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점 시간의 문]
세 점의 시간의 문을 통과하려면 -
과거는 맑고 텅 비어 자취도 없으며,
미래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것이며,
현재는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일 뿐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내용의 흐름에 의하면, 세 점 은 과거, 현재, 미래라라는 시간
개념에서 벗어나, 무시간적인 자유의 경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이러함을 알고
있는 그대로의 그대 자신을 바라볼 때,
보는 행위만이 투명하게 존재한다.
보는 자로서의 그대도 없고,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그대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순수하고 투명한 각성만이 홀로 존재한다.
소위 통찰 명상 에서 행하는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를 다시 찾
아보는 이중적인 명상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명상은 비평적인
지혜의 금강도(金剛刀)를 사용하여, 나 라고 할 수 있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는 수행이다. 이 명상을 통해 통상
적으로 나 라고 생각하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비어-있음
을 깨닫고 자유를 체험할 수 있다.
이 각성이 바로
고정된 실체가 없는 투명한 비어-있음(空)이며,
이원성이 사라진 투명하고 순수한 비어-있음(空)이다.
이 상태는 어떤 고유한 형태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이 상태는 밝고 분명하다.
따라서 완전히 멸절된 상태가 아니다.
이 상태에서는 다양한 것이 동시에 식별된다.
따라서 일종의 단일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라는 생각이 없고,
나눌 수 없는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이 상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각성이며,
있는 그대로의 실체다.
이 가르침은 나가르주나(龍樹)의 <중론(中論 Mulamadhyamakak
arika)> 제 1장 觀因緣品 첫 머리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연
상시킨다. 나가르주나는 거기에서 궁극적인 실재는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소멸되는 것도 아니며, 영속적인 것도 아니고 단절
되는 것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
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현존하는 만물 속에는
나누어질 수 없는 세 몸이 온전히 깃들어 있다.
세 몸을 통해 만물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모든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진리의 몸,
빛과 자유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깨달은 몸,
모든 곳에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나투는 몸이
만물 속에 하나로 깃들어 있다.
이 세 몸을 통해 하나로 결합된 이것이
곧 실재의 모습이다.
파드마 삼바바는 완전한 불성(佛性)이 만물 속에 현존하고 있는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붓다의 세 몸은 만물이 투명한 상태로
상관 관계를 맺고 있는 일체성 속에 현존하고 있다. 따라서 투
명한 비어-있음 (空)은 현실에서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비어-
있음 은 만물이 투명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물을 포함하고 있
는, 하나와 여럿이라는 이원성을 초월한 실제적인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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