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배움의 목적

별관신사 2014. 5. 22. 15:54

배움이라는 건 무엇일까요! 이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있는지요?
여러분은 배우러 학교에 가지요? 그러면 배움이 무엇입니까? 한 번이라도 따져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배웁니까? 왜 배웁니까? 배우고 있는 게 대체 뭡니까? 배움이라는 것의 의미,

그 깊은 뜻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쓰고 읽는 걸 배워야 하고, 여러 과목을 공부해야 하고,
그리고도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생계를 꾸리려면 취직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배움이
여기에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취직한 다음, 배움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
버리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배움에 끝이 있나요? 우리는 책에서 배우는 것과 경험으로 배우는 것을 구별해서
생각합니다. 이게 다른 것일까요? 우리는 책에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쓴 과학에 대한 지식을배웁니다. 그리고는 이를 실험해 보면서 이 배움을 깊게 합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도

배웁니다. 적어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도 배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삶의
깊이를 재려면, 신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유로와야 합니다. 자, 경험을
통해 우리가 찾아낼 자유, 배울 자유가 있을까요?

경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도전에 대응하는 감정이 곧 경험 아닐까요? 도전에
대응하는 것, 이것이 곧 경험입니다. 자, 여러분은 경험을 통해서 배웁니까? 도전에, 자극에
대응할 때, 여러분의 대응은 여러분이 길들어 온 환경, 여러분이 받은 교육, 여러분의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그 대응의 토대가 됩니다. 여러분은 힌두교도로서,
기독교도로서, 공산주의자로서, 등등의 배경에서 길든 대로 도전에 대응합니다. 여러분이 이
배경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도전에 대한 여러분의 대응은 그 배경을 강화시키는 행위, 혹
은배경에 적응하는 행위가 될 뿐입니다. 이럴 경우 여러분은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자유롭지

못하면 신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탐구하지도, 찾아내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경험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지 않습니다. 경험을 통한 배움은, 개인의 배경을 바탕을
새로운 틀을 만드는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해하는 일이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경험에서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는생각에서 경험에 집착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으로 배운다는 것은 배경에
지배된다는 뜻입니다. 오직 환경에 적응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움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해서, 똑바로
앉는 법을 배우고, 복종하는 법, 저항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 나라 저 나라의 역사를 배우고,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를 배웁니다. 나아가서는 생활비 버는 수단을 익히고 밭을

기름지게 하는 농사법 등을 배웁니다. 하지만 이런 배움에, 마음이 배경에서 자유로와지는 상태가있을까요? 이런 배움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습니까?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계속해서 조정하고, 저항하고, 복종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피하기 위해,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배웁니다. 자, 이런 배움에, 마음이 배움의도구가 아니라 존재 자체일 수 있는 상태가 있을까요? 마음이 배움의 도구가 되는 상태와 마

음이존재 자체일 수 있는 상태의 차이를 알겠습니까? 우리가 바라고, 얻고, 피하고 있는 한 우리마음은 늘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배움에는 늘 엄청난 긴장과 저항이 따릅니다. 배우려면여러분은 정신을 집중시켜야 하지요? 집중이라는 건 무엇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일에 정신을 집중시켰을 때 어떻게 되는지 주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고 싶지 않은 과목, 혹은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공부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 때
여러분은 다른 일에 저항을 느끼고, 그 일을 잠시 접어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일에

집중하려면 창 밖을 내다보고 싶다는 생각,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접어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집중에는 늘 노력이 따릅니다. 그렇지요? 집중하는데는 늘 동기가 있고,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미끼가 있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배우려는 노력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리

고우리의 삶은 노력의 연속, 배우려고 노력하는 긴장 상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마음에긴장이 없고, 지식에 대한 욕구도 없고 지식의 축적도 없다면, 마음은 훨씬 깊고 빠르게 배울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된다면 마음은, 진리가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도구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은 더 이상 권위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식의 권위든, 사회적 권위든, 종교적, 문화적 권위든
우리의 조건 짓는 권위든 말입니다.

잘 들으세요. 진리가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이 지식의 짐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해방되어야 비로소 참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찾는 과정은 쌓는 과정이
아닙니다. 경험한 바, 배운 바를 쌓기 시작할 때 이 쌓는 행위는 곧 마음을 묶어 두는 닻이

됩니다. 이 닻은 마음이 더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은 날마다 배운 바를 털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은 어제의 경험에 물들지
않고 늘 산뜻할 수가 있습니다. 진리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어떤 현상으로 고정되어 있

는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찾으려는 마음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나 경험의 짐을 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 마음이 살아 있을 때뿐입니다.
말로 하니까 꽤 어려워 보입니다만, 여러분이 마음을 여기에다 한 번 적응시켜 보세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삶의 깊이를 천착하려면 마음은 자유로와야 합니다. 그러나 배우고, 배운 것을이 천착의 도구로 삼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천착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