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있다. 잡아라!
험준한 계곡에 신들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들은 쏜살같이 흐르는 계곡의 강물을 거슬러
도망가는 연어를 쫓고 있었다. 연어는 강바닥으로부터 솟구쳐 올라 눈부신 햇살 아래 늘씬
한 자태를 뽐내고는 부리나케 달아났다.
한참 추적을 계속하던 신들은 잘 만들어진 그물을 발견했다.
이건 정말 작품인걸. 많이 워낙 촘촘해서 피래미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겠어.
솜씨로 보아 로키 녀석이 만든 게 분명해. 놈은 이곳에서 이골로 고기를 잡아먹으며 연
명했던 게 틀림없어. 교활한 놈!
이게 우리 손에 들어온 이상 놈을 잡는 건 이제 시간 문제야. 로키 녀석, 제 무덤을 제가
판 셈이군.
신들은 이렇게 한바탕 떠들고 난 뒤 작전을 짰다. 아까 강물을 거슬로 도망간 연어는 로
키가 변신한 게 틀림없었다. 그가 이 계곡에 숨어 있는 걸 용상에서 내려다본 오딘이 토르
를 반장으로 하는 특별검거반을 조직하여 이곳으로 파견했던 것이다.
신들은 두 패로, 아니 두 패라기보다는 토르와 다른 신들로 나뉘었다. 다른 신들은 그물에
바위를 매달아 강바닥을 훑는 방식으로 로키를 추적했다. 그리고 토르는 그물 뒤에서 기다
렸다. 연어가 공중제비를 돌아 그물을 뛰어넘어 뒤쪽으로 도망가려 할 때 손으로 연어를 잡
기 위해서였다.
강바닥에서 숨을 수도 없고 그물망 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없게 된 연어는 선택의 기로에
서 서게 된다. 지금처럼 계속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공중제비를 돌아 추적자들을 뛰어넘은
다음 넓디넓은 바다로 헤엄쳐 갈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기진맥진한 상태로는 더 이상 강물
의 흐름을 거슬러 도망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모험이긴 하지만 다시 한번 도약을 해볼 도리
밖에 없었다.
그물을 끌고 가던 신들의 머리 위로 연어의 찬란한 비상이 재연 되어싿. 연어는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가 토르의 발 아래로 풍덩 빠져들어 갔다. 토르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물밑을 더듬었다. 연어는 안간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지만 솥뚜껑 같은
토르의 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토르는 도끼를 던질 때의 날랜 동작으로 두 손아귀에 연어
를 틀어쥐었다.
잡았다!
토르가 연러를 쥔 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연어는 몇 차례 몸을 비틀다가
곧 포기하고 말았다. 천하의 로키가 마침내 신들의 손에 잡히고 만 것이다.
로키가 장님 신 호두르를 고드겨 발데르를 죽였을 때 신들은 어금니를 악문 채 그를 놓아
줄 수밖에 없었다. 신성한 땅 아스가르드를 피로 더럽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여기는 신들의 입장에서 볼 때 버림받은 땅 미드가르드이다. 신들보다 한참
지위가 낮은 인간들이 사는 대지이다. 여기서 신들은 얼마든지 피의 축제를 벌일 수 있었다.
신들의 일부는 본모습으로 돌아온 로키를 끌고 동굴로 갔다. 그리고 일부는 로키의 처와
자식들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갔다. 한 명이 로키의 아들 발리에게 저주를 걸었다. 발리는
한번 부르르 떨더니 온몸에 털이 나고 송곳니가 튀어나오면서 무시무시한 늑대로 변했다.
이 늑대는 숨돌림 틈도 주지 않고 동생 나르비에게 덤벼들었다. 먼저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어놓은 뒤 잇달아 온몸을 물어뜯어 사지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비명을 올리며 기절해 버
린 어머니 시간을 뒤로 한 채 늑대 발리는 씩식거리며 광야로 뒤쳐나갔다.
신들은 나르비의 주검에서 내장을 모조리 빼들고 로키의 아내 시긴과 함께 로키가 잡혀
있는 동굴로 갔다.
잘 보시오, 배신자의 운명이 어떠한지를.
토르는 위압적으로 말하고는 커다란 바윗덩어리 셋을 나란히 세워놓았다. 그 각각의 바윗
덩어리 복판에는 큼직한 구멍을 뚫었다.
교활한 녀석! 네놈이 이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지금까지 쓴 계책보다 휠씬 단수가 높은
계책을 써야만 할걸.
신들은 이렇게 비아냥 거리며 나르비의 내장으로 로키를 바윗덩어리에다 묶기l 시작했다.
첫 번째 바위에는 어깨를, 두 번째 바위에는 엉덩이를, 그리고 세 번째 바위에는 무릎을 묶
었다.
아버지의 온몸에 칭칭 감긴 나르비의 내장은 곧 쇠사슬처럼 단단해졌다.
겨울산의 여왕 스카디가 사납게 생긴 독사 한 마리를 잡아들고 동굴로 들어왔다. 처량하
게 묶여 있는 로키를 바라보는 토르의 가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게 다정하게 거인국
을 함께 여행했건만...그러나 그는 곧 상념을 걷어내고 독사를 동굴 천장의 종유석에 붙들어
매었다. 독사의 쩍 벌어진 입은 정확하게 로키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변신과 술
수에 능한 로키도 이제는 달아날 방법이 없었다. 신들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분노와 증오심
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연민 어린 표정으로 동굴을 나섰다.
로키의 아내 시긴은 눈물 흘리며 한숨지을 새도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나무 그릇을 가져
다 로키 얼굴 위에 얹었다. 독사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무서운 독액이ㅣ 금세 그릇에 가
득 찼다. 시긴은 서둘러 그릇을 비우고 다시 독을 받아냈다.
아아, 잔인한 신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한 일이 과연 그렇게 나쁜 것이었던가? 나는 이
세상이 아무런 재미도 없이 그저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술잔치로만 채색되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시끌벅적하게 서로 싸우고 모험을 벌이고 도박도 하는 것이 세상 사는 재미 아닌
가? 나는 그런 재미를 너희들에게 제공했을 뿐인데, 그 대가가 고작 내 아들의 내장과 뱀의
독이란 말인가?
로키의 눈은 저주로 불타올랐다.
그대 신들에게 저주 있어라! 아스가르드에 묶여 있는 내 아들 늑대 펜리르여, 대지를 감
싸고 있는 내 아들 뱀 요르문간드여, 그리고 지옥을 다스리는 내 딸 헬이여! 그리고 요툰헤
임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거인들이여! 일어나서 저 신들에 맞서 싸우라! 신과 거인의 결전
라그나랙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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