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진보(古文眞寶)

제갈공명의 출사표.

별관신사 2018. 12. 3. 17:05

[출사표 전문(全文)]

 
전출사표(前出師表)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 今天下三分, 益州罷弊(또는 疲弊)
선제(유비)께서 왕업을 시작하신 지 아직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중도에서 돌아가시고, 지금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리 익주 (益州) 는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으니,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 不懈於內, 忠志之士, 忘身於外者,
이는 진실로 국가가 위급하여 흥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모시고 지키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뜻이 있는 무사들이 밖에서 자기 몸을 잊고서 애쓰는 것은, 

蓋追先帝之殊遇, 欲報之於陛下也.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모두가 선제의 특별히 두터웠던 대우를 추모하여 이를 폐하에게 보답하고자 해서입니다. 폐하께서는 진실로 성덕을 열고 펴시어, 선제가 남긴 덕을 빛나게 하여 

恢弘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뜻있는 선비들의 의기를 더욱 넓히고 키우셔야 하며, 결코 스스로 덕이 엷고 재주가 없다 단정 내리셔도 아니 되며, 옳지 않은 비유로 의를 잃으셔서, 충성된 간언이 들어오는 길을 막으셔서도 아니 됩니다

宮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奸犯科及爲忠善者,
궁중과 관원이 모두 일체가 되어야 하니 
선과 악을 척벌함을 달리해서는 안될 것이요, 간사한 짓을 하여 죄과를 범하는 자 및 성실하고 선량한 일을 한 자가 있으면

宜付有司, 論其刑賞, 以昭陛下平明之理, 不宜偏私, 使內外異法也.
마땅히 담당자에게 맡겨서 그 형벌과 상을 논하여 폐하의 공평하고 분명하신 다스림을 밝혀야 할 것이요, 편벽되고 사사로이 하여 내외로 하여금 법을 달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侍中侍郞, 郭攸之.費褘.董允等, 此皆良實, 志慮忠純, 是以先帝簡拔,
시중과 시랑인 곽유지·비위·동윤 등은 모두가 선량하고 진실하여 뜻과 사려가 참되고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선제께서 뽑으시어,

以遺陛下. 愚以爲宮中之事, 事無大小, 悉以咨之, 然後施行,
폐하께 남기셨으니 제가 생각건대 궁중의 일은 일에 크고 작음 없이 모두 이들에게 자문하신 연후에 시행하시면 

必能裨補闕漏, 有所廣益. 將軍向寵, 性行淑均, 曉暢軍事, 試用於昔日,
반드시 폐하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넓히고 유익하게 하는 바가 있을 것이요, 장군 상총은 성품과 행위가 착하고 공평하여 군사를 잘 아는지라 예전에 시험 삼아 등용함에

先帝稱之曰..能. 是以衆議擧寵爲督. 愚以爲, 營中之事, 事無大小,
선제께서 그를 칭찬하여 '유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총을 천거하여 지휘관으로 삼았으나 어리석은 신은 생각건대 군영 중의 일은 대소 없이 

悉以咨之, 必能使行陣和睦, 優劣得所也. 親賢臣遠小人,
모두 그에게 물으면 반드시 각 부대들로 하여금 화목할 수 있게 되어 우수한 자와 졸렬한 자가 각각 제자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함은 

此先漢所以興隆也, 親小人遠賢臣, 此後漢所以傾頹也. 先帝在時,
이것이 선한(先漢)이 흥하고 융성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근히 하고 어진 신하를 멀리함은 이것이 후한(後漢)이 패망한 원인입니다. 선제께서 계실 때에

每與臣論此事, 未嘗不嘆息痛恨於桓靈也.
매사 저와 함께 일을 논의할 적마다 일찍이 후한의 환제와 영제의 일을 탄식하고 몹시 원통하게 생각하셨습니다.
侍中,尙書.長史.參軍, 此悉貞亮死節之臣也. 陛下親之信之, 則漢室之隆, 可計日而待也.
시중·상서·장사·참군은 모두 곧고 어질며 죽음으로 절개를 지킬 신하들이오니, 요청하건대 폐하께서는 이들을 가까이 하시고 이들을 믿어 주시면 곧 촉한(則漢)의 황실이 다시 번창 할 날을 헤며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難世, 不求聞達於諸侯,
신은 본디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 갈며 지내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제후에게 알려져서 출세할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선제께선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스스로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신의 초옥 안으로 찾으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由是感激, 許先帝以驅馳.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도와 힘써 일하기로 하니, 그 뒤 선제의 세력이 엎어지고 뒤집히려 할 때 신은 싸움에 진 군사들 틈에서 소임을 맡고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에서 명을 받았습니다.

