遣宥沒宥 견유몰유
從空背空 종공배공
多言多慮 다언다려
轉不相應 전불상응
絶言絶慮 전언절려
無處不通 무처불통
to deny the reality of things
is to miss their reality
to assert the emptiness of things
is to miss their reality
the more you talk and think about it
the further astray you wander form the truth
stop tlaking and thinking
and there is nothing
you will not be able to know.
사물의 실체를 부정하면
그것들의 실체를 놓치고
사물의 공을 따르면
그것들의 실체를 등지느니라
진리에 디하여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진리로부터 더욱 멀리 헤메이리라
따라서 말과 생각을 멈추면
모를 것이 없느니라.
진실은 항상 바로 그대 가슴 가까이에 그대 눈
가까이에 그대 손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대는 그것을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또한 그 속에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진실을 생각할 수는 없다.
진실은 보는것이 가능하고 만지는 것이 가능
하다. 그러나 진실을 생각하기는 불가능하다.
사고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여 보아라
사고는 항상 "....에 대하여(about)" 이야기 할
뿐이지 진실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없다.
그대는 진실을 깨우칠 수는 있다.그러나
그대는 이에 대하여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에 대하여 "라는 생각이 그 함정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에 대하여"를 생각할 때
마다 그대는 진실과는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에 대하여"의 의미는 간접적이다. "...에 대하여"
는 그대가 이 꽃은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대는 꽃에 대하여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에 대하여"가 하나의 장애가 될 것이다.
그 "...에 대하여"를 통해서 그대는 결코 꽃송이에
닿지 못할 것이다. 보는 것은 집적적이다.
마지는 것도 직접적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간접적이다.
사고를 통해서는 촟점을 놓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는 진실을 알 수 있다.
춤추는 무희도 그것을 알 수 있고 노래하는
가수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색가는 그것을 계속 놓치고 있다.
오쇼의 신심명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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