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자르 그라시안.

그라시안의 세 번째 회상

별관신사 2014. 8. 21. 02:08

양심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한평생 잊을 수 없는 오늘 아침 내가 책상 머리에 막 앉으려는데 주흥빛

작은 새 한 마리가 열린 창문 틈새로 들어와 집안을 한바퀴 돌고 다시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상쾌한 한 때였다. 어젯밤에는 호남아인 형 라이문또에 관한
좋지 못한 꿈을 꾸고 눈을 떴다. 꿈 속에서 형은 동그마한 얼굴의 평범한 농촌

처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처녀는 강론대에 서 있는 형의 얼굴을 보려고
교회에 나왔다. 그리고 형과 그 처녀는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다. 이는 내가
상상했던 형의 생활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큰소리로 형을 불렀지만, 형의

귀에까지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물론 나는 꿈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런 도피행각은 현실 생활에서도 자주 떠오르는 상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젊은 수사 시절, 쉴새 없이 계속되는 스파르타식 강의에 망치로

머리를 치는 것처럼 멍청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층동이 머리 속을 휘저었다. 어느 조그마한 사건이 없었더라면. 계속되는
정신적 긴장감에서 도피 하기 위해 경솔한 행동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타라고나에서 예수회원들과 함께 공부하던 때였다. 발도로메오 빠르세뿌레
수사의 불행한 죽음이 나에게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 준셈이 되었다. 이 탁월한
수사는 괴질로 죽었는데 고인의 송덕사를 쓰라는 명령이 내게 떨어졌다. 네게는

처음으로 문장을 작성하게 된 사건이었다. 나는 이틀에 걸쳐서 추도문을
작성하였다.
이 글은 장례식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게 되었다. 장례식

당일, 가르시아 주교가 감정을 섞어가며 낭송한 이글은 훌륭한 웅변은 되지
못하였지만, 이제껏 들어 본 어느 추모사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천국의 문으로 향하는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들 역시 한

사람씩 그 행렬에 끼어들게 되리..... 주님은 십자가를 짊어질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주시지 않으셨다.>
나는 한쪽 구석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로,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튜울런처럼

사람들의 머리가 동의를 나타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이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글솜씨를 인정 받은 글이었다. 1S20년 4월 2l일. 이 날은 내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썼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내 글이 또 다시
읽혀질 수 있었던 기회를 얻었던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였다. 그 역시
우연하게도 아라비아 노 스승에게 바치는 추도사였다. 스승께서는 젊은 시절에

실명을 하여 주위의 협조를 얻어 성서를 완전히 암기한 덕망있는 분이셨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추도문의 일부를 외우고 있다.
<아라비아 노스승은 어둠의 세계에서 사셨지만, 그런 까닭에 신으로부터

깨끗한 눈으로 천국의 광명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신께서 부르시기
훨씬 전부터 스승께서는 머릿속에서 그 영광을 똑똑히 보고 계셨다 ....>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는 물론 내가 작성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럭망 있는 신부를 잃은 슬픔과 아쉬운 추억을 길이 남기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을 통해 위대한 인물에 대한
애도하는 마음을 일시에 끄집어 내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저술가로서 데뷔한 이 기간 동안에 두 개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수도회에 정식으로 입회가 허용되었고, 또한 스페인 북부 카라듀스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갑자기 어느 교수의 일이 생각난다.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는 강의 증에 교수가 어떤 말을 할지 대강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낡아빠진 평범한 싯귀절을 모아놓은 백과사전에 비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따금 피로가 몰려을 때, 나는 교수의 입에 맞추어 동시에 그와

같은 말을 지껄여 댔다. 이는 결과적으로 교수로 하여금 나를 사라고사
대학으로 진학시켜 달라고 탄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수는 나 자신을 위한
조치였다고 변명했지만. 멋적게 웃는 그의 표정 안에는 내가 다른 곳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것에 대해 내심 기뻐하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교수들의 지도를 받아 왔지만, 잊을 수 없는 스승을
꼽으라면 예수회 교수이신 빼드로 산쯔 신부이다. 빼드로 신부는 내가 트레도에

있을 당시 숙부 안토니오의 소개로 알게 된 분이다. 그 분은 학자다운 건조한
용모에 비해 상상할 수없을 정도로 정열적인 기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분은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일단 연단에 서기만 하면 마치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듯한

