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 되면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조그만 마을 부뇰에서는 세계적인 축제인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가 열린다. 이 축제가 열릴 때면 이 작은 마을에 전 세계에서 수 만 명의 관광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모여들어 광란 수준의 난장판을 연출한다.
축제 내용은 별 거 아니다. 토마토 격투기(?) 정도라고 할까. 규칙이 있다면 토마토를 손으로 으깨서 던질 것. 아무리 토마토라 하지만 정통으로 맞으면 코피가 터질 정도로 꽤나 아프기 때문인데, 그 정도의 예의는 모두 지킨다. 신호가 울리면 그야말로 난장판이 연출된다. 트럭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토마토를 들고 앞, 뒤, 좌, 우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던지고 맞는다. 토마토가 붉은 색이어서 마치 전쟁터같지만 모두 배꼽이 빠지고 입이 찢어져라 이 상황을 즐긴다.
남자들은 대부분 윗통을 벗고 반바지 차림이지만 더러 브래지어로 가슴만 가린 열혈 여성들도 눈에 띈다. 어른? 아이? 남자? 여자? 물론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 어차피 허가받고 하는 싸움이니까 눈치 볼 일도 없다. 한국 대학생들도 많이 간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제법 많은 숫자의 한국 젊은이들이 토마토 축제에 참가해 국위를 선양(?)한다.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직접 참가하거나 유튜브로 열광한다. 모두모두 토마토를 던지고 비비고 온몸으로 뒤집어 쓰고 노는 신나는 축제다.
각국에서 몰린 취재진들은 촬영하기에 좋은 명당 자리를 비싼 돈을 지불하고 확보한다. 가정집이고 뭐고 간에 2,3,4,5층의 방 중에 토마토 축제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이 있는 방은 모조리 동이 난다. 물론 취재진을 향해서도 어김없이 토마토는 날아든다. 이 날 하루만에 무려 120,000Kg 이상의 토마토가 소비된다.
이 축제의 유래는 더욱 재미있다. 1944년 토마토 가격이 폭락했다. 그러자 농민들이 시의원들에게 가서 따졌는데 스페인이나 우리나라나 그런 사람들하고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법. 성난 농민들이 '에라, 이거나 먹어라.'하고 토마토를 던졌는데, 시의원들이라고 참을소냐. '누구에게 감히?' 하면서 농민들이 던진 토마토를 다시 집어 던지면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렇게 해서 세계적인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시작되었다. 누가 기획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열 받아서 토마토를 던지고, 그걸 주워 되던고 하다 보니 어떤 기발한 재미를 느꼈고 그것이 세계적인 축제로 창발된 것이다.
매년 8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시각을 정하고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가한다. 순전히 재미있다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없다. 마을 사람들은 이날을 위하여 1년을 기다린다. 관광객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즐기기 위한 행사에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것일 뿐이다.
대충 봐도 복잡계의 출현이고, 성공적 창발이다. 마을 사람들이 워낙 재미있게 노니까 이웃 마을에도 전파되고 참여하고,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축제의 하나로 창발되었다. 물론, 돈도 되고. 이 정도 축제면 1+1=2는 분명히 아니다. 엄청난 경제유발 효과가 적어도 1+1= 5 이상임은 증명된다. 자발적 되먹임 현상이나 요동과 섭동.... 틀림없는 복잡계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 강원도 화천 토마토 축제
우리나라 강원도 화천에서도 매년 여름이면 토마토 축제가 열린다. 주최와 후원이 대단하다. 화천토마토영농조합법인 주최, 화천토마토축제추진위원회 주관, 농림수산식품부와 (주)오뚜기 후원... 이 정도면 스페인의 ‘라 토마티나’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메인 행사 전날인 8월 10일은 축제 선포식 및 화천군 주민이 함께 화합하는 주민거리 풍물놀이와 사내면 유치원생 공연, 주민노래자랑 등이 열리며, 8월 11일과 12일은 화천의 대표 농산물인 토마토를 이용한 다양하고 이색적인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제공된다.(화천 토마토 축제 홈페이지)
그런데 뭐가 빠진 것 같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부분이 어색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재미' 부분은 독창적이지도 차별화되지도 않은 것 같다. 복잡계에서 논하는 많은 조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남이 하니까, 나도'하는 식으로는 세계적인 축제는 고사하고 국내적인 축제로도 미흡하다.
