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가 마음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늘 깨어 있는 마음은
하늘처럼 투명하게 비어 있다.
이 근원적인 직관 지혜의 투명성 속에
만물이 깃들어 있다.
그대의 마음이 모든 현상과 존재를 만들어 낸다.
마음은 투명한 지성으로 스스로를 깨닫는다.
마음을 공간에 빗대어 설명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공간이라는 말로는 마음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은 투명하게 비어 있는 지성이다.
하지만 공간은 비어 있는 허공일 뿐 지성이 없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말로는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
동요하지 말고, 마음의 실체에 초점을 맞추라.
이 세상의 모든 피상적인 현상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현상과 존재, 윤회와 해탈이
그대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을 바꿈으로써
외적인 세상을 변형시킬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피상적인 관찰자들은
여섯 존채 차원의 윤회를
절대적인 실재로 주장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부정하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현상의 다름을 보는 사람은
수행의 9단계 역시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흑백 논리의 오류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고,
깨어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
어떤 사람은 깨달음을 통해 오류에서 벗어난다.
어떤 사람은 현상의 다름에 집착함으로써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집착하는 것 자체도 마음의 작용이다.
이것을 안다면 집착에서 풀려날 것이다.
그대가 아는 것은 모두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아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무정물(無情物)도 마음이다.
여섯 종류의 생명 있는 존재도 마음이다.
고귀한 인간과 신들의 행복도 마음이다.
비참한 상태의 고통도 마음이다.
5가지 독으로 인한 그릇된 인식도 마음이다.
근원적인 지혜의 지성도 마음이다.
선과 자유의 성취도 마음이다.
장애물인 악마와 망령들도 마음이다.
선한 신들의 도움도 마음이다.
모든 순수함도 마음이다.
개념이 사라진 집중 상태도 마음이다.
사물의 형태와 색깔도 마음이다.
형태가 없는 존재도 마음이다.
일원성과 다양성도 마음이다.
비존재와 무도 마음이다.
마음 밖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음이 모든 현상을 계속 만들어 낸다.
바다와 파도가 둘이 아니듯이,
마음과 현상도 둘이 아니다.
나타나는 현상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지만,
마음 밖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음은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다.
어느 한 면만을 보고 마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마음에는 어떤 특정한 상태가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마음은 투명한 지성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에
비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마음은 비어 있으면서 투명한 지성으로 충만하다.
비어-있음 과 투명한 지성은 분리할 수 없다.
행위자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행위가 일어나지만,
그래도 그대의 각성은 맑고 분명하다.
고정 불변의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체험하지만,
그래도 그대의 각성은 맑고 분명하다.
이것을 안다면 완전히 자유로울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부주의하게
그릇된 판단을 내려 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참깨에서 기름이 나오고 우유에서 버터가 나오지만,
짜지 않고 젓지 않으면 기름도 버터도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가 붓다이지만,
수행이 없이는 깨닫지 못한다.
소 치는 목동도 수행을 하면 깨닫는다.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확실한 체험은 할 수 있다.
그대가 직접 설탕 맛을 보았다면,
설탕 맛이 어떠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다.
마음이라는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전문가 학자라도 오류를 범할 것이다.
9단계 수행에 대해 기가 막히게 설명하는 사람이라도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주워들은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불성(佛性)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대가 만약 마음이라는 실체를 깨닫는다면,
고결함과 사악함을 초월한다.
그러나 만약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고결함은 그대를 천상계에 태어나게 할 것이고
사악함은 그대를 지옥계에 태어나게 할 것이다.
비어-있는 직관 지혜인 마음을 깨달으면
고결함과 사악함은 힘을 잃는다.
텅 빈 허공에서 샘물이 솟아날 수 없듯이,
주체와 대상이 사라진 비어-있음 속에는
고결함도 사악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의 순수한 지성을
직관적으로 통찰하라.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는 길>은
지극히 심오하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의 순수한 지성인,
마음이라는 실체를 깊이 탐구하도록 하라.
이것은 지극히 깊은 비밀이다!
에마! 오, 놀랍도다.
<지적인 이해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여!
나는 여러 탄트라 가르침과 경전와 교훈을 기록했다.
지금 그것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 세대가 악하지 때문에
후 세대를 위해 감추어 놓는다.
영적으로 진화한 후세의 누군가가
이들 비장 문헌을 발굴하게 되기를 바란다.
사마야 갸 갸 갸 SAMAYA GYA GYA GYA
이 글 <지적인 이해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
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분명히 웃디아나에서
온 승원장 파드마 삼바바의 작품이다. 바라기는, 윤회의 사이클
이 끝날 때까지 이 가르침이 잊혀지지 않기를!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늘 깨어 있는 마음은
하늘처럼 투명하게 비어 있다.
