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무수한 방법으로 자신의 에고를 지킨다. 인생에서 우리는 두가지 일을 한다.
첫번째는 태양과 달과 별 바람 비 새 나무 사랑 아름다움 진리로 향한 문을 걸어 잠그는
일이다. 우리는 모든 문을 걸어 잠근다. 인생을 문도 창문도 없는 무덤으로 만든다.
라이프니쯔의 창문없는 모나드로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나드라는 캡슐안에
갇힌 인생을 산다. 우리는 계속 그렇게 살고 있다. 둘째는 자신의 둘레에 친 벽을
계속 두껍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쉼없이 경쟁을 하고 야욕을 불태우고 더 많이
소유하며 (소유의 대상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는 상관 없다.) 계속 자신의 벽을
두껍게 만들고 있다. 세상에 이름난 갑부들에게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소비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을 버는게
아니라 에고의 벽을 더 두껍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 경쟁
한다. 경쟁은 갈등을 야기하고 갈등은 에고에 네너지를 공급한다.
인간의 역사가 아는 것은 갈등 뿐이다. 인간의 역사가 아는 것은 악행 뿐이다.
인간의 역사가 아는 것은 악인뿐이다. 인간의 역사가 아는 것은 미친사람 뿐이다.
역사는 뭔가가 잘못되었을 때만 기록을 하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모든일이
잘될 때는 역사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는 예수에 대하여도 언급을
하지 않는다. 만약 성경이 없었더라면 예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예수와 같은 존재들이 많았지만 역사는 그들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역사는 그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 온유하고
고요했으며 자연과 삶과 하나가 되어 살았다. 물 흐르듯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냥 왔다가 그냥 갔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역사는 깨달은 붓다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붓다나 마하비라 짜라투스트라등의
이름을 들으면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인 인물처럼 들린다. 실존했던 인물들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이 가공한 인물처럼 들린다. 인간의 꿈이 투사한 이상의
인물로 보일 뿐 실존하는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아니다. 그들은 진실로 이땅을
살다 간 인물들이다. 그들은 너무나 진실하게 산 나머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땅을 떠났다.
오쇼의 위대한 만남중 손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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