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자르 그라시안.

그라시안의 두 번째 회상

별관신사 2014. 8. 20. 07:35

청춘기에 깃든 마음의 풍경
오늘도 내가 건강을 잃지 않고 있고 것은 전적으로 브랑카부인 덕분이다.
부인이 요리한 수프는 밭에서 따온 채소들을 듬뿍 넣어, 맛도 영양도 말할 수

없이 풍부하다. 수프 옆에는 언제나 막 구어낸 빵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아침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젊은 남자가 찾아왔다. 다리가 불편한 여동생을 먹여
살려야 한다면서 돈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랑카 부인은 건달인 그 남자가

부리는 잔꾀를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여동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부랑카씨가 거절을 했다. 그는 주인을 밀어붙이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다. 요즘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가치관은 해마다 몰락해 가고 있다. 착한 젊은이들이 무심코 범죄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이 나라 젊은이들이 무심코 범죄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이 나라 젊은이들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정치적 불안이 젊은이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혹시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야만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지,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될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몬가짐에 신경을 쓰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부친께서는 그런 나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나의 몸가짐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그러나 멋대로 길을 잘못 찾아들어갈 때에는 내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엄중히 꾸짖으셨다.
벨몬데의 그라시안가는 세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부친은 의사로서

부러진 뼈는 물론 정신적인 질환도 잘 치료했다. 그 당시 나는 이따금
왕진가방을 든 아버지의 뒤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그가 환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버지는 정직함과 선량함. 고결한 영혼 등 사람이

갖추어야 할 미덕에 대해 그때 그때 생각나는 대로 환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신의 손길과도 같은 황금의 손과 부드러운 음성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가정을 검소하고 정숙한 분위기로 이끄셨다. 내 기억에

어머니는 항상 검정 옷을 입으시고 자주 기도를 하셨다. 어머니의 조용한
성품이 천성적인 것인지 아니면 가퐁에 눌려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엄하고 무거운 가풍은 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다섯 형제의 막내로서 몸도 왜소하고 어머니를 닮아 얌전하였다. 나는
세 명의 형과 함께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누님은 수녀원에 들어갔다.
예수회에서 형들은 다른 친구들과 즐겨 어울려 놀았다. 하지만 나는 '세네카'나

'아리스토텔레스', 그 밖에 성서 등의 고전들을 친구로 삼아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벨몬데에서는 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환자들을
왕진하신 후.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었다. 개증에는 닭고기나 토끼고기

옷감도 있었지만, 유복한 지주를 진찰해 주고 책을 선물로 받아오실 때도
계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쓴
스페인어판 희곡이었다. '햄릿이라는 덴마크의 왕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희곡은

너무 재미있어서 며칠 동안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나는 그 장증한 표현과
마술같은 문체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유려한
글재주를 내 육체와 영혼 속에 불어넣어 달라고 신에게 매달렸다. 동시에

언젠가는 나도 사람들에게 이처럼 세련되고 우아한 말을 전달하겠다고
맹세했다.
1618년 열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내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다. 당시 스페인은 몇 차례의 재정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필럽 3세는 젊고 건장한 병사들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돌며, 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여자들을 몰색하고자' 뿌리는 돈을 아까워

했다. 그래서 입회하였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장상들에게 복종하며 독신으로 살기로 맹세했던 것이다. 이 모든 서약은 내가
자청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 후 lo년, 아니 l2년 동딴 계속된 수련 기간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상들의 마음에 따라 수사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고뇌가 컸다. 타라고나 예수회에서 나는
독립적인 기질로 인해 궁지에 몰렸다. 획실히 장상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졌다. 물론 나는 그 동안 신사적인 예의범절을 익혀왔다. 하지만 발렌시아
주교는 내게 낙제점을 주었다. 주교는 교회에 순종하는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고
나를 꾸짖었다. 주교의 평점은 명예스럽지 못한 낙인이 되어 내 일생을

좌우하게 되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정서가 불안정하다. 일종의 우울증에 빠져 있으며
기질은 완고하고 잔인하디화 주교는 성인처럼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일에

대해서 만큼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왜 내 문제로 부친과 단 한 번의
상담조차 하지 않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부친이라면 분명히 온화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을 것이다.

<예 내 자식 발타자르는 무턱대고 순종할 아이는 아니죠.> 그리고 현명한
부친은 단호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특히 납득할 수 없는 일에는...>

그런 가운데 나는 다음과 같이 결심하였다. 훌륭한 품행을 몸에 지닐 것. 내
속마음을 될 수 있는 한 남에게 밝히지 않을 것. 감정적이고 어리석은 자를
대할 때에도 결코 냉정을 잃지 말것. 내 신조를 지켜 나갈 것.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훌륭하게 수행할 것.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 것. 결코 감정에 치우치지 말 것. 기억력을 단련 하고, 한
번 소개받은 사람의 이름은 절대로 잊지 말 것. 사람을 속이지도 말며. 속임을

당하지도 말 것. 사악한 일에 즐거워 하지 말 것. 극단적인 집착을 하지 말 것.
공들여 쌓은 지혜는 반드시 올바른 목적에 사용할 것. 자기 자신의 친구가 될 것.

이 시기에 나는 교회 지도자들이 천상적인 일에만 신경을 쓸뿐, 절박한 일상
현실은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차차'깨닫게 되었다. 나는 물질적
부귀라는 악마와 여기에 감화된 교회와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

내부에서조차 지위와 권락을 장악하려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당시 민중들에 대해 말하면i 국가 간의 전란에 휘말려
가진 것 모두를 공출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재산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숨까지도 ..... 멀지 않은 어느날, 그날이 오면. 나는 세상의 병리를
파헤치고 이를 전파할 수 있울 것이다. 지금은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할
때이다. 그날 나의 말을 듣는 청중들에게 경고해야 할 것들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