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

[바라봄, 명상, 행위, 성취]

별관신사 2013. 7. 10. 04:22

[바라봄, 명상, 행위, 성취]

4가지 끝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니라.
아무리 다양한 모습이 보일지라도,
스스로 존재하는 근원적인 지혜인 각성 상태에는
보는 자와 보는 행위의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자가 누구인지 찾아보라.
보는 자를 찾아도 찾지 못할 때,
보는 행위의 끝을 넘어서게 되리라.
그러면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함께 사라진다.
보는 자도 보이는 대상도 없다고 해서
공허한 무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밝고 투명한 현재 의식의 각성 상태는 늘 현존한다.
이것이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을 넘어선
마하무드라의 바라봄이다.
이 바라봄 속에는 이원성이 없다.
여기에는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의 구별이 없다.

아무리 많은 명상 수행이 있을지라도,
각성된 의식의 곧은 길에는
명상하는 자와 명상 상태의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명상하는 자가 누구인지 찾아보라.
명상하는 자를 찾아도 찾지 못할 때,
명상 행위의 끝을 넘어서게 되리라.
그러면 명상하는 자와 명상 상태가 함께 사라진다.
명상하는 자도 명상 상태도 없다고 해서
망상의 흑암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스스로 존재하는 밝은 현재 의식의
조화로운 관조 상태는 늘 현존한다.
이 관조 상태 속에는
명상 상태에 머뭄과 머물지 않음의 구별이 없다.

아무리 많은 행위가 있을지라도,
각성된 지혜의 빈두 속에는
행위자와 행위의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자가 누구인지 찾아보라.
행위자를 찾아도 찾지 못할 때,
행위의 끝을 넘어서게 되리라.
그러면 행위자와 행위가 함께 사라진다.
행위자도 행위도 없다고 해서
충동적인 본능에 사로 잡히지 않도록 하라.
스스로 존재하는 밝은 현재 의식 속에는
좋고 싫음을 초월한 윤리적인 행위가 존재한다.
이 행위 속에는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구별이 없다.

아무리 많은 행위의 결과가 있을지라도,
각성된 마음인 스스로 존재하는 세 몸 속에는
성취자와 성취라는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취자가 누구인지 찾아보라.
성취라를 찾아도 찾지 못할 때,
성취의 끝을 넘어서게 되리라.
그러면 성취자와 성취가 함께 사라진다.
성취자도 성취도 없다고 해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하라.
스스로 존재하는 밝은 현재 의식 자체가
세 몸의 깨달음이며,
세 몸의 깨달음이 근원적인 불성(佛性)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티벳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체가 마음이다]  (0) 2013.07.11
[앎]  (0) 2013.07.10
[시간]  (0) 2013.07.10
[큰 수레와 못]  (0) 2013.07.09
[강력한 방법]  (0) 201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