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만든 형상에는 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거기에 신이 있으며, 우리가 온 정성으로 믿음을 기울이면 신의 권능이 현현한다고 말합니다.
예배의 진실은 무엇인지요?
크리슈나무르티: 이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의견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의견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견은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세요. '누구의 의견'이냐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무엇이
진실인지 찾아내도록 하세요. 의견은 하룻밤 사이에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자, 여러분은, 인간이 새긴 형상에 신 혹은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알아보고
싶어합니다. 그렇지요? 현상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이 생각해 내고, 나무나 돌을
손으로 쪼아 만든 것이 형상입니다. 마음이 형상을 투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의해
투사된 형상이 곧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마음이 형상에 믿음을 기울이면, 형상이 우리 마음에 권능을 부여한다고 하겠지요. 분명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마음이 형상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만든 것에서 힘을 얻어냅니다.
마음이 두고두고 하는 일은, 형상을 만들고, 권능과 행복과 은혜를 이 형상에서 뽑아 내고,
그러다 비어 버리고, 내적인 빈곤에 시달립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형상도 아니고 형상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주장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신을 만들기도 하고 만들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은 잔인할 수도 있고
친절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정말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은
의견을 가질 수도 있고, 환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는 제트기를
발명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아름다운 다리를 놓을 수도 있고, 긴 철도를 깔 수도 있으며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계산기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진리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의견일 뿐입니다. 판단일
뿐입니다. 따라서 참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참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 내기 위해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조용한 상태에 들어야 합니다. 고요한 상태에 든다는 것은 예배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신전에 꽃을 바치러 가다가, 길에 걸리적거리는 거지를 밀쳐 버리는 것, 이건 예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두렵기 때문에 신들의 비위를 맞춥니다.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이해하면 마음은 완벽한 고요에 듭니다. - 이 고요는 '만들어진' 고요가 아닙니다. 이
고요가 곧 예배 행위입니다. 이 고요 속에서 참된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신인 존재가
나타납니다.
거기에 신이 있으며, 우리가 온 정성으로 믿음을 기울이면 신의 권능이 현현한다고 말합니다.
예배의 진실은 무엇인지요?
크리슈나무르티: 이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의견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의견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에게는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의견은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세요. '누구의 의견'이냐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무엇이
진실인지 찾아내도록 하세요. 의견은 하룻밤 사이에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자, 여러분은, 인간이 새긴 형상에 신 혹은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알아보고
싶어합니다. 그렇지요? 현상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이 생각해 내고, 나무나 돌을
손으로 쪼아 만든 것이 형상입니다. 마음이 형상을 투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의해
투사된 형상이 곧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마음이 형상에 믿음을 기울이면, 형상이 우리 마음에 권능을 부여한다고 하겠지요. 분명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마음이 형상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만든 것에서 힘을 얻어냅니다.
마음이 두고두고 하는 일은, 형상을 만들고, 권능과 행복과 은혜를 이 형상에서 뽑아 내고,
그러다 비어 버리고, 내적인 빈곤에 시달립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형상도 아니고 형상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주장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신을 만들기도 하고 만들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은 잔인할 수도 있고
친절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정말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은
의견을 가질 수도 있고, 환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는 제트기를
발명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아름다운 다리를 놓을 수도 있고, 긴 철도를 깔 수도 있으며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계산기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진리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의견일 뿐입니다. 판단일
뿐입니다. 따라서 참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참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해 내기 위해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조용한 상태에 들어야 합니다. 고요한 상태에 든다는 것은 예배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신전에 꽃을 바치러 가다가, 길에 걸리적거리는 거지를 밀쳐 버리는 것, 이건 예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두렵기 때문에 신들의 비위를 맞춥니다.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이해하면 마음은 완벽한 고요에 듭니다. - 이 고요는 '만들어진' 고요가 아닙니다. 이
고요가 곧 예배 행위입니다. 이 고요 속에서 참된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신인 존재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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