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학자가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않고 매우
주의깊게 나무를 관찰하고 있었다. 비록 그대의
생각뿐이라 할 지라도 나무는 이를 알아 차린다.
그는 식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식물을 가는 철사로 칭칭 감아 식물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정교한 기계에 연결시켰다. 그리고 그는
지금 나무를 싹 베어버린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기계의 바늘이 심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 식물이 사념(思念)
을 수신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식물을 자르지도
식물에게 집적 해를 주지도 않고 그냥 상상만
하였다. 그런데도 식물에 연결되어 있는 기계의
바늘 침은 그 식물의 심한 걱정이나 분노를
나타내 주는 것이였다. 뿐만 아니라 만약 그대가
식물을 잘라 낸다면 주위의 식물들 또한 슬픔과
분노와 비탄을 나타낸다.
이제는 기계로도 나무의 내면에서의 내면을
알아 낼 수 있다.
따라서 조만간 바위의 내면에서의 변화를 알아
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모든 것이 살아
있다. 아무것도 없이 알맹이 없이 텅 비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제각기 다른
모습의 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가 의식을
통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의식의
다양한 언어로 인하여 그대가 이를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나무는 하나의 다른 모습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다른 언어로 하여 나무와의 의사
소통이 어려운 것이다.
만약 그대가 더욱 더 깨어있다면 그대의 마음
속에 사념이 넘실거리지 않는다면 그때 그대는
하찮은 바위라 할 지라도 가까이 닿을 수 있다.
알맹이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것이
고유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오쇼의 신심명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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