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 직업
죽은 남편의 빚까지 갚아가며
어린 세 딸을 홀로 키우다 보니
억척같이 살아낸 인생이었습니다
어느덧 별이 친구가 되어
샛별 보고 나간 걸음이
다시 낮을 건너온 별이 걸어 나오고서야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내가 아니면
저 어린것들 누가 거둘까 “
자식은 엄마를 삶 가운데
붙들어 두는 닻이라더니......
그렇게
엄마는 끝까지 엄마여야만 했기에
하루하루 일그러진 아픔들이
얼굴을 들고 따라 나오며
“여기가 바닥이겠지 ” 할 때마다
논바닥 갈라지는 가슴일지라도...
자식을 생각하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라서
눈물을 걸음에 걸어둔 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자식들 앞에
일생을 눈물로 모두 보여주며
스스로 가슴에 무수한 못 자국을
매어 오면서 그저 자식 키워놓고
옛말하고 살 거라는 내 생각은
자식이 노후대책이 아닌 노후
폭탄이 돼버렸으니깐요
두 딸의 이혼이라는 충격도 가시기도 전에
악착같이 일해 마련해 놓은 19평 집 하나마저도
큰사위 사업 밑천에 담보로 해준 뒤 부도가 나자
사위와 큰딸은 이혼하게 되었고
원금과 이자는 저의 몫이 되어
ㆍ
이젠 다달이 그마저도 힘들어져
가방 하나에 지나온 인생을 담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 하나 장만해
새끼들이랑 비 안 맞고
따신 국물이 내 새끼 목구멍에 넘어갈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까마득한 과거 몇
조각을 떠올려 보면서 말이죠
전생에
빚의 고리가 많은 순으로
인연을 맺어주는 게
부모와 자식 간이라던데
떠나는 가슴이든 남겨진 가슴이든
아물지 못한 가슴으로
떠나가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으며
흐린 기억을 더듬어
허허벌판뿐인 시간의 건널목을
지나 빈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서있기도 힘든 문이 거미줄에 매달린 채
지나는 바람에 덜거덕거리고 있는
이곳은 친정엄마가 마지막 사시던
집이었기에 날이 밝아오자
머리에 수건을 덮어 쓰고선 문도
고치고 거미줄도 걷어내 가며
새 단장을 하고 앉았습니다
내리는 비를 보며
지난날 학교에서 비 맞고 생쥐 꼴로
들어선 나를 아궁이 불에 얼렁 앉히어
숯불에 익힌 감자를 꺼내어 호호 불어
내 입에 넣어주시던 엄마가
지금도 부뚜막에서
환하고 웃고 계신 것 같은 모습에 있어야 할
빈자리를 보며 저는 눈물 짓고 말았습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이 나이가 되어도 그리운건 엄마이기에.
엄마를 찾고 부르다 지친 저는
동네 어귀를 돌아 마을 입구에 있는 큰 팽나무에
앉아 먼 발취서 올라오는 저를 기다려 주는 엄마가 앉아계시던
이 자리에 이젠 제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 앉았습니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
한 장의 사진이 된 시간을 더듬어
흐르는 눈물을 치맛자락에다 지운 뒤
한줌의 바람을 안고
슬픔이 걸려있는 산비탈 기슭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부르면서 말이죠
풀숲을 걸어
이젠 봉분이 지워져 더기가 돼버린
엄마의 무덤가를 쓸어안고서
못다 한 울음을 울고 말았습니다
그 고운 모습 어딜 가고
골진 주름 위 흰서리 얹고
해거름에 굽은 등 보이며 걸어가는 뒷모습에
소리없이 눈물이 고일 때가
지금도 아련히 묻어오면서 말이죠
한참을 머물다 내려서는 발길에
도돌이표 없는 엄마의 가슴을 닮은
서쪽으로 멀어지는 석양을
가슴 아픈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 석양이 붉은색이라면
엄마는 무슨 색일까.....라면서
이별의 계절을 지나
갯바람에 젖은 이슬이 머물다
아침햇살에 사라져간 자릴 더듬어
뒷산에 올라 정신없이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게를 진 채 내려서는 나의 눈길에
우리 집 굴뚝과 마당에서 피어나는
연기에 놀라 서둘러 싸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 한편의 빈 솥단지에는 무언가가 끓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저는 지게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는 그때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들고
세 딸이 서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제68번째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살아생전보다 좋았던 향기는 없듯
빙 둘러 앉은 밥상엔 어느새 차려놓은
음식들로 행복이 피어나고 있었고
“왜 왔어 바쁠텐데... “
“엄마엄마”하고
내미는 종이를 펼쳐본 저는
"정말.. “이라는 말과 함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두 딸이 어엿하게 내민
공무원 합격 통지서를 보면서
“장하다.. 내 딸들..”
“그리고 엄마 나도
장 서방이랑 다시 합치기로 했어... “
“ 새끼들 봐서 그래야지.... “
“장서방이 작지만,
엄마랑 살 집 마련해 놨어.”
“너희끼리
오붓하게 재미나게 살아….”
“같이 가. 엄마”
“그래요 같이 가요..”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저는
“나 다시 취직할까봐 “
“엄마가... 어디에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야.”
“뭔데.. 그게 뭔데?,”
“ 너네들 엄마로 다시 취직 하려고,,,“
제 둥지 틀고 일어난 자식들을
아직도 품고 계신 사람
그런 엄마를 보고 딸들은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울 엄마 취업을 축하해요”
다시 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다시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엄마는 자식에게
만 번을 찔려도 안아픈게
엄마인 것 같습니다
엄마의 자식 사랑에 유통기한은 없다며
오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라는 직업을
만드는 첫날이 되었습니다
“딸들아, 엄마가 힘낼게...."
주고 또 주면서도
더 주지 못해 한이 된 사람
그 사람은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옮긴 글.
'가슴을 파고드는 이야기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은 험하지만.... (0) | 2021.04.04 |
---|---|
세상에 이름난 갑부들에게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한가? (0) | 2021.01.17 |
오늘 사랑하십시오 (0) | 2019.12.09 |
윳놀이와 사색당쟁. (0) | 2019.11.13 |
미각 언어가 상징하는 것. (0) | 2019.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