아무리 반듯하게 지은 건축물도 세월이 흐르면 무너진다. 하지만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수천년의 세월에도 건재하다. 그 이유는 피라미드의 각도가 모래를 부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경사면의 각도와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복잡계가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창발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건에 창발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대충 봐도 확 드러난다. 상향(Bottom→Up) 보다는 하향(Top→Down)의 의혹이 보이고, 창발 이후의 효과에 대한 의도되지 않음 보다는 의도됨이 더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건 복잡계로 보기 힘들다. 복잡계와 창발이 없으면 새로운 질서의 출현도 정착도 힘들다.
화천군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것도 아니고 지역민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려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축제만으로도 원하는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뭔가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 다만 어느 날 갑자기 주민들이나 관광객 중 누군가에게서 기발한 착상이 나오고 (아무리 사소한 착상이라도 상관없다.) 이것이 주위의 반응을 불러일으켜 진짜 서로를 즐기는 어떤 자발적인 이벤트나 해프닝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그것이 무엇이 될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화천군수를 비롯한 공무원과 관공서는 앞으로 나타날 작지만 자발적인 창발을 붙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하면 된다. 상향(Bottom→Up)의 새로운 질서가 무궁무진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일, 이것이 지역의 Top들이 가져야 할 '열린' 마음자세다.
- 축제, 축제들
축제의 나라 브라질
세계적인 축제하면 브라질의 삼바 축제를 빼 놓을 수 없다.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아름다운 무희들의 현란한 율동과 터질듯한 음악. 거의 온 몸이 드러나기 때문에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여성들을 위한 가슴 성형 시장도 뜨겁다. 유방확대 수술에 필요한 실리콘 겔도 삼바 축제가 다가오면 품귀현상을 이룬다.
삼바 축제의 경제적 효과는 엄청나다. 브라질 호텔업협회(ABIH)는 리우·상파울루·살바도르 등 3개 도시에서만 카니발 관련 매출이 20억4000만 헤알(약 1조1000억원)을 웃돌고, 기타 경제 유발 효과는 최소한 2조~3조원. 30만명이 넘는 고용을 창출한다. TV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중계되는 카니발 행렬은 지구촌의 25억 인구가 시청한다. 물론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유튜브 등을 이용한 시청까지 합치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간접적으로 삼바 카니발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축제에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대부분의 댄서들은 삼바스쿨에 등록한 일반인 들이다. 또한 이 축제 역시 1930년대 이주 노동자들과 브라질 사람들이 벌인 소규모 거리 축제에서 시작되었다. 일반들이 제 뻬레이라스( Ze Pereiras)라고 하는 형태의 무도회를 조직하고 참여하던 것이 세계적인 축제로 터져버렸다.
독일의 뮌헨 맥주 축제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뮌헨에서는 매년 9월말 ~ 10월 초가 되면 세계적인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ctoberfest)가 열린다. 축제기 시작될 때 쯤이면 수십개의 텐트가 설치되는데 이걸 텐트라고 해야할지 천으로 된 거대한 구조물이라 해야할지 헷갈린다. 한 개의 텐트에 무려 500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엄청나다.
약 2주일의 축제 기간동안 이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하는 약 7백만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관광객들이 약 1천만 리터에 가까운 맥주를 마셔 없애고, 수 십만 개의 소시지와 약 70만 마리의 닭과 100마리에 가까운 소를 먹어 치운다. 축제 수익만 해도 한화로 약 2000억원인데, 이것은 관광객들이 호텔이나 쇼핑 등으로 뿌리는 더 엄청난 금액을 제외한 숫자다.