爾來二十有一年矣. 先帝知臣勤愼. 故臨崩, 寄臣以大事也. 受命以來,
그 이래로 21년이 됩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삼가고 조심함을 아시는지라 그러므로 돌아가심에 임하여 신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명령을 받은 이래로

夙夜憂慮, 恐付託不效, 以傷先帝之明.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아침부터 밤까지 신이 우려해 온 것은 그 당부를 들어 드리지 못하여 선제의 밝으심을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너 그 거친 오랑캐 땅 깊이까지 들어갔습니다.

今南方已定, 兵甲已足, 當奬率三軍, 北定中原, 庶竭駑鈍, 攘除姦凶,
이제 다행히 남방은 이미 평정되었고, 싸움에 쓸 무기며 인마도 넉넉합니다. 마땅히 3군을 격려하고 이끌어 북으로 중원을 정벌해야 하고, 노둔한 힘이나마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야 하며,

以復興漢室, 還于舊都, 此臣所以報先帝, 而忠陛下之職分也.
다시 한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신이 선제께 보답하는 방법이요 폐하게 충성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至於斟酌損益, 進盡忠言, 則攸之.褘.允之任也. 願陛下,
그 동안 이곳에 남아 나라에 이롭고 해로움을 헤아려 폐하께 충언올리는 것은 곽유지와 비위·동윤의 일이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託臣以討賊興復之效, 不效則治臣之罪, 以告先帝之靈.
신에게 역적을 치고 나라를 되살리는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신이 만약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죄를 다스리시고 선제의 영전에 알리옵소서.

若無興德之言則責攸之.褘.允等之咎, 以彰其慢. 陛下亦宜自謀,
만일 폐하의 덕을 흥하게 할 충언이 없으면 곽유지와 비위·동윤을 꾸짖어 그 게으름을 밝히옵소서. 폐하 또한 자주 의논하시어 스스로 그 길로 드시기를 꾀하소서.

以諮諏善道, 察納雅言, 深追先帝遺詔. 臣不勝受恩感激, 今當遠離, 臨表涕泣, 不知所云.
좋은 방도를 자문하시고, 좋은 말을 살펴 받아들여 선제의 남기신 말을 깊이 따르소서. 신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먼 길을 떠나거니와, 떠남에 즈음하여 표문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후출사표(後出師表)
 
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 故託臣以討賊也.
선제께서는 한(漢)을 훔친 역적과는 함께 설 수 없고, 왕업은 천하의 한모퉁이를 차지한 것에 만족해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여기시어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라 당부하셨습니다.
 
以先帝之明, 量臣之才, 固知臣伐賊 才弱敵强也.
선제의 밝으심은 신의 재주를 헤아리시어, 신이 역적을 치는 데에 재주는 모자라고 적은 강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然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孰與伐之 是以託臣而弗疑也.
그러나 역적을 치지 않으면 도리어 왕업이 망할 것이니 어찌 일어나 치지 않고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이에 그 일을 신에게 맡기시고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臣受命之日 寢不安席 食不甘味, 思惟北征宜先入南, 故五月渡瀘 深入不毛 幷日而食
신은 그 같은 선제의 명을 받은 뒤로 잠자리에 누워도 편안하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입에 달지 아니했습니다. 북으로 위를 치려하면 먼저 남쪽을 평정해야 되겠기에 지난 5월에는 노수를 건넜습니다. 거친 땅 깊숙이 들어가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애쓴 것은,
 
臣非不自惜也, 顧王業不可偏安於蜀都故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 而議者謂爲非計.
신이 스스로를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왕업을 돌아보고, 성도에서 만족해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여겨, 위태로움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선제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게 좋은 계책이 못 된다고 말했습니다.
 
今賊適疲於西 又務於東 兵法乘勞 此進趨之時也 謹陳其事如左
이제 적은 서쪽에서 지쳐 있고 동쪽에서도 힘을 다 썼습니다. 병법은 적이 수고로운 틈을 타라 했으니 지금이야말로 크게 밀고 나아갈 때입니다. 그것에 관하여 삼가 아뢰면 아래와 같습니다.
 
高帝明幷日月 謀臣淵深 然涉險被創 危然後安
고제께서는 밝으심이 해나 달과 같고 곁에서 꾀하는 신하는 깊은 못과 같았으나, 험한 데를 지나고 다치시고, 위태로움을 겪으신 뒤에야 비로소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今陛下未及高帝,謀臣不如良,平, 而欲以長策取勝 坐定天下 此臣之未解一也
지금 폐하는 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모신은 장량, 진평 같지 못하건만 긴 계획으로 이기려 하시고, 천하를 편히 앉아 정하려고 하니, 이는 신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劉繇 王朗各據州 論安言計 動引聖人 群疑滿腹 衆難塞胸
유유, 왕량은 각기  주군에 웅거하여 안을 논하고 계를 말함에 성인까지 움직이건만 무리의 의심은 배에 가득하고, 유요와 왕랑은 모두 일찍이 큰 고을을 차지하여, 평안함을 의논하고 계책을 말할 때는 성인(聖人)을 끌어들였으되, 걱정은 배에 가득하고, 이런저런 논의는 그 가슴만 꽉 메어 있어,
 
今歲不戰 明年不征 使孫權坐大 遂幷江東 此臣之未解二也
올해도 싸우지 아니하고 이듬해도 싸우러 가기를 망설이다가 마침내는 손권에게 앉은 채로 강동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신이 알 수 없는 일로 생각하는 두 번째 일입니다.
 
