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는 프레야의 매가죽을 빌려쓰고 혼자소 거인국으로 여행을 갔다. 거기서 어쩌다가 그
는 교활한 거인 게이로드의 포로가 되었다. 로키를 석달이나 굶긴 게이로드는 기진맥진한
로키에게 명령했다.
가서 토르를 데리고 오겠다면 널 살려주마. 단, 토르의 힘의 원천인 허리띠와 도끼 묠니
르를 가지고 와서는 안 돼!
그 무렵, 가장 힘센 거인 흐룽그니르를 제거한 토르는 이제 더 이상 거인들을 상대할 일
이 없다고 생각하여 아스가르드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로키가 야릇한 미
소를 띠고 나타났다.
내가 멋진 곳을 하나 봐뒀는데 자네 같이 안 가려나?
토르는 이 세상에 자신이 안 가 본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키가 말하는 게이로
드라는 거인의 영지는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다.
게이로드란 거인은 정말 못생겼지만 두 딸은 천하절색이라네. 그러니 자네 허리띠도 풀
고 도끼도 놓아두고 가세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해야 미인도 즐길 수 있지 않겠나?
토르는 군침을 흘리며 로키의 말에 따랐다. 로키는 토르의 눈에 띄지 않게 한숨을 푹 내
쉬었다. 두 신은 어깨동무를 하고 아스가르드를 떠나 거인국으로 향했다. 게이로드의 영지는
거인국에서도 아주 길숙한 곳에 있는 푸른 벌판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빠른 토르의 걸음걸이
로도 하룻만에 갈 수는 없었다. 해거름에 그들은 숲 속에 자리잡은 그리드의 집 앞에 다다
랐다. 그리드는 오딘의 정부이므로 토르에게는 작은 엄마뻘이었다.
그리드의 집은 항상 열려 있지. 앞문으로 오딘이 들어가서 뒷문으로 비다르가 나왔다구.
로키가 능청을 떨며 토르를 이끌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드와 오딘이 사랑을 나누어
아들 아들 비다르를 낳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리드의 환대를 받으며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로키가 먼저 곯아떨어지자 그리드가 살짝 토르를 불러냈다.
그녀는 토르에게 자신의 허리띠와 쇠장갑, 단단한 지팡이를 건네주며 말했다.
게이로드가 널 초대한 건 속임수야. 그놈은 아주 교활한 거이이거든. 게다가 흐룽그니르
를 죽인 신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어.
토르가 눈을 크게 떴다.
흐룽그니르를 죽인 신이라면 바로 저 아닙니까?
그러니 속았다는 거야. 이 무기들을 꼭 몸에 지니거라.
이튿날 아침 토르는 로키를 의심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길을 떠났다. 로키도 그리드
의 무기로 무장한 토르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눈앞에 세차게 흐르는 핏빛 강이 나타났다. 너무나도 사나운 흐름이었
으나 이 강을 건너지 않으면 게이로드의 집으로 갈 수 없었다. 토르는 그리드가 준 허리띠
를 단단히 조이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로키는 두 순으로 그 허리띠를 꼭 잡았다. 얼마 가지 않아 물은 토르의 허리가지 차 올랐
고 로키는 물 위에 겨우 머리만 내민 형국이 되었다. 물살이 너무나 드세어 여차하면 떠밀
려갈지도 몰라 토르는 그리드의 지팡이로 강바닥을 꼭 짚었다.
갈수록 깊어지던 물은 강 한가운데 이르자 마침내 토르의 머리까지 뒤덮었더. 물 속에 머
리를 박았다가 지팡이에 의지하여 다시 물 위로 rhromf 내민 토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상
류 족을 바라보았다. 아아, 저런! 핏빛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에는 거대한 여인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밑으로 피를 붐어내고 있었다. 토르를 익사시킬 뻔한 이 강줄기는 그녀가 월경
으로 내보내는 피였다.
홍수를 피하려면 수원지를 막아야지!
토르는 강바닥에서 큼직한 바윗덩어리를 들어올려 거인족 여인을 향해 던졌다.
바위는 여인의 하반신을 강타했고 불구가 된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그 순간 강
물은 일시에 확 불어나 토르는 정신없이 떠내려갔다. 그리드가 준 지랑이도 소용없다. 거의
자포자기 심정에 빠진 토르에게 다가온 구원의 손길은 강바닥에 깊이 뿌리박은 나무였다.
