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무엇인지 한 번 따져보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군요. 우리는 책을 통해, 혹은
선생님으로부터 수학, 지리, 역사 같은 걸 배웁니다. 우리는 런던이 어디에 있는지, 모스크바,
혹은 뉴욕이 어디에 있는지 배웁니다. 우리는 기계를 어떻게 작동하느냐, 새가 어떻게 집을 짓
고새끼를 돌보느냐 등등에 대해 배웁니다. 관찰과 연구를 통해서 배웁니다. 이것은 배움의 한
갈래입니다.
그러나 갈래가 다른 배움, 즉 경험을 통한 배움도 있지 않습니까? 조용한 수면에 돛 그림자를
드리우고 강 위를 미끄러지는 배를 보았을 때, 이 경험은 또 얼마나 굉장한 것입니까? 이런
경험을 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우리들의 마음은 지식을 저장하듯이 그런 종류의 경험을
저장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때쯤 같은 종류의 경험-기쁨의 경험, 우리 삶에는 참으로
드문 평화의 인식-을 기대하면서 배를 보러 강가로 나갑니다. 이처럼 마음은 부지런히 경험을
저장합니다.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기억으로 저장된 경험이 아닐는지요. 우리가 생각이라고부르는 것은 기억의 반응입니다. 강 위를 미끄러지는 배를 보고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했다가 이를 반복시켜보려 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과정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내 말 맞습니까?
놀랐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제대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 안 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책에서 읽은 것, 누구한테서 들었던 것만 되풀이해서 생각합니다. 혹은, 생각을 하되
극히 제한된 경험의 산물만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여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쌓고, 우리와는 다른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관습, 종교, 몸짓을
관찰하고는 이 모든 것을 기억에다 저장합니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 대한 합리적인 자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생각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아주 좁은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강 위의 배, '화장터'로 실려가는 시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마을 아낙네를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인상은 우리의 경험에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무신경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상은 우리 내부로 침잠하여 익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때, 비로소 전혀 다른 종류의 생각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만든 틀 속에 갇히지 않습니다.
이러저러한 믿음에 발목을 잡히고 있을 경우 여러분은 독특한 편견 혹은 전통을 통해 사물을
보게 됩니다. 이로써는 실체와 접촉할 수 없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읍내로 가는 시골 아낙네를본 적이 있습니까? 본 적이 있다면,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어떻게 느꼈습니까? 혹은 이런
여자를 너무 자주 봐 와서 별 느낌이 없었거나,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은 아닌 지요? 자 어떤 일,
어떤 사물을 처음 본다고 합시다.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은 본 것을 자동적으로 자신의 편견에
따라 해석합니다. 내 말 맞지요? 여러분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자본주의자, 혹은 그 밖의
무슨 주의자로서 여러분 틀에 따라 이 일을 경험합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어떤 주의자도 아니
고,어떤 이념이나 믿음의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사물과 접촉한다면 여러분은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이 관찰하고 있는 사물 사이의 놀라운 관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고 마음이 열려 있다면, 주위의 일들이 참으로 놀랍고 싱싱하
게느껴질 것입니다.
젊을 때 이 모든 일들을 잘 보아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물에 뜬 배를 잘
보세요. 지나가는 기차를 관찰하세요. 무거운 짐을 진 농부를 보세요. 부자의 오만, 목사와
거물들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뽐내는 모습을 잘 보아 두세요.
그저 바라보되, 평가하면 안 됩니다. 평가하는 순간, 여러분과 그 사상과의 관계는 끝나고 맙니다.
여러분 자신과 그 사상 사이에가 장벽을 세우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저 관찰만 하면 여러분은
이 사람들, 이러한 사상들과 직접적이 관계를 갖게 됩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예리하게
관찰하되 판단도 하지 않고,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놀라우리만큼
예리해집니다. 이 때 여러분은 끊임없이 배우는 경지에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위에는 어디서나 태어남과 죽음, 돈과 지위와 권력을 둘러싼 투쟁, 우리가 삶이라고부르는 끝없는 작용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이 모든 게 다 대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가져 볼 법하지 않습니까? 우리들 대부분은 답을 얻어내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듣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정치서적 혹은 종교 서적을 들추거나 누구에게설명을 구합니다. 그러나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책을 통해
서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추종, 혹은 어떤 형태의 기도를 통해서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나 나나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싱싱하게 살아 있을 때, 깨어 있을 때, 지켜볼 때, 관찰할 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일 때만 가능합니다. 이럴 때라야만 비로소 우리는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가슴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랑은, 여러분과 다른
사람 사이에 장벽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은 만나고 관찰하되 평가하지 않을 때, 강물에 뜬 배를
그저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때만 여러분 가슴에 싹틉니다. 편견이, 있는 그대로사물을 관찰하는 여러분 시야를 흐리지 못하게 하세요. 그저 관찰하세요. 그러면 이 단순한
관찰이, 나무, 새, 걸어가고, 일하고, 웃는 사람에 대한 자각이 여러분의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변하게 할 것입니다. 이 엄청난 변화가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슴에서 사랑이 샘솟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자들은 먼
저여러분을 가르쳐 이러한 것들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수학, 지리, 역사 같은 걸 배웁니다. 우리는 런던이 어디에 있는지, 모스크바,
혹은 뉴욕이 어디에 있는지 배웁니다. 우리는 기계를 어떻게 작동하느냐, 새가 어떻게 집을 짓
고새끼를 돌보느냐 등등에 대해 배웁니다. 관찰과 연구를 통해서 배웁니다. 이것은 배움의 한
갈래입니다.
