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이럴때는 내면을
들여다 보라. 그대가 곧 배고픔인가? 아니면 배고픔이
그대에게 일어나고 있는가? 그대가 곧 배고픔인가?
아니면 몸에 일어나는 배고픔을 알아 차리고 있는가?
그대가 곧 배고픔일 수는 없다. 그대가 곧 배고픔이라고
한다면 배고픔이 사라졌을 때의 그대는 누구인가?
밥을 배불리 먹었을 때의 그대는 누구인가? 배고픔이
나다 라고 생각했던 그대는 사라졌는가? 밥을 배불리
먹으면 그대는 곧장 배부름과 하나가 된다.
배고픔이 사라지자 이제는 배부름과 동일시를 한다.
그대는 아이였을 때 나는 아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젊은이가 되고
늙은이가 된다. 그렇다면 진짜 그대는 누구인가?
그런데도 그대는 아무런 젊거나 늙은 모습과 동일시를
해버린다.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존재는 거울과 같다.
그 존재는 거울처럼 앞에 오는 모든것을 비춘다. 그냥
관조한다.질병이 와도 건강이 와도 배고픔이나 배부름
여름이나 겨울 젊음이나 늙음 탄생이나 죽음이 와도
내면의 존재는 비추기만 한다. 이것이 명상이다.
허상의 뿌리를 끊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울이 되는
것이다.
구르지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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