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프 톨스토이

인간생활의 근본적 모순

별관신사 2014. 2. 16. 04:11

모든 인간은 오직 자기의 생활을 잘하고자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다. 자기의 행복에 대한 희구(希求)를 느끼지 못할 때, 그때 인간은
자기를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의 행복을 바라지

않고서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다. 개개인에 있어서 산다는 것은, 행복을
바라는 것, 즉 행복을 얻는 일이다.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 속에만, 자기 개인 속에서만 생명을 느낀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무엇보다 자기가 바라는 행복은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행복인 것 같이 생각된다. 그에게 실제 살아있는 것은 자기
혼자만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다른 존재의 생활은 자기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 같이 느낀다. 즉 그저 생명 비슷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인간은 다른 존재의 생활을 그저 관찰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이 관찰을 통해서 그것들이 살아있음을 알 따름이다. 인간은

다른 존재의 생활에 관해서는 자기가 그들의 일을 한번 생각해 보려고
생각할 때만 알게 되는 데 지나지 않으나, 자신의 경우에는 자기가 살아
있음을 항상 알고 있으며, 단 일순간이라도 그 의식을 그칠 수는 없다.

따라서 만인에게 참된 생명으로서 생각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생활뿐이다.
그에게는 그의 주위에 있는 다른 존재의 생활은 그저 자기의 생존을 위한
조건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 같이 생각되는 것이다. 설사 그가 남에게

악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남의 고뇌를 보는 일이 자기
자신의 행복을 해치기 때문인 것이다. 또 가령 그가 남에게 행복을
바란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에게 행복을 원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즉

그가 선을 바라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서 좋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다른 존재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을 더해 주기 때문에 불과하다.
인간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은 오직 그가 자기의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생명의 행복, 즉 자기 한 몸의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인간은, 오직 자신의 행복 달성을 위해서 노력하면서도 그 행복이
다른 존재에 의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다른 존재를

관찰하고 연구할 때 인간은 그러한 모든 것이―인간도,
짐승마저도―생명에 대해서는 자기와 똑같은 개념(槪念)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존재의 각각은 그와 똑같이 오직 자신의 생명,

자신의 행복만을 느끼고, 자신의 생활만이 소중하고, 진정한 것이라
생각하고는 다른 일체의 존재의 생활은 그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인간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자기와 마찬가지로, 항상 자기의 자그마한 행복을 위해서는 그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인간마저도 포함하는 다른 모든 존재보다 큰 행복은 물론,

그 생명마저 서슴지 않고 빼앗을 각오가 있어야 함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것을 알면 인간은 본심이 아니면서도 다음과 같은 상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즉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그러나 그는 사실이

틀림없이 그러함을 알고 있다 ―한 개나 열 개의 존재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무수한 모든 존재가,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주야로 자기
일신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를 없애 버리려 한다고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을 알게 되면 인간은 그가
인생을 이해하는데 유일한 열쇠로 되어 있는 그의 개인적 행복이 그저
쉽사리 얻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에게서 빼앗겨지리라 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오래 살면 살수록 이 판단은 경험에 의해서 더욱더 확인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서로 뜯어먹으려 하고 있는(개성의 결함으로 이루어진

자기도 참여하고 있는)이 세상의 생활이 자기에게는 행복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반드시 큰 불행임에 틀림없으리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개성과 행복을 위해서는

조금도 두려워할 것 없이 다른 개성을 상대로 해서 멋지게 싸울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놓인다 하더라도, 이성과 경험은 곧 그가 개인의
열락(悅樂)이라는 형태로서 인생에게서 빼앗아 가지는 그러한 행복의

유사품은 결코 행복이 아니며, 다만 열락에는 따라다니기 마련인 고뇌를
한층 강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그에게 주어진 행복의 견본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줄 것이다. 인간은 오래 살면 살수록 열락은 점점 그 정도가

감소되고 권태 포만 노고 고뇌가 점점 더 커져 감을 더욱 뚜렷이 알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힘의 감퇴나 건강이 좋지 못함을 느끼기 시작하기도
하고, 남의 병, 노쇠나 죽음을 목격함에 이르러서는, 더구나 그것

하나에만 참되고 충실한 생명을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의 생존조차도
시시각각, 이거일동이 쇠퇴 노쇠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또 그의 생명은 그와 싸우는 다른 존재라든가, 항상 더해 가는 고통에

의한 수 없는 파괴적 우연에 부딪히는 것 이외에도 그 자체의 특성에 의한
죽음으로의 끊임없는 접근, 즉 개성의 생명과 개성의 여하한 행복의
가능성마저도 여지없이 모조리 부셔버리고야 말 상태로의 접근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또 자기, 자기의 인격, 즉
그것 하나에만 그가 생명을 느끼고 있는 것이, 싸워서는 안 될 것을
상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데 지나지 않다는 것, 또 그는 그저

행복의 유사품을 줄 뿐이고, 의례히 고통으로 끝나기 마련인 열락을
찾아서 지탱할 수 없는 생명을 지탱하려고 하고 있을 따름임을 인정한다.
인간은 또 그 자신, 그 자신의 인격, 즉 그 하나만을 위해서 그가 행복과

생명을 원하고 있는 것이 행복도 생명도 가질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그가 갖고자 원하는 것―행복과 생명을 갖고 있는 것은 실로
그가 느끼지도 않고 느끼지도 못하는, 그에게는 조금도 인연이 없는

존재―그 실재에 관해서 그는 알 수도 없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존재뿐이다.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 그에게 소용되는 오직 하나의 것, 그의

생각에는 그것만이 참되게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 그이 인격,
마침내는 사멸되어 뼈가 되고 구더기가 될 것, 그것은 그가 아니라
그에게는 필요도 없고, 소중하지도 않고, 그가 살아있다고도 느끼지 않는

것,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물의 전 세계, 그것이야말로
참된 생명이며, 영원토록 남아서 살아나갈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유일한 것으로 느껴지는 이 생명, 그의 모든 활동의 원동력인 생명은

어쩐지 일종의 불가능하고 애매한 것이 되고, 그의 밖에 있고, 그에게는
사랑스럽지 않으며 느껴지지도 않는 한 개의 알지 못할 생명이야말로
유일한 참된 생명이라는 것이 된다.

그가 감지(感知)할 수 없는 것, 그것만이 그가 혼자 가지기를 원하는
여러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슬픈
기분으로 있는 나쁜 때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가지지 않고도

있을 수 있는 따위의 관념이 아니라, 오히려 틀림없고 뚜렷한 진리이며,
만약 이 사상이 한번이라도 저절로 인간의 마음에 우러나든가, 한번이라도
남에게서 설명을 받든가 하면 인간은 영원히 그것으로부터 떠날 수도

없으며 그 무엇으로서도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몰아낼 수 없을 정도의 것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