이 근원적인 직관 지혜의 투명성 속에
만물이 깃들어 있다.
그대의 마음이 모든 현상과 존재를 만들어 낸다.
마음은 투명한 지성으로 스스로를 깨닫는다.
마음을 공간에 빗대어 설명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공간이라는 말로는 마음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은 투명하게 비어 있는 지성이다.
하지만 공간은 비어 있는 허공일 뿐 지성이 없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말로는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
동요하지 말고, 마음의 실체에 초점을 맞추라.
이 세상의 모든 피상적인 현상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현상과 존재, 윤회와 해탈이
그대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을 바꿈으로써
외적인 세상을 변형시킬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피상적인 관찰자들은
여섯 존채 차원의 윤회를
절대적인 실재로 주장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부정하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현상의 다름을 보는 사람은
수행의 9단계 역시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흑백 논리의 오류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고,
깨어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
어떤 사람은 깨달음을 통해 오류에서 벗어난다.
어떤 사람은 현상의 다름에 집착함으로써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집착하는 것 자체도 마음의 작용이다.
이것을 안다면 집착에서 풀려날 것이다.
그대가 아는 것은 모두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아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무정물(無情物)도 마음이다.
여섯 종류의 생명 있는 존재도 마음이다.
고귀한 인간과 신들의 행복도 마음이다.
비참한 상태의 고통도 마음이다.
5가지 독으로 인한 그릇된 인식도 마음이다.
근원적인 지혜의 지성도 마음이다.
선과 자유의 성취도 마음이다.
장애물인 악마와 망령들도 마음이다.
선한 신들의 도움도 마음이다.
모든 순수함도 마음이다.
개념이 사라진 집중 상태도 마음이다.
사물의 형태와 색깔도 마음이다.
형태가 없는 존재도 마음이다.
일원성과 다양성도 마음이다.
비존재와 무도 마음이다.
마음 밖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음이 모든 현상을 계속 만들어 낸다.
바다와 파도가 둘이 아니듯이,
마음과 현상도 둘이 아니다.
나타나는 현상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지만,
마음 밖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음은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다.
어느 한 면만을 보고 마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마음에는 어떤 특정한 상태가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마음은 투명한 지성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에
비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마음은 비어 있으면서 투명한 지성으로 충만하다.
비어-있음 과 투명한 지성은 분리할 수 없다.
행위자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행위가 일어나지만,
그래도 그대의 각성은 맑고 분명하다.
고정 불변의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체험하지만,
그래도 그대의 각성은 맑고 분명하다.
이것을 안다면 완전히 자유로울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부주의하게
그릇된 판단을 내려 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참깨에서 기름이 나오고 우유에서 버터가 나오지만,
짜지 않고 젓지 않으면 기름도 버터도 나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가 붓다이지만,
수행이 없이는 깨닫지 못한다.
소 치는 목동도 수행을 하면 깨닫는다.
자신의 깨달음을 설명할 수는 없을지라도
확실한 체험은 할 수 있다.
그대가 직접 설탕 맛을 보았다면,
설탕 맛이 어떠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다.
마음이라는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전문가 학자라도 오류를 범할 것이다.
9단계 수행에 대해 기가 막히게 설명하는 사람이라도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주워들은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불성(佛性)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대가 만약 마음이라는 실체를 깨닫는다면,
고결함과 사악함을 초월한다.
그러나 만약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고결함은 그대를 천상계에 태어나게 할 것이고
사악함은 그대를 지옥계에 태어나게 할 것이다.
비어-있는 직관 지혜인 마음을 깨달으면
고결함과 사악함은 힘을 잃는다.
텅 빈 허공에서 샘물이 솟아날 수 없듯이,
주체와 대상이 사라진 비어-있음 속에는
고결함도 사악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의 순수한 지성을
직관적으로 통찰하라.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는 길>은
지극히 심오하다.
그러므로 그대 자신의 순수한 지성인,
마음이라는 실체를 깊이 탐구하도록 하라.
이것은 지극히 깊은 비밀이다!
에마! 오, 놀랍도다.
<지적인 이해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여!
나는 여러 탄트라 가르침과 경전와 교훈을 기록했다.
지금 그것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 세대가 악하지 때문에
후 세대를 위해 감추어 놓는다.
영적으로 진화한 후세의 누군가가
이들 비장 문헌을 발굴하게 되기를 바란다.
사마야 갸 갸 갸 SAMAYA GYA GYA GYA
이 글 <지적인 이해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
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분명히 웃디아나에서
온 승원장 파드마 삼바바의 작품이다. 바라기는, 윤회의 사이클
이 끝날 때까지 이 가르침이 잊혀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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