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외부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난폭한
동물처럼 한도를 넘은 과격한 반항을 한다.
그러나 내가 반쯤 죽으면 빨리 죽여달라는 마음이
되고 실신상태로 빠져간다. 그럴때 문득 사랑의 손길이
닿아 눈을 뜨게 되면 그 고통은 심해지고 분노가 끊어
오르고 때로는 이런 고통을 일으킨 원인이 된
사람에게 증오감조차 가지게 된다.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 복수심을 품는 얼핏 보기에
불가해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혹은 은혜를 배푸는 사람의 사랑이 순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런 때는 사랑에 의해 눈은 뜬 나는 곧 이번에는
경멸에 의해 새로운 상처를 입고 가장 격렬한 증오감을
일으킨다. 반대로 내가 완전히 죽어버린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사랑을 표해도 조금도 거북하지 않다.
먹을 것을 받고 따뜻한 잠자리를 받고 애무를 받는 개나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고 가능한 한
좀 더 그렇게 해주기를 열렬히 희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처럼 응석을 부릴 때도 있고 또 고양이처럼 아주 태연하게
자기를 내맡기는 경우도 있다. 자기 일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서든 그의 에너지를 전부 흡수하여
그것을 조금도 비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행이도 어떤 자선사업이든 대채로 몰염치한 패들 특히
내가 죽어버린 사람들을 상대로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에 빠진 사람의 성격이 약하면 약할 수록 그 사람의
내가 죽는것도 빠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격이 단련
되어 있는가 아닌가에 의해서 불행의 경계가 정해지며
나를 멸망시키는 불행의 위치가 멀어지거나 가까워
지거나 한다. 그 위치가 멀면 멀수록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시몬느 베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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