토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나무의 가지를 움켜쥔 덕분에 겨우 익사를 모면할
수 있었고, 로키는 필사적으로 토르의 목을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함께 살아날 수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둘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강을 벗어나 게이로드의 집으로 갔다.
게이로드의 집에 게이로드는 없었고 대신 하인 한 명이 두 신을 영접하였다. 토르와 로키
는 집 가깥의 헛간으로 안내되었다. 염소 우리로 쓰이는 헛간에는 짚단이 아무렇게나 널브
러져 이썽T고 의자 하낙 댕그라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푸대접이었지만 토르
는 게이로드를 흐르는 강으로 몸을 씻으러 가고 토르는 그리드의 지팡이를 두 손에 꼭 쥔
채 의자에 앉았다. 피로한 하루였기 때문에 분노로 달아오른 토르도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
고 말았다.
토르는 자면서 꿈을 꾸었다. 낮에 건넌 피의 강에서 정신없이 떠내려가는 꿈이었다. 한참
을 허우적거리던 토르는 비명을 올리며 잠에서 깨었다. 아닌게아니라 토르의 몸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천장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겁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낮에 피를 쏟아내던 거인족 여인과 그녀의 동생이 의자와 연결
된 도르래 줄을 열심히 잡아당기고 있었다. 함정이었다. 거인 자매는 토르를 서까래에 충돌
시켜 죽이려고 줄로 의자와 들보를 연결해 놓았던 것이다.
토르는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서까래에 대고 세게 찔렀다. 그 반동에 밀려 의자는 자
매가 서 있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자매는 토르의 육중한 몸에 갈려 찍 소리도 못하고
즉사했다. 그녀들이 노리던 토르의 운명이 그녀 자신들에게 돌아간 셈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돌아와 짚더미 속에서 자던 로키는 그제야 쿵 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비비며 기어 나왔다.
토르, 나오시오! 게이로드 님게서 찾으십시다!
방 협박조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자신을 불러대지 않았어도 토르는 더 이
상 게이로드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고 쇠장갑을 낀 토르는
헛간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게이로드는 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큼직한 부지깽이가 들려있었고 그
앞에는 엄청나게 큰 용광로가 시뻘건 불꽃을 토해내고 있었다. 토르가 쿵쿵 지축을 울리며
다가오자 게이로드는 악마의 웃음을 지으며 용광로 속에 부지깽이를 집어넣어 빨갛게 달아
오른 쇳덩어리를 집어올렸다. 그리고는 소림사 주방장처럼 날랜 솜씨로 부지깽이를 휘둘러
토르에게 쇳덩어리를 날려보냈다. 쇳덩어리는 쉿 하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지만 모든 사람
의 예상을 깨고 쇠장갑을 낀 토르의 손아귀 안에 사뿐히 들어갔다. 거인들은 비명을 올렸고
게이로드는 쇠기둥 뒤에 숨었다.
그러나 토르가 누구인가? 천하 제일의 도끼 묠니르를 벼락처럼 뿌려대던 투척의 신 아닌
가? 그는 날카로운 제구력으로 벼락치는 듯한 강속구를 게이로드에게 날렸다. 쇠기둥은 여
지어벗이 두 동강이 나고 벌건 쇳덩어리는 교활한 거인 게이로드를 산산조각내 버렸다.
로키는 슬금슬금 뒷걸음쳐 도망가 버렸고 토르는 성난 늑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게
이로드 일당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있었다. 그 자리에 로키가 있었다면 게이로드와 같은 운
명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게이로드의 집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토르는 아스가
르드에서 로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맥없이 웃었다.
뭐, 아리따운 아갔들? 로키 이 녀석, 다음엔 네놈이 나한테 당할 차례다.
'神話 이야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한 상송 . 이수익 (0) | 2015.10.28 |
---|---|
세상 만물이 발데르를 해치지 않겠다고 서약하다 (0) | 2015.10.28 |
오딘과 토르 부자, 원수로 맞부딪치다 (0) | 2015.10.24 |
토르와 흐룽그니르, 한판 승부를 벌이다 (0) | 2015.10.23 |
토르, 대지를 칭칭 감은 뱀을 낚아올리다 (0) | 201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