이 축제는 1810년 바이에른의 황태자 루트비히와 작센의 테레사 공주와의 결혼식 때의 결혼 축하 경마경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사람이 모이는데 맥주가 빠질 수 있나? 맥주 좋아하는 독일인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 1880년 시당국이 맥주 판매를 허용한 것이 촉발제가 되었다. 그 이후 이 거대한 맥주 파티에 모여 든 관광객들의 열기가 높아지면서 축제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일본 삿뽀로 눈꽃 축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5년이 지난 1950년의 겨울. 일본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춥고 눈이 많은 북해도의 중고생들은 삿뽀로의 오도리 공원에 6개의 얼음 조각을 만들었다. 이것이 전후 침체된 지역의 활력이 되어 커지다가 지금은 세계 3대 축제의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사소한 사건에서도 자발적인 창발 현상은 발견된다. 이 축제를 세계 3대 축제의 하나로 키워낸 북해도 주민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높이 15미터에 달하는 대형 얼음조각 예술품과 눈으로 만든 각종 조각들이 약 1.5Km에 걸펴 펼쳐진다.
세계 10대 축제, 세계 이색 축제
위의 세 축제는 세계 3대 축제에 들어가고 앞에서 소개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를 비롯하여 몽골의 나담 축제, 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 태국의 물벼락 축제인 송크란 축제, 멕시코의 세르반티노 축제, 영국의 에딘버러 축제 등을 포함하면 세계 10대 축제로 꼽힌다. 여기에 한국의 보령 머드축제와 금산의 인삼축제 등 다수의 한국 특유의 축제들이 세계 축제 10위권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외, 영국의 '굴러가는 치즈 먼저 잡기 대회', 집에서 베게를 하나씩 들고 나와 싸움을 벌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베게싸움 축제', 러시아 여성들의 '하이힐 신고 달리기', 리투아니아 남편들의 '마누라 업고 달리기', 호주의 '참치 던지기 대회', 미국의 신종 축제인 '외계인 축제', 일본의 '아기 울리기 대회', 눈 덮힌 거리에 권투 글러브를 끼고 나와 아무나 두들겨 패는 러시아의 '복싱 축제', 이름만 들어도 야夜스러운 일본의 '남근축제'.... 이런 이색적인 축제들도 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타고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축제의 나라, 축제의 민족.
한민족은 흥겨운 민족이었다. 1년 열 두 달 내내 축제가 없는 달은 없었다. ‘동이열전’은 서문에서 “동이족들은……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한다.(憙飮酒歌舞)”고 기록하고 있다. 그 부여(夫餘)조에는 구체적으로 “길에 사람이 밤낮없이 다니는데, 노래하기를 좋아해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好歌吟 音聲不絶)”고 전하고 있다.
‘동이열전’‘고구려’조에도 “그 풍속은 모두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데, 밤에는 남녀가 떼 지어 노래 부른다(群聚爲倡樂)”고 적고 있다. 같은 책 예(濊)조에도 “항상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晝夜飮酒歌舞), 이를 무천(舞天)이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같은 책 한(韓)조도 “항상 5월이면 농사일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 술자리를 베풀고(晝夜酒會), 모여서 노래하고 춤춘다(群聚歌舞)……10월에 농사를 끝낸 후에도 이같이 한다”고 적고 있다.
발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송(宋)나라 엽륭례(葉隆禮)가 편찬한 『거란국지(契丹國志)』에는 ‘왕기공행정록(王沂公行程錄)’을 인용해 발해의 가무풍습을 적은 글이 있다. “발해는 매년 설날 때 모여 즐기는데 먼저 노래와 춤을 잘하는 몇 명이 앞서 가면 사녀(士女)들이 뒤따르며 노래를 받아 부르면서 원을 만들어 도는데, 이것이 답추(踏鎚)”라는 내용이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 편찬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고대 동이족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던 흥(興)의 민족이었다. 유교(儒敎)가 국시가 된 이후 근엄하게 변했지만 이는 우리 민족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노래방이 생긴 지 20년. 하루에 무려 190만 명이 노래방을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 핏속에 흐르는 선조들의 신명 나는 음주가무의 DNA가 되살아난 것이다.(이덕일 역사평론가) 이런 문화적 DNA가 있었으니 '소녀시대'나 '싸이'가 세계를 점령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다이내믹한 민족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음 신문 기사를 보자.
