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눈.

[죽음의 신과 만나는 단계]

별관신사 2013. 6. 27. 05:42

[죽음의 신과 만나는 단계]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 때문에 실재
의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름을
부른 다음 이렇게 일러 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잘 들으시오. 그대가 경험
하고 있는 모든 괴로움은 그대가 쌓은 진화적 행위[까르마]에서
비롯되는 것이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마시오. 모든 것
이 그대 자신의 진화적 행위에서 비롯된다오. 그러니 3가지 보

물께 열심히 기도하시오. 마하무드라[大印]와 수호불에 대해 명
상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3가지 보물께 기도도 하지 않는다면 천
사 같은 그대의 수호신은 흰 조약돌을 가지고 그대가 쌓은 선행
을 헤아리고, 악마 같은 그대의 수호신은 검은 조약돌을 가지고
그대가 쌓은 악행을 헤아릴 것이오.

천사 같은 수호신 과 악마 같은 수호신 은 통속 불교 신앙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명상의 대상인 수호불과는 다른 존재이
다.)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이 신앙에 따르면, 모든 존재에게는
천사 같은 수호신과 악마 같은 수호신이 개인적으로 따라 다니

며 선과 악의 충동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이 한 인간
의 선과 악을 저울질 하여, 죽음의 신 야마의 법정에 그 결과를
통보한다.

그러면 그대는 걱정도 되고,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할 것이오.
그대는 부들부들 떨면서, 나는 죄를 하나도 짓지 않았다. 고 거
짓말을 할 것이오. 그러면 죽음의 신 야마는 내가 그대의 진화
적 행위의 거울(業鏡)을 조사해 보겠노라 고 말할 것이오. 그대

의 진화적 행위의 거울 속에는 그대가 행한 선과 악이 명백하게
나타난다오. 그러므로 그대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소용이 없
소. 야마는 그대의 목을 밧줄로 묶어 끌고 나갈 것이오. 그는 그
대의 목을 자르고, 심장을 도려낼 것이오. 창자를 끄집어 내고,

뇌를 핥으며, 그대의 피를 마실 것이오. 그대의 살을 뜯어 먹고
뼈를 씹어 먹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죽지 않소. 뼈가 부서지
고 몸이 산산조각이 나도 그대는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오.
그래서 부서지고 잘리는 고통을 계속 당하게 되오.

찬사 같은 수호신이 흰 조약돌로 그대의 선행을 헤아릴때 두
려워 떨지 마시오. 거짓말도 하지 마시오. 야마를 두려워 하지
마시오. 그대의 몸은 정신적인 몸이오. 그러므로 아무리 자르고
부셔도 그대는 죽지 않소. 그대의 몸은 실체가 있는 몸이 아니
라, 비어-있는 몸이오. 그러니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

소. 야마와 그의 졸개들 역시 그대의 환상에 지나지 않소. 그들
역시 실체가 없는 비어-있는 존재들이오. 실체가 없이 비어-있
는 야마가 역시 실체가 없는 비어-있는 그대를 어찌 해칠 수
있겠소. 그대는 모든 것이 그대의 환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되오. 야마, 천사, 악마, 황소 머리를 한 저승 사자 등은 실
재하는 존재가 아니라오. 이런 것이 나타나면, 그대가 중간계를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시오.

본문에는 2가지 가르침이 담겨 있다. 첫째, 중간계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의 몸은 꿈 속의 몸처럼 정신적인 몸이다. 그 몸은 피
와 살로 된 육체가 없기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죽지 않는다. 둘

째, 육체나 물질은 실체가 없는 비어-있음 이며, 비어-있음 은
아무 것도 없는 공허가 아니라 그것이 곧 물질이며 육체다(色卽
是空, 空卽是色).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은 우리가 그렇게 인식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모든 체험은 꿈과 같다. 고유한 실

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꿈을 꾸면서 자기가 지
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악몽에서 벗어나 자유로
와진다. 자기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마음 먹는
대로 멋진 꿈을 꿀 수 있으며, 꿈에서 깨어날 수도 있다.

마하무드라[大印]의 사마디(三昧) 상태에 대해 명상하도록 하
시오.

물질과 비어-있음 이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이며, 그 둘의 결합
상태에는 희열이 충만하다. 이것이 곧 마하무드라의 사마디 상
태 이다.

