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전날 신들은 아무도 잠을 자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새벽녘이 되자 네 명의 용사가
발데르의 시체를 짊어지고 걷기 시작했고, 모든 신이 그 뒤를 따랐다. 바닷가에는 발데르의
시신을 태울 배 링그호른이 모래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네 명의 용사는 배 열 바닷물 위에
시신을 내려놓았다.
신들은 발데르의 재단을 배 한가운데 마련할 생각이었다. 네 명의 용사들이 뱃전으로 가
배를 바다 위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스픔에 젖은 나머지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배가 꼼짝도 하지 않아서 굴림대 위에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
신들은 거인국으로 전령을 보내 무당 히로킨을 데려오록 했다. 히로킨은 뱀을 채찍삼아 휘
두르며 늑대를 타고 달려왔다. 히로킨이 늑대에서 내려 배에 다가가자 오딘은 전사들을 시
켜 늑대와 뱀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늑대는 조용히 있도록 달래기에는 너무 사납고 힘이
셌다. 전사들은 늑대를 붙잡고 있으려다가 될어 늑대가 움직이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했다. 전사들은 어쩔 수 없이 곤봉 같은 주먹을 사정없이 휘둘러 늑대를 영원히 잠들게 했
다.
히로킨은 무서운 힘을 지닌 마녀였다. 그녀가 발데르의 배 링그호른을 향해 주문을 외자
배는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굴림대들은 배와 마칠을 일으켜 불이
붙었고 배가 구르는소리에 아홉 세계가 모두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히로킨의 늑대
들이 일으키는 소란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토르는 히로킨의 경건치 못한 행동에 참을성을 잃
고 말았다. 그는 도끼 묠니르를 번쩍 치켜들고 마녀를 향해 뛰어들 태세를 취했다. 히로킨은
경멸 섞인 시선으로 토르를 노려보았다. 신들이 기겁하며 달려가 토르를 말렸다.
저 요사스런 년을 박살낼 테야!
토르가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신들은 동생 발데르의 명복을 위해 참으라고 타일렀다. 토
르는 기적적으로 분노를 추슬러 도끼 든 손을 내렸다. 그리고 돌아선 그는 애꿏은 모래밭만
세차게 걷어찼다.
운구를 담당한 네 명의 신이 바다로 들어가 시신을 들어올려 배위에 얹었다. 처음부터 초
인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발데르의 아내 나나는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
다. 그녀는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메말라 버린 상태였다. 남편이 푹신푹신한 건초더미에 올려
지는 것을 바라보던 그녀는 마침내 그 자리에 쓰러져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다.
숨을 거든 나나는 남편 곁에 나란히 누웠다. 발데르가 타고 다니던 말이 끌려왔다. 신들은
말을 사정없이 토막내어 발데르 부부의 시신 주위에 흩부렸다.
장례식의 마지막 절차로 상주인 오딘이 바닷물을 헤치고 나가 배 위에 올랐다. 그는 아들
부부의 시신을 한참동안 굽어보았다. 난쟁이들이 만들어 오딘에게 바친 황금 팔찌가 아들의
시신 곁에 헌정되었다. 오딘은 허리를 굽혀 아들의 귀에 마지막 키스를 했다.
오딘의 시호에 다라 시종 한 명이 횃불을 치켜들고 배로 다가갔다. 그가 발데르의 제단에
불을 붙이자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때 리트라는 난쟁이가 발을 헛디뎌 토르의 앞을 가
로막았다. 분노한 토르가 그를 걷어찼고 불쌍한 난쟁이는 타오르는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
장례식의 마지막 희생물이 되었다.
신들은 마침내 배를 붙들고 있던 줄을 끊었다. 타오르는 배는 서서히 해안을 떠나 바다
한가운데로 떠나갔다. 활활 타오르며 불붙은 배는 얼마 안 가서 한 점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되어 신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그 불덩어리를 이끌고 갔다. 피어오
른 뭉게구름 속에 파묻힌 불덩어리는 발데르 부부의 시신을 안고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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