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무르티.

협력과 부담

별관신사 2014. 4. 25. 05:59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해 왔고 우리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라는 것은,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내버려두면 해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마음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는 그 문제가 뿌리를 내릴

토양이 되어 버립니다. 이 문제가 일단 우리 마음에 뿌리를 박아 버리면 뽑기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문제의 정체를 눈여겨보고, 이 문제가 자랄 토양을 제공하지않는 데 있습니다.

이 세계가 당면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가 협력, 협동의 문제입니다. '협력'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지요? 협동한다는 말은 함께 일한다, 함께 짓는다, 함께 느낀다, 함께 자유로이 일할 수
있도록 나누어 갖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함께 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게 자연스럽고 쉽지가 않은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일하라는 강요를 받습니다. 겁주기, 상벌 같은 장치를 통해서 말이지요. 이런 일은 세계 도처에서일어나고 있습니다. 독재 정부 아래서는 무자비하게 동원되어 함께 일해야 합니다.

'협력, 협동'하지 않으면 숙청당하거나 집단 수용소행입니다. 이른바 문명 국가에서도 여러분은
'나의 조국'이라는 관념, 교묘하게 조작되고 여러분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널리 선전된이데올로기를 통해 함께 일하자는 권유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교묘하게 그려낸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실현시키는 데 동참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함께 일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이러한 계획이요, 관념이요, 권위입니다. 이렇게
함께 일하는 것을 '협력, 협동'이라고 하는데, 이 협력,협동을 권유하는 이면에는 상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협력, 협동'의 배후에는 겁주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무엇인가를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임금님을 위해, 당을 위해,
신이나 위대한 도시를 위해, 평화를 위해, 아니면 이러저러한 개혁을 위해 일합니다. 협력이라

는것은 특정 결과를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인 셈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협력을 통해 성취시키고자
하는 이상 - 완전한 학교를 만들자는 이상 같은 - 이 있습니다. 그래서 협력이라는 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권위가 끼어 들어와 있지요? 일을 하다 보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성취시키기 위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협력, 협동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네, 협력, 협동이 아니라 일종의

탐욕, 일종의 공포, 일종의 강제입니다. 이런 협력, 협동의 배후에는, '협력, 협동'하지 않으면
정부가 너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5개년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너는 집단 수용소행이다, 네조국은 전쟁에 진다, 너는 천당에 못간다.... 이런 유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형태건 권유하고 유도하는 힘이 늘 작용합니다. 권유받고 유도당하는 한 진정한협력, 협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하기로 합의하고 함께 일한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력, 협동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런 합의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일을 해 낸다는 것이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내가 다리를 만들거나, 길을 닦거나 나무를 심기로
합의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 합의의 이면에는 합의가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내가 내

몫의 일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여러분에게 일을 다 맡겨 버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형식으로든 권유받고 함께 일하는 것은 협력, 협동이 아닙니다. 합의하고 함께

일하는 것도 협력, 협동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노력의 이면에는 무엇을 얻는다거나, 어떤것을 피한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협력, 협동은 이런 것과 전혀 다릅니다. 함께 존재하고 함께 일하는

재미를 누려야 진짜 협력, 협동입니다. 특정한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아이들은 대체로 함께 존재하고 함께 일하는 재미를 압니다. 아이들을 한 번
관찰해 보세요. 아이들은 무슨 일에서건 협력, 협동합니다. 여기에는 화합이나 불화, 상이나 벌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돕는 걸 좋아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함께 존재하고 함께 하는 재미를
알고 본능적으로 협력, 협동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 일을 하면 저걸 주겠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영화구경을 시켜 주지 않을 테다." 이런 말로 아이들을 부패시킴으로써 그들의

자연스럽고도 자발적인 협력, 협동 정신을 깨뜨려 버립니다.
따라서 진짜 협력, 협동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함께 하자는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재미, 다만 함께 한다는 느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느낌에는 개인의 관념 작용이

나개인 의견의 개입이 없습니다.
이런 협력, 협동을 경험해 보았다면 어떤 경우에 협력, 협동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알
것입니다. 이것 역시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우리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

는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력, 협동을 일깨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한 정신을 일깨울 때 우리의협력, 협동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세요. 우리는 어떤 계획을 위해, 혹은 합의된 바를 위해
협력, 협동하지 않습니다. 함께 한다는 참으로 굉장한 느낌, 상벌이 개입하지 않는, 함께

존재하고 함께 일하는 재미만을 위해 협력, 협동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협력, 협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령 우리가 똑똑하지 못하면
엉뚱한 일에 협력하게 됩니다. 히틀러나 역사상의 여러 독재자같이, 엄청난 계획, 환상적인

이상에 사로잡힌 야심적인 지도자들에게 봉사하는 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협력, 협동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진짜 협력, 협동의 재미를 알 때만, 우리는 어떤경우에 협력, 협동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