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그의 내부에 깨우쳐진 합리적 의식이 그의 생활을 갈기갈기
찢어 정지시키는 것같이 생각되나, 그것은 그저 그가, 생활이 아니었던
것, 생활이 아닌 것, 또 장차도 생활일 수 없는 것을 자기의 생활로
인정하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생활이란 그 출생과 더불어 시작되는 개인적 생활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념을 증명해 주는 현대 세계의 그릇된 속에서 키워져 자라온
인간은, 그가 갓난아기였고 어린이였던 시대에도 생활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 뒤 어른이 되고 천년이 되었을 때도 그 동안 끊임없이 생활해
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생각에 자기는 매우 오랫동안 살아왔고
늘 끊임없이 살아왔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이제는 여태껏 살아온 것처럼
살아갈 수 없이 자기의 생활은 정지되고 갈기갈기 찢어졌다는 것이 틀임
없이 명백하게 될 시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릇된 가르침은 인간의 생활을 그 출생에서 죽음까지라는 관념을 머리
속에 굳게 집어넣었다. 그래서 인간은 눈에 보이는 동물적 생활을 보고는,
눈에 보이는 생활의 관념과 자기의 의식을 혼동시켜 눈에 보이는 이
생활을 자기의 생활이라고 굳게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 깨우쳐진 합리적 의식은 동물적 생활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요구를 환기시켜 그에게 그의 인생관의 잘못을 지적한다.
그렇지만 그의 몸 속 깊숙히 뿌리박은 그릇된 가르침은 그에게 이 잘못을
깨닫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그는 동물적 존재로 보는 인생관을 저버릴
수 없다.
그리고 자기의 생활이 합리적 의식의 깨우침에 의해서 정지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생활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그에게는 정지되어 버린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일찌기 존재조차 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자기의 생활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즉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의 생존은 결코 그의 생활이 아니었던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의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살아왔다는 그의 관념은 꿈꾸고 있을
때의 의식의 착각인 것이다. 즉 잠이 깰 때까지는 아무런 꿈도 없는
것이며, 그것은 모두 잠이 깬 순간에 구성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합리적 의식이 깨우칠 때까지는 아무런 생활도 없었던 것이며, 과거의
생활에 관한 관념은 합리적 의식이 깨우쳐지는 순간에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어렸을 동안 동물 같은 생활을 보내고, 인생에 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만약 그가 10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는 자기의
생활에 관해서나 어떠한 생활에 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마치
어머니의 태 속에서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관해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이성이 발달되지 못한
어른, 백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살아있다는 일, 다른 존재가
살아있다는 일에 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적 생활은 합리적 의식의 출현―남들 앞에 현재와 과거의 자기
생활과 다른 사람 개개인의 생활을 동시에 계시하여 이들 개개인의
관계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모든 일,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계시의
당(當)의 의식―즉 그의 내부에 개인 생활에 대한 행복의 부정과,
그에게는 그 생활을 정지시키는 것같이 여겨지는 모순을 야기시키는 의식,
이 의식이 나타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이외에 자기의 눈에 보이는 존재물에 정의를 내리는 것처럼
자신의 생활을 시간으로서 정의를 내리려 하고 있다. 그러던 찰라
난데없이 그의 내부에 그의 육체적인 출생시와는 일치하지 않는 생명이
깨우쳐져 오므로, 그의 시간으로서는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 생활일 수
있다고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인간 속에 자기의
합리적 생활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한 점을 찾아보았댔자 결코
그것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그 희상 속에서는 결코 이 일점, 즉 합리적 의식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합리적 의식이 자기 내부에 있었던 것
같이 상상된다. 설령 그가 이 의식의 실마리 비슷한 것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저히 그의 육체적 출생 속에서 찾아 볼 수 없으며, 이
육체적 출생과는 하등의 공통점이 없는 영역 속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합리적 출생을 그의 육체적 출생이 생각되는 것과는 아예
다른 것으로써 인식한다. 즉 자기의 합리적 의식에 관해서 스스로 물을 때
인간은 결코 합리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어느 해 어느 달에 출생하신 자기
부모의 자식이며, 조부모의 자손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늘 자신을 하나의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때로는 수천 년의 옛적에 이 세계의 다른 끝에 살고
있던 합리적 존재, 즉 시간과 장소의 관계로는 그에게 전혀 낯선 존재의
의식과 하나로 융합되는 것으로써 인식하는 것이다.
그 합리적 의식에 있어서 인간은 자기의 여하한 발생도 인정치 않고,
그저 다른 합리적 의식과의 시간과 공간을 넘은 합류를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자기 내부에 들어오고, 자기가 그들 내부에 들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속에 깨우쳐진 이 합리적 의식이야말로
헤매는 인간들이 인생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이비 인생을 정지시키는
것처럼 생각되는 듯이, 헤매는 인간들에게는 이 깨우침이 온 그 순간부터
그 생활이 멈출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래프 톨스토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에서의 참된 생활의 탄생 (0) | 2013.06.23 |
---|---|
분열이나 모순은 없다. 그것은 오직 그릇된 교의에 있어서 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0) | 2013.06.22 |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 (0) | 2013.06.21 |
모든 사람들은 저들이 상태의 비참함과, 활동의 무의미함을 의식하지 (0) | 2013.06.21 |
현대인에게 나타난 의식의 분열 (0) | 2013.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