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어 본 적이 있는지요? 한번 해 보세요.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가만히 앉아 여러분의 마음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번 관찰해 보세요. 마음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저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건너
뛴다고 탓하지 마세요. 그저, 마음이 어떻게 건너 뛰는지 그것에 유념하세요. 마음이 하는 일에
간섭하면 안 됩니다. 강둑에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세요. 흐르는
강물에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물은 늘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나비처럼 늘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닙니다.
노래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듣습니까? 여러분은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아주 잘생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말의 의미를새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노래를 듣는다는 행위 이면을 들여다봅시다. 여러분은
노래의 곡조 및, 곡조와 곡조 사이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닐는지요. 이런 식으로
아주 조용히 앉아 있어 보세요. 불안해하지 말고,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가만히앉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하세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재미삼아,
놀이삼아 하다 보면, 마음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가라앉아 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의
마음속에는 검열관도, 판관도, 감정관도 없습니다. 마음이 아주 조용히 가라앉아 가고 이 상태가지속되면 여러분은 참 유쾌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유쾌하다는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쾌하
다는것은 웃고 싶은 상태, 이러저러한 일에 재미를 느끼는 상태, 사는 재미, 웃는 재미, 두려워하지않고 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재미를 느끼는 상태입니다.
혹시 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있는지요? 여러분은 선생님, 부모님, 지위가 높은 관리,
하인, 가엾은 쿨리(하급 노동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상대의 반응은어떻던가요? 우리들 대부분은 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걸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그렇게 주시당하고 보면 슬며시 겁
이나기 때문이지요. 자기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통과
고민과 갈망과 희망을 겹겹이 앞세워 놓고 그 뒤에 숨어 경계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웃는다는 것, 행복
을느낀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가슴에 노래가 없다면 삶은 아주 멋대가리 없을
테니까요. 사람은 이 신전에서 저 신전으로, 이 남편이 아내에게서 저 남편 저 아내에게로 옮겨갈수도 있고, 새로운 스승, 혹은 구루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적인 재미를 느끼
지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적인 재미를 찾는 일은 쉬운일은 아닙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피상적인 불만만 있기 때문이지요.
불만을 갖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불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
다.
그 까닭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불만이라는 것을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서는 해소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관심사는 물질적 이득과 사회적 체모가 안정하게 보장된 지위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찮은 일과 사귀지 않아도 되니까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들은 귀찮은 일에 부딪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판에 박힌 구습을 즐겨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불만을 느끼고, 무엇인가
를요구하고,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순간부터 귀찮은 일과 부딪치게 되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진
정한불만을 통해서만 인간은 주도적일 수 있습니다.
주도적이라는 말뜻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누구의 사주도 받지 않고 어떤 일을 주도하거나
시작할 때 여러분이 갖는 힘이 주도권입니다. 주도한다고 해서, 뭐 굉장한 일이나 아주 어려운
일을 주도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일을 주도하다 보면 나중에 큰 일을 주도하게
되는 수야 있겠지요. 그러나 자발적으로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 남을 늘 인정스럽게 대할 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낼 때, 길에 솟아나온 돌을 뽑을 때, 길을 가다가
만나는 동물을 쓰다듬어 줄 때, 이럴 때 여러분은 작은 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여러분이 창조성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것에 접근하기 위해 여러분이 발휘하는 굉장한
주도권 행사의 첫 걸음입니다. 창조성이라는 것은, 주도성에다 그 뿌리를 대고 있습니다. 그리
고주도성이란, 불만이 있는 곳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불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에서 불꽃이 번득일 때까지 계속해서 불만의 자양을 공급하세요.
그리고는 모든 일, 말하자면 여러분의 일, 여러분의 가정, 돈이나 지위나 권력을 추구하는
여러분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제대로 생각하고제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여러분은 끊임없이 이렇게 불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보살펴야 할 자식이 생기고,
생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직업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합니다. 여기에 이웃 사람들의 의견이
끼어들고, 여러분의 목을 죄는 사회가 끼여들면 이 불만의 불꽃은 여러분 안에서 사그라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만이 생길 때마다 라디오를 켜거나, 구루를 찾아가거나, 푸자를
하거나 클럽에 가입하고, 술을 마시고, 여자 꽁무니를 좇거나 할겁니다. 이 모든 것은 불만의
불꽃을 끄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이 불만의 불꽃이 없이는 아무 일도 주도할
수 없습니다. 주도성이 없는 곳에서는 창조하는 행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참된 것인가를알아내기 위해서는 마땅히 기존의 질서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직업에 안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만큼 저항을 기피합니다.
창조성은 그림을 그린다거나 시를 쓰는 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만, 그 자체로서는 별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불만을 갖는
일입니다. 이 전적인 불만이야말로 주도성이 뿌리를 내릴 곳이며, 이 주도성이 성숙하면 곧
창조성이 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신이 무엇인지를 알아 내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적인 상태가 바로 신이니까요.
따라서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전적인 불만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사람은 마땅히 만사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어야 하지만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불만을 품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독한 골칫덩어리입니다.
이들은 늘, 이것이나 저것이 잘못 되었다고 불평합니다. 이들은 늘 더 좋은 지위를 바라고, 전혀
다른 환경을 원합니다. 이들의 불만은 피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혀 불만을 품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젊은 시절에는 저항하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불만을 품되 거기에 기쁨과
애정의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 불만의 불꽃은 굉장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그 불만이 새로운 것을 지어내고, 창조하고, 또한 태동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란, 좋은 직업에 눌러 앉을 준비,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준비나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도록 도와주고, 여러분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 교육입니다.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고 해서 넓은 침실이나 천정이 높은 방을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믿음, 어떤 두려움에도 구속당하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앉아 여러분의 마음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번 관찰해 보세요. 마음을 통제하려고 하지
마세요.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저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건너
뛴다고 탓하지 마세요. 그저, 마음이 어떻게 건너 뛰는지 그것에 유념하세요. 마음이 하는 일에
간섭하면 안 됩니다. 강둑에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세요. 흐르는
강물에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물은 늘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나비처럼 늘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닙니다.