1903년 2월 5일(음력 1월 8일), 언제나처럼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서울 만리재에서 ‘전통 민속놀이’인 돌싸움(석전 石戰)이 벌어졌다. ‘선수’들만 9000명을 헤아렸고 구경꾼은 수만 명에 달했다. 살이 터지고 피가 튀는 격렬한 싸움 와중에....(중략).... 서울의 경우 동대문·서대문·남대문 밖 사람들이 한 패가 되고, 애오개·용산·마포 사람들이 다른 한 패가 되어 맞붙었는데, 삼문 밖 패가 이기면 경기에 풍년이 들고, 애오개 패가 이기면 전국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따로 종각 주변과 청계천 일대에서 돌싸움을 벌이곤 했다.(중앙일보 2010.02.03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일단 석전石戰이 벌어지면 이마가 깨어지고 팔이 부러지고 피가 흘러도 그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기를 각오하고 피가 터지게 싸운다. 다치고 죽어도 뉘우치는 법이 없고,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일 뿐이었다. 수 천, 수 만 명이 참여하는 이 거대한 축제는 한 팀이 도망갈 때 까지가 게임 시한이다. 조선시대 치안을 담당했던 한성부 관아나 시골의 경우 현감이 나서서 금지해도 하도 고질적인 풍습이라 없어지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관청에서 아무리 말려도 정월대보름이 되면 했다. 이유라면 '목숨을 걸어도 좋을만큼 재미있으니까.' 정도일 것이다. 중세 유럽의 기사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마상시합馬上試合도 1:1 둘의 게임인데 반하여 석전石戰은 한 고을 사람들과 다른 고을 사람들이 수 천명씩 패를 지어 벌이는 팀플레이였다. 이정도면 우리 민족의 다이내믹 성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수 천, 수 만 명이 참가하여 '죽어도 좋아!'하면서 목숨 걸고 게임을 즐기는 축제는 없다.
사람이 죽을 정도로 격렬했던, 그래서 야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석전石戰도 일단 게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놀이는 놀이로 끝내고 마을 간의 감정대립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웃 마을간에 협조할 일이 있으면 협조하고 외부의 적이 있으면 단결했다. (이런 희한한 현상은 신기하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또한 정월대보름이면 어른들은 달집태우기 축제를 벌였는데, 마을마다 짚단과 나무를 수 미터에 이르도록 높이 쌓아놓고 (대나무를 이용하는 지역에서는 십 미터를 훨씬 넘겼다.) 불을 질렀다. 사실 불 구경보다 더 재미있는 구경은 드물다. 거대한 나뭇단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면 거대한 불꽃 사이로 떠오른 정원대보름 큰 달을 두고 사람들은 소원을 빌었다. (서양의 캠프파이어는 달집태우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애들 장난 수준이다.)
어른들이 이렇게 불놀이를 하는데 아이들이 빠질 수 없다. 아이들은 철사 줄을 매단 깡통바닥에 송송송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잘 마른 나무조각과 숯덩이 같은 불씨를 넣고 휘휘 돌렸다. 때로는 잘 마른 소똥이나 말똥을 불쏘씨게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나마를 잘라 송진이 나오면 불도 잘 붙고 불이 오래 갔다. 뭐든지 불에 탈 수 있는 것이면 충분했다. 회전력으로 산소가 충분히 공급된 깡통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면 가로등도 없었던 깜깜한 밤에 붉은 색 원을 그리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수 십, 수 백 개의 불덩이가 빙글빙글 돌았다.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불놀이는 전국적으로 정월대보름을 밝혔다.
정월대보름이면 일년 중 날씨가 가장 건조한 건기에 해당된다. 이 건조한 날씨에 불놀이를 하니 산불, 들불이 나기 일쑤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불깡통의 불씨가 논 어귀에 쌓아둔 짚더미에 불이 옮아붙기도 했고, 농가의 초가지붕을 홀랑 태우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 정월대보름이 되면 또 했다.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같은 불놀이는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빨간 소방차를 사전에 대기시켜 놓는다는 것 정도였다.