그러나 갈래가 다른 배움, 즉 경험을 통한 배움도 있지 않습니까? 조용한 수면에 돛 그림자를
드리우고 강 위를 미끄러지는 배를 보았을 때, 이 경험은 또 얼마나 굉장한 것입니까? 이런
경험을 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우리들의 마음은 지식을 저장하듯이 그런 종류의 경험을
저장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때쯤 같은 종류의 경험-기쁨의 경험, 우리 삶에는 참으로
드문 평화의 인식-을 기대하면서 배를 보러 강가로 나갑니다. 이처럼 마음은 부지런히 경험을
저장합니다.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기억으로 저장된 경험이 아닐는지요. 우리가 생각이라고부르는 것은 기억의 반응입니다. 강 위를 미끄러지는 배를 보고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했다가 이를 반복시켜보려 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과정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내 말 맞습니까?
놀랐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제대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 안 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책에서 읽은 것, 누구한테서 들었던 것만 되풀이해서 생각합니다. 혹은, 생각을 하되
극히 제한된 경험의 산물만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여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쌓고, 우리와는 다른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관습, 종교, 몸짓을
관찰하고는 이 모든 것을 기억에다 저장합니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 대한 합리적인 자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생각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아주 좁은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강 위의 배, '화장터'로 실려가는 시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마을 아낙네를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인상은 우리의 경험에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무신경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상은 우리 내부로 침잠하여 익지 못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때, 비로소 전혀 다른 종류의 생각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만든 틀 속에 갇히지 않습니다.
이러저러한 믿음에 발목을 잡히고 있을 경우 여러분은 독특한 편견 혹은 전통을 통해 사물을
보게 됩니다. 이로써는 실체와 접촉할 수 없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읍내로 가는 시골 아낙네를본 적이 있습니까? 본 적이 있다면,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어떻게 느꼈습니까? 혹은 이런
여자를 너무 자주 봐 와서 별 느낌이 없었거나,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은 아닌 지요? 자 어떤 일,
어떤 사물을 처음 본다고 합시다.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은 본 것을 자동적으로 자신의 편견에
따라 해석합니다. 내 말 맞지요? 여러분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자본주의자, 혹은 그 밖의
무슨 주의자로서 여러분 틀에 따라 이 일을 경험합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어떤 주의자도 아니
고,어떤 이념이나 믿음의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사물과 접촉한다면 여러분은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이 관찰하고 있는 사물 사이의 놀라운 관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고 마음이 열려 있다면, 주위의 일들이 참으로 놀랍고 싱싱하
게느껴질 것입니다.
젊을 때 이 모든 일들을 잘 보아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강물에 뜬 배를 잘
보세요. 지나가는 기차를 관찰하세요. 무거운 짐을 진 농부를 보세요. 부자의 오만, 목사와
거물들을 비롯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뽐내는 모습을 잘 보아 두세요.
그저 바라보되, 평가하면 안 됩니다. 평가하는 순간, 여러분과 그 사상과의 관계는 끝나고 맙니다.
여러분 자신과 그 사상 사이에가 장벽을 세우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저 관찰만 하면 여러분은
이 사람들, 이러한 사상들과 직접적이 관계를 갖게 됩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예리하게
관찰하되 판단도 하지 않고,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놀라우리만큼
예리해집니다. 이 때 여러분은 끊임없이 배우는 경지에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위에는 어디서나 태어남과 죽음, 돈과 지위와 권력을 둘러싼 투쟁, 우리가 삶이라고부르는 끝없는 작용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이 모든 게 다 대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가져 볼 법하지 않습니까? 우리들 대부분은 답을 얻어내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현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듣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정치서적 혹은 종교 서적을 들추거나 누구에게설명을 구합니다. 그러나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책을 통해
서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추종, 혹은 어떤 형태의 기도를 통해서
납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나 나나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싱싱하게 살아 있을 때, 깨어 있을 때, 지켜볼 때, 관찰할 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일 때만 가능합니다. 이럴 때라야만 비로소 우리는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가슴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랑은, 여러분과 다른
사람 사이에 장벽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은 만나고 관찰하되 평가하지 않을 때, 강물에 뜬 배를
그저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때만 여러분 가슴에 싹틉니다. 편견이, 있는 그대로사물을 관찰하는 여러분 시야를 흐리지 못하게 하세요. 그저 관찰하세요. 그러면 이 단순한
관찰이, 나무, 새, 걸어가고, 일하고, 웃는 사람에 대한 자각이 여러분의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변하게 할 것입니다. 이 엄청난 변화가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슴에서 사랑이 샘솟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자들은 먼
저여러분을 가르쳐 이러한 것들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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