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이야기.

시구르드의 아버지, 복수극을 벌이다

별관신사 2015. 11. 4. 05:51

이제 잠시 눈을 돌려 이야기의 주인공인 시구르드가 세상에 태어나기가지 그의 가문에서 일어
났던 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시구르드는 인간의 영웅이지만 그의 조상을 거슬러 올ㄹ가면 최고신 오딘에 다다른다. 오딘의 피를 물려받은 북유럽의 명문 볼숭가가 바로 그의 출신 가문이

기 때문이다.
어부 형제 파프니르와 레긴이 안드바리의 보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벌일
즈음 볼숭가의 궁정에서는 호화로운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볼숭왕의 고명딸 시그니가 시집

을 가게 된 것이다. 고트족 왕자 시게이르가 그녀에게 청혼을 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청춘한 처녀 시그니는 왠지 오만해 보이는 시게이르 왕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볼숭왕은 딸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딸을 이 명문가의 사내에게 시집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불숭족의 궁전에서는 초례 잔치가 흥겹게 벌어졌다. 볼숭왕이 오딘의 시녀인 발키레와 결혼하여 낳은 열 명의 아들들은 새신랑 시게이르와 권커니 작커니 주연을 즐겼다.
주흥이 무르익어 가던 저녁 무렵, 타닥타닥 타오르던 모닥불을 등지고 노인 한 사랑이 뜰 한가

운데 나타났다. 키가 크고 챙이 넓음 모자를 썼으며 하나뿐인 눈은 불타는 듯 날카로웠다. 볼숭가 사람들치고 이 노인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이 과연 어디 있으랴?
노인은 놀란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들고 있던 칼을 들어 뜰 한 가운데 있는 참나무에

깊숙이 꽂았다.
이 명검은 나의 선물이니라. 누구든 이 칼을 뽑는 자가 그 선물의 주이이 될 것이다.
노인은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선언하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볼

숭가의 조상신인 오딘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앞다투어 참나무로 달려나와 칼을 뽑으려고 애썼다. 새신랑인 시게이르 왕자도 그 대열에 끼여들었다. 그러나 힘깨나 쓰는 장사들이 젖먹던 힘을 다 짜냈건만 오딘이 꽂아놓은 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볼숭 형제들 가운데 맏이인 시그문드가 나섰다.
그는 하늘을 향해 오딘! 하고 포효가 된 뒤경건한 자세로 명검의 손잡이를 감아줭T다. 잠시 후
참나무가 뿌리째 뽑히기라도 하듯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칼날이 나무 줄기를 빠져나와

허공을 갈랐다. 명검 엑스칼리버를 뽑아든 열다섯 살 손년 아서처럼 시그문드는 오딘이 선사한 명검 그람을 높이 쳐들었다.
남달리 명예욕이 강한 고트족 왕자 시게이르는 처남 시그문드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 게 너

무나도 샘이 났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그는 은근슬쩍 시그문드에게 다가가 결혼 선물로 그 칼을 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이 칼은 우리 조상 오딘께서 내려주신 보검이네. 게다가 그분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나무에서

뽑는 자가 주인이ㅣ 될 거라고 했으니 자네에게 줄 수는 없네.
시게이르 왕자는 새색시 시그니를 데리고 고트족 나라로 돌아가면서 앙심을 품었다. 그의 표정
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한 시그니는 마음이 한없이 어두웠다.

자기 나라로 돌아간 시게이르 왕자는 장인 장모와 처남들을 초청하는 사신을 보냈다. 불숭왕과
열 명의 왕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하여 대규모 방문단을 구렸다. 관례에 따라 그들은 고트족 나라 인접 항구에 배를 정박시켜 놓고 하룻밤을 보냈다. 사돈이 다스리는 거대한 왕국을
방문하고 어여븐 공주를 다시 만날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볼숭 가족 앞에 시그니 공주가 밤을 틈타 몰래 나타났다.
지금 제 남편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답니다. 그러니 어서 돌아가세요. 그러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공주는 아버지에게 매달려 애원을 했다. 그러나 볼숭왕은 오딘의후예답게 의젓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얘야, 도망가는 일은 명문가의 도리가 아니란다. 죽음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찾아오는 게 아니
더냐?

