 마음이나 마찬가집니다 - 마음은 작고 비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은
어떤 문제와 맞닥뜨려도 그 문제를 풀어낼 수 없습니다. 반면에 이 마음이 비어 있으면 문제를
맞닥뜨릴 수도 있고 풀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은 늘 산뜻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부터 길들여진 생각이나 기억, 관습에 매이지 않고 문제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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