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데르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의 형 헤르모드는 지옥을 향해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지옥은 일찍이 오딘 형제가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있던 북녘의 동토 니플레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헤르모드와 그가 탄 오딘의 애마 슬레입니르는 꼬박 아흐렛 동안을 달린
끝에 니플헤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부글부글 끓거나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얼음 강을 건너
야 여자 요괴 헬이 다스리는 지옥으로 다가갈 수 있다. 로키와 거인족 여인 사이에 태어난
헬을 오딘이 이곳으로 쫓아보낸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내 헤르모드와 슬레입니르는 마지막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그때 다리 감시인인
한 노파가 그들을 세웠다.
어제 다섯 구의 시체가 이 다리를 건너갔지. 그런데 당신은 그 다섯 명이 내는 발소리보
다 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가는군. 지나가기 전에 먼저 신분을 밝히게.
헤르모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아무리 봐도 죽은 사람 같지 않아. 하고 노파가 다시 말했다.
헤르모드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내 이름은 헤르모드. 오딘의 아들이오. 어제 이 다리를 지나간 사람은 내 동생 발데르죠.
나는 그애를 찾아야 해요.
그제야 노파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지금가지 오신 만큼 더 가셔야 해.
헤르모드와 슬레입니르는 기운차게 지옥문을 향해 내달렸다. 마침내 웅자를 드러낸 지옥
문과 솟아오른 성벽은 지옥이 얼마나 범접키 어려운 곳인가를 웅변하고 있었다. 이 문으로
들어서면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해안이 나올 곳이다. 슬레입니르는 한참 히힝거
리고 섰다가 헤르모드가 박차를 가하자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 잠겨 있는 문을 도움닫기로
껑충 뛰어올랐다. 까마득히 솟은 성벽도 사력을 다한 명마의 동갸 앞에는 장난감 성에 불과
할 뿐이었다.
지옥에 들어선 헤르모드는 말에서 내려 죽은 자들이 갇혀 있는 엘류드니르궁의 열고 동굴
같은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푸르딩딩하게 썩어 들어가는 시체들이 얼굴을 내밀고 천상에서
온 용감한 신을 바라보았다. 하녈같이 처량한 몰골들 뒤로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발데르의
화사한 얼굴이 보였다. 악취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헤르모드는 오직 발데르를 위하여 미동도
하지 않고 하룻밤을 꼬박 세웠다.
지욱의 여왕 헬은 병상에 누워 있다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깜박이는 불행 의 장막을
걷었다. 그녀의 용모는 살아 있는 여인과 다를 것이 없었으나 다리와 허벅지에는 여느 시체
처럼 푸른 반점이 번져가고 있었다.
무슨 일로 산 자가 죽은 자의 궁전을 방문했는고?
지옥의 여왕이 섬뜩한 목소리로 물었다. 헤르모드는 그녀의 얼어붙은 마음을 움직이기 위
해 정성을 다했 자신이 온 목적을 설명했다.
아스가르드의 모든 신이 식음을 전폐하고 발데르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헬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신이 말하는 것만큼 발데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의심스럽군.
헬은 헤르모드의 옹색한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나 헤르모드는 할말을 다한 만큼 굳게 입
을 다물고 침묵으로 헬의 결단을 호소했다.
헬은 한참 뜸을 들인 다음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흠, 이렇게 하도록 하지. 발데르가 사람들의 사랑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 시험을 해보자
고. 만약 세상 만물이 발데르를 추모하며 눈물을 흘린다면 이 냉혹한 헬 님께서도 감동받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러면 발데르를 당신들 곁으로 돌려보내겠어.
발데르와 나나는 헤르모드에게 감사하며 그를 엘류드니르 궁전 밖으로 배웅했다. 헤르
모드와 슬레입니르는 한번도 쉬지 않고 아스가르드를 향해 내달렸다. 그의 보고를 접한 아
사 신족은 아연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사절단을 조직하여 니플헤임과 지옥을
제외한 모든 세계에 파견했다.
발데르가 흉흉한 꿈을 꾸어을 때 그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만물이 이제는 기꺼이
그를 위해 목놓아 울 것을 약속했다. 아름답고 고상한 인품의 발데르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도 돌도 울었다. 세상의 모든 병균,
세상의 모든 독초도 발데르를 기리며 엉엉 울었다.
사절단은 이제 거의 모든 곳에서 약속을 받아냈다고 판단하여 귀로에 올랐다. 도중에 그
들은 어느 초라한 농가를 지나게 되었다.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암팡지게
생긴 노파가 qkdas을 획 열어젖혔다.
친애하는 발데르를 위해 울어주시오. 그리하면 그분을 돌려보내겠다고 헬 여왕이 약속했
답니다.
노파는 사나운 눈매로 사절단을 쏘아보았다.
울라고? 내 눈에 눈물 따위는 없어. 썩 돌아가라. 그깟 애송이를 위해 거짓을 행할 만큼
한가한 내가 아니야!
그 순간 사절단은 온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그들은 엎드려 울면서 탄원했다. 그들이 거기
서 쏟은 눈물의 백문의 일이라도 노파가 흘려주면 만세상의 희망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노파는 끝내 그들의 애원을 뿌리쳤다.
어깨가 축 처진 채 돌아오는 사절단을 맏이하여 오딘 이하 모든 아사 신족의 신들은 비탄
에 잠겼다. 단 한 명의 노파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지고 말았다. 신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
다. 사실은 노파가 둔갑한 로키라는 것을. 그동안 신과 거인 사이를 넘나들며 어지간히 분란
을 일으키던 로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 확실히 신들에게 등을 돌렸음을 그들은 간파했다.
그들은 이를 갈며 마음속으로 한 목소리를 내었다.
로키 이놈, 어디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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