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먼저, 무엇이 종교가 아닌지 따져 보기로 합시다. 이게 제대로 접근하는
방법이 아닐는지요. 무엇이 종교가 아닌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다른 걸 좀 생각해 볼 수 있을
테지요. 이건, 더러워진 유리창을 닦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더러워진 유리창을 닦고 나면 이
유리창 저쪽이 환하게 보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먼저 종교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이해하고, 이것을 우리 마음에서 쓸어버릴 수 있을지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생각해 보겠소." 이런 소리는 하지 맙시다. 공연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여러분은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개의 나이든 사람들은 이미 발목을 잡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종교가 아닌 것에 편안하게 안주하고 있어서 공연한 일로 구설수에 말려들지 않으려할겁니다.
자, 그러면, 종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종교가 대충
어떤 것인지-신에 대한 믿음 어쩌구 저쩌구하는-골백번도 더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종교가 아닌지 말해 보라는 사람은 못 보았을 겁니다. 여러분과 내가 한 번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건, 다른 사람 말을 듣건, 언표된 것만 받아들이지 말고,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데 귀를 기울이세요. 일단 여러분 스스로 무엇이 종교가 아닌지 알게 되면, 평생 어떤
종교의 사제나 책도 여러분을 못 속입니다. 뿐만 아니고 두렵다는 감정이, 여러분이 믿고
따를지도 모르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종교가 아닌지 검토하기 위해
먼저 일상 생활 차원에서 시작해서 정도를 높여 가 보기로 하지요. 멀리 가려면 가까운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가까운 곳에서의 한 걸음이 가장 중요한 한 걸음입니다. 자, 무엇이
종교가 아닐까요? 종교 의식이 종교일까요? 푸자를 거듭한다-이게 종교일까요?
참 교육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면, 여러분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여러분은자유로운-교조주의, 미신, 종교의식으로부터-인간입니다. 따라서 무엇이 종교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종교 의식은 분명히 종교가 아닙니다. 의식을 행한다는 것은 선대에서 여러분 앞으로 넘어온
형식을 되풀이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식을 행하면서도 기쁨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즐기는 사람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이게 종교일까요? 의식을
행하면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도 아무것도 모르는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했으니까 여러분도 하는 것입니다. 안 하면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들을 테니까요. 이것은종교가 아니겠지요?
그러면 신이 있다는 신전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인간이 상상으로 빚어낸 신상이 있습니다.
그 신상은 상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징일 뿐이지 실체는 아닙니다. 상징은, 언어는, 상징이나언어가 표상하고자 하는 실체가 아닙니다. '문'이라는 단어가 문인 것은 아니겠지요? 언어는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신전으로 예배하러 갑니다. 무엇을 예배합니까? 상징일 수 있는
신상이겠지요. 그러나 상징은 실체가 아니지요. 그러면 왜 신전에 갈까요? 사실이 이렇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종교를 비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이 이러한데, 상종해도 좋을 사람이
든상종하면 안 될 사람이든, 바라문(인도의 네 계급 중 가장 높은 승려 계급)이든 바라문이 아니든,신전에 가는 사람들을 두고 내가 시비할 이유는 없습니다. 갈 테면 가라지요. 아시다시피 나이지긋한 분들은 상징을 종교로 만들어 놓고 이 종교를 위해서라면 다투고, 싸우고, 죽이는
것도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은 거기 없어요, 신은 절대 상징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상징이나, 신상을 예배하는 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면 믿음은 종교일까요? 이건 좀 까다롭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데서 시작했습니다만, 이제
조금씩 멀리 나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종교냐... 기독교도는 이렇게 믿고, 힌두 교도는
저렇게 믿고, 회교도는 이런 식, 불교도는 저런 식으로 믿으면서도 이 모두가 스스로를 일컬어
종교인이라고 합니다. 이들 모두에게 나름의 신전, 신들, 상징, 믿음이 있습니다. 이게
종교일까요? 신을, 라마를, 시타를, 이시와라(힌두교 신들)를, 그리고 그 밖의 신들을 믿으면 그게종교일까요? 이런 믿음을 어디서 얻었던가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믿었으니까 믿는 게
아닌가요. 아니면 샹카다(일원론을 신봉하던 힌두 신학자)나 부처 같은 이의 말씀이라는 걸
읽고는 믿음을 얻어서 이걸 진짜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요. 여러분 중 대부분은 '기타'(바가바드
기타)를 믿습니다. 그래서 다른 책을 읽을 때와는 달리 그 내용을 단순 명쾌하게 찾아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의식은 종교가 아니고, 신전에 간다는 것도 종교가 아니며, 믿음 역시 종교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믿음은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서 갈려 나왔고, 저희들끼리도 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힌두
교도에게는 적이 많습니다. 저희들끼리 바라문이니 비바라문이니, 이것이니 저것이니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이래서 적대 의식과 분열과 파괴를 조장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종교일까요? 여러분이 정말 창을 말끔히 닦았다면-이것은 여러분이 의식의
참례를 그만 두었다는 뜻이며, 어떤 지도자나 구루를 따르는 일도 그만두었다는
뜻입니다.-여러분의 마음도 창처럼 말끔히 닦였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밖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밖이 카랑카랑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신상, 의식, 믿음, 상징,
모든 말씀, 만트람(신가)과 성구, 그리고 모든 형태의 두려움이 말끔하게 닦여 나갔다면, 여러분의눈에 보이는 것은 참인 것, 시간을 초월한 것, 영원한 것뿐입니다. 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면 엄청난 통찰과 이해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경지는,
종교가 무엇이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매일매일 이 문제를 그 바닥까지 고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합니다. 오직 이런 사람만이 참 종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입에
발린 말이나 지껄이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들의 예배 용품, 그들이 몸에 걸치는 법의, 그들의
푸자, 그들이 울리는 종소리,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미신에 다름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른바 종교라는 모든 것에 저항할 때 우리는 비로소 종교의 실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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