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하늘을 믿지 않는다. 그대는 안다. 태양이 떠 오르고 있는 것을
그대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만약 누군가가 태양이 떠 오르고 있는
것에 대한 그대의 믿음은 무엇인가? 하고 그에게 묻는다면 그대는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나는 대단한 신앙인이다 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말한다. 태앙은 떠 오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안다. 믿느냐 안믿느냐
의 문제는 없다. 태양을 믿는 사람이 누구라도 있는가? 아무도 없다.
신뢰는 어떤 증거도 없이 미지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적인 유형들에게는 어렵다. 왜냐하면 전부가 터무니 없어지며 바보
같아지기 때문이다. 먼저 증거가 거기 있어야만 한다. 만약 그대가
신은 있다 신에게 귀의하라! 라고 말한다면 먼저 신이 증명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때 신은 하나의 정리가 된다. 신은 증명되지 않은채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아무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신뢰는 그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증명된 신을
믿는다면 그대의 신은 단지 기하학의 하나의 정리인 것이다. 아무도
유클리드 정리를 믿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증명될수 있는
것이다. 증명될수 있는것은 신뢰의 기초가 될수 없다. 가장 신비로운 기독교
성자들 가운데 한사람인 데틀리안은 말했다. 나는 신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그는 옳다. 그것이 감상적인 유형들의 태도이다. 그는 말한다.
그는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믿는다. 그것이 내가 그를 믿는 이유이다.
오쇼의 탄트라 강의에서.
'탄트라 비전(tantra vision)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리는 항상 중심인채로 남는다. (0) | 2014.07.30 |
---|---|
두개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 (0) | 2014.07.28 |
죽음과 삶은 서로로부터 멀리 떨어진 두 끝이 아니다. (0) | 2014.07.23 |
니간 자신은 질병이다. (0) | 2014.07.21 |
귀의한다는 것은 완전히 귀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0) | 201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