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고성은 마음의 본성이고 유동성은 삶의 본성이다.
마음에 항상 강박관념이 붙어다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음은 항상 고정되어 있다.
마음에는 하나의 고형성이 있다. 그리고 삶은 응고하지 않고
유동한다. 삶은 유연하게 끊임없이 반대쪽으로 움직여 간다.
무엇인가 이순간에 살아 있지만 다음 순간에는 죽어 버린다.
누군인가 이순간에는 젊지만 다음 순간에는 늙어 버린다.
그토록 아름답던 눈동자가 이제는 황폐되어 있다.
과거에는 유령이 아닐진대 장미같은 얼굴에서 그 그림자조차
찿아볼수 없다. 아름다움이 추해지고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은 계속 탄생을 낳는다. 그대는 삶과 더불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대는 선택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삶과 더불어 존재하고 싶다면 전체와 더불어
존재하고 싶다면 그대는 무선택이 되어야만 한다.
마음은 하나의 선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와 척학을
토대로 마음을 선택하였다. 그대는 승찬과 아리스토텔레스
만큼 까마득하게 거리가 동떨어진 사람들을 찿아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승찬은 이것도 저것도 선택하지
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오쇼의 신심명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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