노래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듣습니까? 여러분은 노래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아주 잘생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말의 의미를새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노래를 듣는다는 행위 이면을 들여다봅시다. 여러분은
노래의 곡조 및, 곡조와 곡조 사이의 침묵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닐는지요. 이런 식으로
아주 조용히 앉아 있어 보세요. 불안해하지 말고,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가만히앉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도록 하세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재미삼아,
놀이삼아 하다 보면, 마음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가라앉아 간다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의
마음속에는 검열관도, 판관도, 감정관도 없습니다. 마음이 아주 조용히 가라앉아 가고 이 상태가지속되면 여러분은 참 유쾌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유쾌하다는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쾌하
다는것은 웃고 싶은 상태, 이러저러한 일에 재미를 느끼는 상태, 사는 재미, 웃는 재미, 두려워하지않고 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재미를 느끼는 상태입니다.
혹시 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있는지요? 여러분은 선생님, 부모님, 지위가 높은 관리,
하인, 가엾은 쿨리(하급 노동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상대의 반응은어떻던가요? 우리들 대부분은 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걸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그렇게 주시당하고 보면 슬며시 겁
이나기 때문이지요. 자기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통과
고민과 갈망과 희망을 겹겹이 앞세워 놓고 그 뒤에 숨어 경계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웃는다는 것, 행복
을느낀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가슴에 노래가 없다면 삶은 아주 멋대가리 없을
테니까요. 사람은 이 신전에서 저 신전으로, 이 남편이 아내에게서 저 남편 저 아내에게로 옮겨갈수도 있고, 새로운 스승, 혹은 구루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적인 재미를 느끼
지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적인 재미를 찾는 일은 쉬운일은 아닙니다.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피상적인 불만만 있기 때문이지요.
불만을 갖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불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
다.
그 까닭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불만이라는 것을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서는 해소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관심사는 물질적 이득과 사회적 체모가 안정하게 보장된 지위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찮은 일과 사귀지 않아도 되니까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들은 귀찮은 일에 부딪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판에 박힌 구습을 즐겨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불만을 느끼고, 무엇인가
를요구하고,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순간부터 귀찮은 일과 부딪치게 되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진
정한불만을 통해서만 인간은 주도적일 수 있습니다.
주도적이라는 말뜻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누구의 사주도 받지 않고 어떤 일을 주도하거나
시작할 때 여러분이 갖는 힘이 주도권입니다. 주도한다고 해서, 뭐 굉장한 일이나 아주 어려운
일을 주도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일을 주도하다 보면 나중에 큰 일을 주도하게
되는 수야 있겠지요. 그러나 자발적으로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 남을 늘 인정스럽게 대할 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에게 미소를 보낼 때, 길에 솟아나온 돌을 뽑을 때, 길을 가다가
만나는 동물을 쓰다듬어 줄 때, 이럴 때 여러분은 작은 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여러분이 창조성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것에 접근하기 위해 여러분이 발휘하는 굉장한
주도권 행사의 첫 걸음입니다. 창조성이라는 것은, 주도성에다 그 뿌리를 대고 있습니다. 그리
고주도성이란, 불만이 있는 곳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불만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에서 불꽃이 번득일 때까지 계속해서 불만의 자양을 공급하세요.
그리고는 모든 일, 말하자면 여러분의 일, 여러분의 가정, 돈이나 지위나 권력을 추구하는
여러분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제대로 생각하고제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여러분은 끊임없이 이렇게 불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보살펴야 할 자식이 생기고,
생계를 꾸리는 데 필요한 직업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합니다. 여기에 이웃 사람들의 의견이
끼어들고, 여러분의 목을 죄는 사회가 끼여들면 이 불만의 불꽃은 여러분 안에서 사그라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만이 생길 때마다 라디오를 켜거나, 구루를 찾아가거나, 푸자를
하거나 클럽에 가입하고, 술을 마시고, 여자 꽁무니를 좇거나 할겁니다. 이 모든 것은 불만의
불꽃을 끄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이 불만의 불꽃이 없이는 아무 일도 주도할
수 없습니다. 주도성이 없는 곳에서는 창조하는 행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참된 것인가를알아내기 위해서는 마땅히 기존의 질서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직업에 안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만큼 저항을 기피합니다.
창조성은 그림을 그린다거나 시를 쓰는 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만, 그 자체로서는 별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불만을 갖는
일입니다. 이 전적인 불만이야말로 주도성이 뿌리를 내릴 곳이며, 이 주도성이 성숙하면 곧
창조성이 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신이 무엇인지를 알아 내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적인 상태가 바로 신이니까요.
따라서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전적인 불만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사람은 마땅히 만사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어야 하지만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불만을 품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독한 골칫덩어리입니다.
이들은 늘, 이것이나 저것이 잘못 되었다고 불평합니다. 이들은 늘 더 좋은 지위를 바라고, 전혀
다른 환경을 원합니다. 이들의 불만은 피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혀 불만을 품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젊은 시절에는 저항하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불만을 품되 거기에 기쁨과
애정의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 불만의 불꽃은 굉장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그 불만이 새로운 것을 지어내고, 창조하고, 또한 태동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이란, 좋은 직업에 눌러 앉을 준비,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준비나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도록 도와주고, 여러분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 교육입니다. 넉넉하게 만들어 준다고 해서 넓은 침실이나 천정이 높은 방을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믿음, 어떤 두려움에도 구속당하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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