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을 알자.
오늘 아침에는 기억을 되살려 써 놓은 글(계시)을 다시 읽어 보았다.
'회고록'의 문체와 '계시'의 문체는 사믓 다르다. 회고록은 자유스러운 맛이
있고 계시는 견고한 맛이 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이중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희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검다는
사람도 있다.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나를
착잡하게 했다. 그 당시에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1631년 나는 '레리따'의 예수회 대학에 봉직했다. 신의 영광에 더욱 크게
공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른 살 때의 일이었다.
나는 목마른 탐구심으로 어떤 의무라도 받아들일 태세차 되어 있었다. 나는
면접담당관인 연배의 예수회 수사. 산체스 신부 앞에 섰다. 그는 작은 책상에
앉야서, 내가 미리 보냈던 이력서를 보고 있었다.
'당신 성을 보니까, 순수한 스페인인은 아닌 것 같은데.' 서두를 꺼내면서
그는 눈을 치켜 뜨고 나의 반응을 살폈다.
'그래도 유태인이나 무어인의 피는 섞이지 않았다고 ,.......'
바로 이 말이 그가 하고자 했던 질문의 근거였다. 대꾸해 보았자 아무런
결론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금기를
깨고 흑과 백 사이에 있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상대의 인류학 지식을
의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조상에 대해서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그러나 신부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마도 나의
불손한 배도를 수도원장에게 고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였을 것이다. 사실
신부의 반응은 예수회의 목적과 규율에 합당한 행위였다. 예수회에서는
동료들의 잘못을 장상들에게 보고 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고발당한 수사는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산체스 신부는 여전히 흥분한 모습으로
퐁채가 좋은 성직자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의 세련된 퐁모를 보는 순간, 나는
친밀감과 호감을 느꼈다. 수도원장은 나를 차분히 훌어 보더니,
'새로 온 교수인가?"
하고 짧막하게 물었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따라오시오.'
집무실로 간 수도원장은 나를 껴안으며 동료로서 반겨주었다. 산체스 신부의
일은 마음에 두지 마시오. 그도 예수회의 일원이긴 하지만. 그다지 우수한 편은
아니오.'
그 때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수도원장은 흔히 볼 수 있는 무게잡는
상사는 아니었고, 유모어와 센스까지 있는 멋진 분이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수도원장이 로올라의 직계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올라는 lOo년 전쯤
두 사람의 사제를 동반하고 베네치아에서 로마까지 걸어가 교황을 알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예수회를 창설하고 성인품에 오른 '이냐시오
로올라'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봉직 첫날부터 적과 동지, 양쪽을 다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산체스 신부는 한 번도 내게 입을 열지 않았고 일생
동안 적이 되고 말았다.
수도원장은 나를 고문으로 위촉하였다. 그러나 실무적인 상담을 하다가도
어느 틈엔가 철학 문제. 특히 신의 창조사업에 대한 수수께끼로 화제가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 인류는 모두 하나이고. 모든 생물은 면면히 후손에게
생명을 이어가도록 되어 있다는 신념에 의기투합하였다.
수도원장과의 교분은 지적인 기쁨을 주었고, 영성을 깊게 해주었다. 우리는
자주 토론을 하였지만, 직무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각종 교회 행정업무에
대해서도 한 마음으로 상담하였다.
2년 후 수도원장은 나를 간디어 대학 언어, 철학 교수로 추천해 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강의하였다. 간디아 대학에서의 생촬은
평탄하였으나, 한 가지 증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1635년 나는 저명한
인도주의자인 '돈 빈첸시오 주앙데 라스타노사'의 뜻밖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만나자 마자 방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라시안 신부님. 소문을 듣고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왔습니다.'
라스타노사 신부는 온화한 면모를 지닌 예수회원으로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그의 소속교구는 뜻밖에도 내가 그리던 '아라곤'이었다. 아버지와 비슷한
풍모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 매력적인 인물을 보면서 아라곤에 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먼저 그곳 대학의 교수직을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의 동요가 라스타노사 신부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2주가 지난 후, 성루까`' 대학에서 마침 빈 자리가 생겨 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아라곤에서는 라스타노사 신부와 나 사이의 사사로운 사제관계로 인해
뜻하지 않은 모함을 받았다. 그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젊은 신부들 가운데는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하는 자도 있었고, 내가 라스타노사 신부에게 정신이 팔려
직무에 태만하고 있다고 고해 바치는 자도 있었다. 이는 어처구니없는
중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소한 다룸이 자칫하면 적대감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파푼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나는 라스타노사 신부의 허락으로, 여러 손님을 초대하여 신부와 토론의
자리를 만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역시 라스타노사 신부의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인간은 죄가
많은 생물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 수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라스타노사 신부는 이와 대조적으로 인도주의자답게
따뜻하게 인간을 포용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질과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역설하였다. 그는 비판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해박하고 명석한 지혜로 그때 그때 기억나는 것들을 유창하고 우아하게
인용하였다. 그는 진실로 나의 눈을 뜨게 해 준 유일한 분이었다. 나는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눈을 떴다. 인간은 선과 악을 동시에
갖는 존재로 생존을 위해서 임기응변적으로 이에 대처한다. 하나 하나의 상황에
성실히 임했을 때 완전히 다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친구와 경쟁자.그리고 적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되었다.
토론의 기술을 배울 것.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가질 것. 남의 제안을
경청할 수 있는 귀를 가질 것. 명석한 판단을 견지하면서 결연히 행동할 것.
경쟁자를 친구로 만들려고 노력할 것. 자신의 결점을 알기 위해서 적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쓸데없는 일로 소중한 사람의 시간을 빼앗지 말 것. 남과
결별할 때는 앙금을 남기지 말 것. 절제 없는 사랑과 철저한 증오를 하지 말 것.
인생의 만년을 즐기다 보면, 어디엔가 숨어 있던 수많은 기억들이 새록 새록
되살아 난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이름까지도 떠오른다.
비록 '계시'는 소실되었지만, 옛 친구들은 페이지 한장 한장 안에서 한층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계시'를 다시 집필하면서 다시 한번 그들 곁에 가게
되고, 그들의 됨됨이를 쓰다 보면, 그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고 좋은 적들이었다. 바르게 살았던 아니면 그릇된 길로
빠져들었던 간에 성의껏 개성을 발휘하고, 제 멋에 겨워 살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내 가슴 속에서 숨쉬고 있다. 수도원장이 죠현한 대로, 우리들은 모두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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