명상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그대가 두려워 하고 있는 대상을
세밀히 조사해 보시오. 그래서 그대가 두려워 하는 대상이 물질
적인 실체를 결여한 비어-있음 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시오.
이 비어-있음 이 곧 진리의 몸(法身)이고, 두려워 하는 대상의

본질이 비어-있다 는 각성이 곧 깨달은 몸(報身)의 마음이라오.
이 비어-있음 은 결코 텅 빈 공허가 아니오. 비어-있음 과 투명
성은 둘이 아니오. 비어-있음 의 본성이 투명성이고, 투명성의
본성이 곧 비어-있음 이오. 그대가 모든 선입관이 제거된 순수

한 마음으로 투명성과 비어-있음 을 일체(一體)로 파악한다면,
꾸미지 않은 본래 상태에 거할 수 있을 것이오. 본래 상태에 거
하는 이 마음이 원초적인 진리의 몸(原初法身)이오. 이 마음은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고 스스로를 나타낸다오. 이렇게 스스로
나타난 몸이 곧 나투는 몸(化身)이라오.

최고 단계의 수행인 위대한 완성 또는 마하무드라[大印]에 대
한 간략한 가르침이다. 보통의 경우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에게 이런 가르침을 전해 주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중
간계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그의 의

식은 대단히 유동적이고 극단적인 변형이 가능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중간계에서는 자신의 실재를 향해 순간적으로 완전
히 돌아설 가능성이 항상 있다.
본문에는 붓다의 네 몸이 언급되어 있다. 붓다의 몸의 본체는

진리의 몸(法身)이고, 주관적인 측면은 깨달은 몸(報身)이며, 객
관적인 측면은 나투는 몸(化身)이다. 본문에 언급된 원초적인
진리의 몸(原初法身) 은 붓다의 본성인 지혜를 부각시키는 용어
다. (에반스 벤츠 번역본에는 아디-카야 原初身로 되어 있고,

쵸감 뚜룽빠 번역본에는 스바바비카카야 自性身로 되어 있다.
에반스 벤츠는 각주에서 아디-카야 原初身와 다르마-카야 法
身는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譯者註).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점을 분
명히 깨닫도록 하시오. 그러면 그대는 붓다의 네 몸을 성취한
완전한 붓다가 될 것이오. 그러니 딴 데 정신 팔지 마시오. 이

깨달음이 붓다와 중생의 경계선이오. 이 순간 진리에서 멀어질
수도 있고, 이 순간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고 말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오.

그대는 어제까지, 중간계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올바로 인
식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소. 그대가 계속 미혹 속에서 헤맨
다면 그대를 구원하고자 하는 자비의 밧줄이 끊어질 것이오. 그
러면 그대는 자유가 없는 구덩이 속에 떨어질 것이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하시오.

여기에서 자비의 밧줄이 끊어진다는 말이 처음으로 나온다. 이
런 말을 하는 이유는 계속 일상적인 삶의 충동에 휘말려, 진실
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여기까
지 온 사람의 의식 밑바닥에는, 자기가 어떻게 해도 깨달음을

얻은 존재들이 구원해 줄 것이라는 무의식적이 기대가 있을지
도 모른다. 그래서 본문은, 깨달음을 얻은 존재들과 관계를 맺
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무지와 망상을 절단
하는 자기의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대가 이렇게 일러주면, 앞에서는 실재의 빛을 인식하지 못
했던 사람도 빛을 깨닫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다.
부정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대가 읽어주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이 반복해서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지금까지 일러준 것을 잘 이해
하지 못하겠거든 붓다(佛)와 진리(法)와 수행자 공동체(僧)와 자
비로운 주님(觀世音菩薩)께 도움을 청하시오.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환상들을 자비로운 주님이나 그대의 수호불로 보

려고 애쓰시오. 생전에 그대가 스승에게 입문할 때 받은 이름과
스승의 이름을 기억하여, 그 이름을 죽음의 신 야마에게 큰 소
리로 알려 주시오. 야마는 진리의 왕이오. 그대는 절벽에서 떨어
져도 다치지 않소. 그러니 두려움과 공포를 버리시오.

이 가르침을 읽어주면, 아직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자들
도 깨달음을 얻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