격렬한 어조로 설교를 했다. 처음 그의 연설을 들었을 때는 문자 그대로
층격이었다. 그는 여태껏 보아온 어떤 설교자와 달랐다. 그가 연단에 올라서면.
다른 청중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그의 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느껏다.
그 분은 속삭이는 듯한 작은 음성에서부터 우레와 같이 울려퍼지는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어조를 변화시키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 효과는 참으로 매흑적인

것이었다. 그 신부님은 또한 오랜 경험담에 풍부한 재치를 섞는 화술도
능수능란하였다. 그 분이 연단에 서면, 나는 막대기처럼 굳은 채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훗날 이 분의 정열적인 설교 양식은 나의 귀감이 되었다. 산쯔 신부님을
알고 있는 동료들은 내 강론을 들을 때마다 신부님을 연상한다고 말해주곤
했다.

사라고사 대학 부학장인 부라스 데 파이로 신부의 비서로 근무하면서, 나는
대학에 있는 대다수의 예수회원들이 아냐시오의 이념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가령 부학장만 하더라도 그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되도록이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업무는 시간을 끌지
않고 간단히 정리하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일반인이나 성직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을 보거나, 그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알게 됨에 따라, 나는

부학장이 새빨간 거짓말을 예사로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철면피 예수회원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존경을 받고 있었다.
남을 속인다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천성적으로 예민한

나의 감성은 드디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부학장에게 유용한
보좌관이 되려고 굳게 결심한 나는 그가 지시한 몇 가지 업무에서 모순점을
발견하고 사정없이 문책 하였던 것이다. 순간 그의 등근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였다. 왜 그런 경솔한 짓을 했을까? 상사를 우롱하는 그런 짓을! 부학장
은 애당초 나같은 녀석은 믿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자네의 불순한 행동을 더
이상 못 참겠어! 즉시 목을 자를거야!' 하고 호통을 쳤다. 이 말을 한 이후에도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험담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입을 반쯤 연 채,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릴 생각조차 못하고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나는 손을 내밀고 용서를 청했지만, 그의 험담은 끊이질

않았다. 그 때 산토스 신부가 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부학장의 험담은 그대로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날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다, 신에게
빌며 용서를 받고 조금 잠이 들게 된 것은 새벽녘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년 동안 나는 뼈를 온아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어떤 천한 일을 맡더라도 부단히 영신수련을 거듭하여 마치 병사처럼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덕분에 1627년 비로소 내 생애에서 귀중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성직자로서 서품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 때 내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이로써 나는 신과 굳건한 연대를 맺었다. 나는 정말 좋은 보사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일은 간단하지가 않았다. 예수회의 정식 선교사가 되려면,

연수 기간을 마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구두시험과 숱한 필기시험에 합격해야만
최종 자격이 부여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판단을 내리는 시험관이 짓궂게도
부학장인 부라스 데 꽈이로 신부였다.

나는 예측가능한 불길한 사태에 대비해서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였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열심히 구두시험문제를 연습하였다. 드디어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나는 합격의 영예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학장은 내게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이듬해 재시험에서도 또 탈락되었다. 어느 친절한
신부로부터 나의 모범적인 성적을 전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삼 년째 구두시험에서 나는 최하점을 받고 간신히 합격했다. 이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가! 그러나 기필코 나는 청빈, 금욕, 순명을 맹세하고
예수회 정식 선교사가 되었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내가 무방비한 사람에게까지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만과 폭거, 사기에 대항할
수 있는 생존방법을 터득하겠다고 마음깊이 다짐했다. 남에게 말하기 앞서 먼저
실행을 하자. 인간으로서 예의를 갖춘 사람하고만 교제를 하자. 덕을 높이

쌓자. 이성적인 지식과 식견을 갖고 토론에 임하자. 인내심을 몸에 배게 하자.
남에게 봉사함으로써 호의를 얻자. 명석한 사고력을 키우자. 누구에게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자. 무슨 결정을 하던지 다시 한번 숙고하자. 현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이를 뛰어넘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말자.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
나는 지금 이 방에서 예전에 썼던 '계시'의 내용을 별 어려움 없이 머리에

떠올리고 있다.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낀다. 신의 보살핌이 내게
닿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신께서는 상처투성이의 노병을 도구로 삼아 매일같이
살아 남기 위해 생명을 건 싸움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젊은 병사들에게 이

통찰의 산물을 나누어 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께서 내게
내려주신 은총인 것이다.
내가 기록하고 있는 이 글이 그들의 선택받은 생존의 길을, 또한 그들을

위해 신비적인 힘이 미치는 생존의 길을, 한층 고무시켜 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