그리하여 마침내 모딘 운명은 불숭가를 휘몰아쳤다. 비열한 시게이르 왕자는 군대를 단단히 무
장시켜 한줌밖에 안 되는 불숭왕 부부와 왕자들을 습격하였다. 불숭왕은 사위가 이끄는 군대의 손에 장렬히 전사하였고 열 명의 왕자는 모조리 사로잡혔다. 시게이르 왕자는 처남들을 숲으로

끌고가 한 명씩 참나무에 붙들어매었다. 시그니 공주는 식으믕ㄹ 전폐하고 몸져 누웠다.
왕자들은 밤마다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 특대에게 하루에 한 명씩 잡아먹혔다. 소문에 따르면
그 늑대는 시게이르 왕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부탁을 받고 둔갑한 요물이라고 했다. 마침내 아흐

레 밤이 지나고 이제 단 한 명, 시그문드만이 살아남았다.
문득 정신을 차린 시그니는어떻게든 오빠를 살려서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고트 왕실에 보관되어 있더너 오빠의 명검 그람을 몰래 빼돌려 술 속으로 갔다. 보름달

이 떠오르고 늑대가 마지막 먹이로 배를 채우려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순간, 여동생의 도움으로 포승줄을 푼 시그문드는 시퍼런 칼날을 휘둘렀다. 아홉 형제를 먹어치운 늑대는 그 칼날에 쓰러져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다.

시그문드는 아버지의 복수를 기약하며 계속 숲 속에 숨어 지냈고, 원수의아이를 밴 시그니 공주
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궁중에서 지냈다. 공주는 시게이르와의 사이에 태어난 사내아이를 모랠 숲 속으로 데리고 가서 시그문드에게 주었다. 시그문드와 함게 단련시켜 남편에게 복수하

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사내 아이는 거친 숲에서의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죽어버렸다.
시그니는 궁중을 거닐며 생각에 빠졌다.
고트인의 피를 받은 아이는 복수하는 데 적합하지 않아. 그렇다면 오로지 순수한 볼숭 혈통의

아이라야만 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볼숭가의 후손이라곤 나와 오빠분인데...
시그니는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세게 물었다. 그런 다음 두 주먹을 꼭 쥐고 숲으로 갈 준비를
했다.

잠시 후 변장을 하고 나타난 시그니는 숲 속에서 짐승처럼 살고 있는 오빠 시그문드를 유혹했
다. 여자에 굶주려 있던 시그문드는 쉽게 그녀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렇게 며칠 밤을 오빠와 정을 통한 끝에 마침내 시그니는 볼숭가의 순수 혈통을 잉태할 수 있었다. 열 달이 지나 잘생긴 사

내아이를 낳은 시그니는 이 아이에게 신피에트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버지 시그문드에게 맡겨진 신피에트리는 과연 볼숭가의 자식답게 모든 시련을 이겨내며 무럭
무럭 자라났다. 마침내 어엿하게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자라난 아들을 데리고 시그문드는 복

수에 나섰다.
그들은 시그니가 여어놓은 문을 통해 몰래 고트족 왕궁에 잠입한 뒤 준비했던 짚단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엉겁결에 화재를 만난 왕자 시게이르와 고트족 왕실 사람들, 전사들, 시종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불타 죽었다. 시그니는 오바 시그문드와 아들 신피에트리를 따라 왕궁을 멀지감치 벗어나자 가던 기을 멈추었다. 그리고 오빠에게 무서운 비밀을 털어놓았다.
오라버니 사실 신피에트리는 오라버니와 저 사이에 태어난 아이랍니다. 전날 숲속에서 오라버

니를 유혹했던 여인은 바로 저였어요. 이제 부모님과 오바들의 원수를 갚고 나니 저는 죽어도 한이 없답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시그니는 오빠이자 남편인 시그문드와 아들 신피에트리에게 입을 맞춘 뒤 화염 속으로 몸을 던
져 한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시그문드의 뺨에는 굵은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고, 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비운의 사내아이도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