曹操智計 殊絶於人 其用兵也 彷彿孫吳
조조는 지모와 계책이 남달리 뛰어나고 군사를 부림에는 손자·오자를 닮았으나,
 
然困於南陽 險於烏巢 危於祁連 逼於黎陽 幾敗北山
남양에서 곤궁에 빠지고 오소에서 험한 꼴을 당하며, 기련에서 위태로움을 겪고, 여양에서 쫓기고, 북산에서 지고,
 
殆死潼關 然後僞定一時耳 況臣才弱 而欲以不危而定之 此臣之未解三也
동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야 겨우 한때의 평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같이 재주 없는 사람이 어찌 위태로움을 겪지 않고 천하를 평정하려 들겠습니까? 그게 신이 알 수 없는 세 번째 일입니다.
 
曹操五攻昌覇不下, 四越巢湖不成任用李服 而李服圖之 委任夏侯 而夏侯敗亡,
조조는 다섯 번 창패를 공격했으나 떨어뜨리지 못했고, 네 번 소호를 건넜으나 공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복을 써보았으나 이복이 오히려 뺏어버렸고, 하후에게 맡겼으나 하후는 패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先帝每稱操爲能, 猶有此失況臣駑下 何能必勝 此臣之未解四也
선제께서는 매양 조조가 능력 있다고 추키셨으나 오히려 그 같은 실패가 있었는데, 하물며 신같이 무디고 재주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반드시 이기기만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신이 알 수 없는 네 번째 일입니다.
 
自臣到漢中 中間期年耳 然喪趙雲, 陽群, 馬玉, 閻芝, 丁立, 白壽, 劉合, 鄧銅等
신이 한중에 온 지 아직 한 해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운·양군·마옥·염지·정립·백수·유합·등동 등,
 
及曲長屯將 七十餘人, 突將無前賓?,靑姜,散騎武騎 一千餘人
그 아랫 장수 일흔 남짓을 잃었습니다. 언제나 맨 앞장이던 빈수·청광이며, 산기·무기를 잃은 것도 천 명이 넘는바
 
此皆數十年之內. 所糾合四方之精銳非一州之所有.
이는 모두 수십 년 동안 여러 지방에서 모아 들인 인재요 한 고을에서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若復數年 則損三分之二也, 當何以圖敵此臣之未解五也
만약 다시 몇 년이 지난다면 이들 셋 중 둘은 줄어들 것이니 그때는 어떻게 적을 도모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알 수 없는 다섯 번째 일입니다.
 
今民窮兵疲, 而事不可息, 事不可息 則住與行 勞費正等.
지금 백성들은 궁핍하고 군사들은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  멈추어 있으나 움직여 나아가나 수고로움과 물자가 드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而不及早圖之 欲以一州之地 與賊持久 此臣之未解六也
차라리 일찍 적을 도모함만 못합니다. 그런데도 한 고을의 땅에 의지해 적과 긴 싸움을 하려 하시니 이는 신이 알 수 없는 여섯 번째 일입니다.
 
夫難平者事也, 昔先帝敗軍於楚當此之時 曹操?手 謂天下已定.
무릇 함부로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세상 일입니다. 지난날 선제께서 초(楚) 땅에서 싸움에 지셨을 때 조조는 손뼉을 치며 말하기를 천하는 이미 평정되었다 했습니다.
 
然後先帝東連吳越 西取巴蜀 擧兵北征 夏侯授首 此操之失計 而漢事將成也
그러나 뒤에 선제께서는 동으로 오(吳)와 손을 잡고 서(西)로는 파촉(巴蜀)을 얻으신 뒤 군사를 이끌고 북으로 가시어 마침내는 하후연의 목을 베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조조가 계책을 잘못 세워 우리 한이 설 수 있게 해준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然後吳更違盟 關羽毁敗 ?歸蹉跌 曹丕稱帝 凡事如是 難可逆料
그러나 뒤에 오가 맹약을 어겨, 관우는 싸움에 져서 죽고 선제께서는 자귀에서 일을 그르치시어 조비는 다시 천자로 칭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니 미리 헤아려 살피기란 실로 어렵습니다.
 
臣鞠躬盡力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所能逆竟睹(左者右見)也
신은 다만 엎드려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애쓸 뿐 이룸과 못 이룸,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해 미리 내다보는 데는 밝지 못합니다.



출처: http://hidemylife.tistory.com/58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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