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은 언제나 낡은 것이다>라거나 <시간은 슬픔이다>라는 말을 들 때,
생각은 그것을 번역하고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번역과 설명은 어제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 있으며, 그래서 당신은 늘 당신의 제약에 따라 번역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진술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전혀 설명하지 않고 단지 완전한 주의 attention(집중
concentration이 아니다)만을 기울인다면, 당신은 관찰자도 없고 관찰되는 것도 없으며,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생각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게 먼저 시작됐는가?>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아무데로도 데려가지 않는 영리한 추론이다. 생각이 없는 한-이것은 기억
상실이나 백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기억, 체험, 지식-이것은 모두 과거의 것들이다-으로부터
끌어낸 생각이 없는 한, 도대체 사고자가 없는 한, 당신은 자기 자신 속에서 보고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은 철학적이거나 신비적인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실재하는 사실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당신은-만일 당신이 여행을 떠난 뒤 이렇게 멀리 와 있다면-당신이 어떤
도전에 대해서, 낡은 머리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 대응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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