민족의 축일인 설날 축제, 마을 사람들이 모여 거대한 달집을 짓고 소원을 빌던 정월대보름 축제, 사월초파일의 석가탄신일 축제, 여자들도 치마를 펄럭이며 그네를 타고 놀았던, 그래서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날 수 있었던 오월 단오 축제,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 추석 축제 등이 있었고, 놀이 형태로는 거대한 규모의 차전놀이, 황소를 걸고 내기를 벌이는 씨름 축제, 농사의 힘을 덜어주는 마을 단위의 농악 축제, 여성들이 모여 왜적까지 물리친 강강술래, 마을과 마을의 힘 겨루기인 줄다리기 축제, 서민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던 탈춤, 여성들의 다이내믹 그네뛰기, 한풀이 액풀이 무당 굿 축제 등 틈만 나면 대형 축제였다. 우리 민족의 축제 문화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스스로 만들어진 다이내믹한 창발적 축제였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다이내믹함은 3.1운동, 4.19혁명, 5.16혁명. 한강의 기적, 새마을운동,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IMF 때의 금 모으기, 2002 월드컵의 붉은악마 등의 정치, 사회적 창발로도 이어졌다. 이렇게 다이내믹한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축제의 부활
민족의 DNA가 불러내었든, 자치단체의 소득증대의 일환이든 현재 우리나라에도 지방마다 축제가 부활하고 있다. 화천의 산천어축제, 함평 나비축제, 보령 머드축제, 진주 남강유등축제 등이 각 절기마다 열리는 우리나라 지역축제 ‘대표선수’들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표적인 경우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1,200여개의 축제가 있고, 경제유발 효과는 무려 2조원에 달한다. 2조원 하니까 제법 되는 것 같지만 1,200여개의 축제 수에 비하면 뭐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우리의 민족성으로 볼 때, 축제 분야에서만 최소한 20조, 크게 잡으면 200조원 정도의 경제유발 효과는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또한 전통적 개념의 우리나라 축제는 동적動的인데 반하여 보령 머드축제를 제외하고는 1,200여개의 축제가 대부분 정적靜的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다. 상인들이 잔뜩 모여들어 호객에 의존하는 축제는 너무 속이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석전石戰은 좀 무리겠지만 차전놀이 같은 대규모 축제가 사라지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하지 못 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20대의 깜찍한 창발
일본의 북해도(훗카이도)는 일본 땅이 아니었다. 이 땅의 원주민은 아이누 족族으로 일본 민족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이었다. 이 땅은 메이지 시절에 일본에 편입되었다. 원주민의 인종이 다르니 문화도 달랐다. 일본식의 마쯔리 문화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훗카이도 삿뽀로에 '하세가와 가쿠'라는 대학생이 있었다. 1991년 이 학생이 고치시에 가서 요사코이 축제를 보고는 자기가 살고 잇는 삿뽀로에도 이런 축제가 있었으면....하는 마음이 들어 친구들에게 이야기 했다. '우리도 저런 거 한 번 해보자.' 이 말 한 마디가 계기가 되어 서클이 조직되고 1백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그리고 6개월동안 준비하여 1992년 6월. 10개 팀 1000여명이 참가하는 요사코이 소란 축제가 열렸다. 이것이 제 1회 요사코이 소란 축제였다. 대학생들의 작은 창발이 튀어나온 것이다.
대학생들의 축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0년 33,000여명의 자발적인 선수(?)들이 참여했고, 180만명의 관람객을 모았으며, 약 7천여명의 지역민이 참가했고, 홋카이도 내 160개 지역이 끼어들었고 약 250억엔의 지역경제 유발효과를 발생시켰다. 250억엔이면 2013년 1월 22일 현재의 환율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대략 3000억원 정도 된다.
