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영국의 어느 가정에서 손잡이 부분이 금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지팡이 한개를 75년간
가보로 간직해 오고 있었다. 지팡이는 원래 그들의 선조인 한 고명한 성직자의 것이
였다. 그는 매주 일요일이면 지팡이를 들고 머리를 숙인채 명상에 잠긴 모습으로

산보에 나서곤 했다. 오후 늧게서야 그는 강에서 돌아 왔는데 조용한 길가에서 저녁
기도를 위한 영감을 떠 올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드디어 그 성직자의 증손자가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 어머니로 부터 그 지팡이를 선물로 받았다.

지팡이를 찬찬히 살펴보던 증손자는 지팡이의 머리 부분을 돌려서 조그맣고 튼튼한
낚싯대 하나를 끄집어 냈다.


그는 성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지팡이 속에서 조그맣고 튼튼한 낚싯대 하나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가 성직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성직자가 아니였다면
지팡이 속에 낚싯대를 숨겨가지고 다닐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지 않겠는가?

다만 성직자로써의 모습 외에 다른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된다는 강박감이
온통 그를 사로잡고 있었을 뿐 그 낚싯대와 함께 자신의 참 모습을 지팡이 속에 숨겨
두었다는 사실은 그 자신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