20대 대학생 하세가와는 열린 복잡계를 구성했다. 대학생들만의 축제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되 시민, 기업, 행정조직에게 모두 문호를 개방하고 도움과 지원을 받았다. 100명의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관공서, 기업과의 파트너십으로 설립하고 운영했다. 그리고 대학생들만의 행사에서 홋카이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지역민이 하나되는 축제를 모색했다. 그리고 한 팀당 최대 150명이 참가하여 춤을 추는 경연방식의 축제를 기획했는데, 경연방식이기 때문에 승부욕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을 탈출하여 활짝 열린 거리로 나왔다. 열린 복잡계에서는 창발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
제 1회 축제 당시 20대 대학생이었던 하세가와는 지금 요사코이 소란 축제위원회의 전무로 일하고 있다. 일본의 대졸 실업율도 심각한데 하세가와는 간단한 창발로 취업과 비전을 모두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고용도 유발했다. 뭔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주변을 자극하면 복잡계를 스스로 구성하고 창발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2012의 아쉬운 창발, 솔로대첩
2012년 11월 3일, ‘님이 연애를 시작하셨습니다’(이하 님연시)라는 아이디의 누리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솔로 형,누나,동생분들, 크리스마스 때 대규모 미팅 한번 할까”라는 글을 농담처럼 올렸다. 이 한 줄의 글이 상상을 초월하는 반향을 불렀다. 무려 35,000여 명이 참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소식은 실시간으로 TV, 라디오, 신문,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을 타고 전국으로 생중계되었다.
이 글을 올린 님연시 유태형씨는 광운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24세의 젊은이다. 우연이겠지만 우리나라의 초대형 창발을 몰고 온 붉은악마의 주인공도 광운대 학생이었다. 이렇게 보면 광운대는 복잡계와 창발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일 수도 있다. |
당시 필자는 병원에 누워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50대 중반인 필자의 바램은 오로지 '열려라, 열려라.'였다. 즉 솔로대첩이 '열린 복잡계'가 되면 엄청난 창발을 몰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곧 중요한 한 축인 여성 쪽이 닫히기 시작했다. 특정 장소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다보면 성추행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 영리한 경찰 간부가 나서서 '한국의 여성 솔로 여러분, 안심하고 오십시오. 대한민국 경찰은 여성 여러분을 책임지고 보호하겠습니다.'라고 공언했었더라면 2012년 솔로대첩은 그야말로 대첩大捷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경찰 관료들의 보신주의 탓인지 아니면 타성에 젖은 관료주의 때문인지 경찰은 오히려 그런 우려를 증폭시켜 버렸다. 남, 녀 두 축이 비슷한 균형을 유지해야 폭발할 수 있는 에너지가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 힘을 잃기 시작했다.
게다가 젊은이 특유의 '재미'를 더하려면 좋든 싫든 관공서와 기업의 참여 또한 필수적이었지만, 상업성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복잡계의 또 다른 거대한 한 축이 닫히고 있었다.
결국 솔로대첩은 갖가지 개그성 멘트를 쏟아내면서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트위터 상에서는 '여자는 보이지 않는 고추대첩이다.', '여의도 솔로대첩은 커플들이 자유롭게 명동 거리를 거닐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솔로들을 여의도에 가두어 버린 대첩이었다.', '솔로대첩에는 여자는 없고 경찰, 비둘기, 남자 뿐이었다.' 등의 자조직인 코믹 트윗이 흐르고, 부산 해운대에서는 남자들끼리 씨름대회를 열어 시름을 달랬다.
일본 대학생 하세가와는 열린 복잡계를 구성한 번면, 우리나라 솔로들은 닫힌 복잡계를 스스로 만들어 나갔다. 하세가와는 축제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되 시민, 기업, 행정조직에게 모두 문호를 개방하고 도움과 지원을 받은 반면, 우리나라 솔로들은 외부에서 유입될 에너지를 스스로 발로 걷어 차버렸다. 하세가와는 대학생들만의 행사에서 홋카이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지역민이 하나되는 축제를 모색한 반면, 님연시를 비롯한 우리나라 솔로들은 가능성을 더욱 좁혀버렸다.
이것은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문제다. 이 사회적 신뢰가 상향(Bottom→Up)의 분위기를 타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부를 창발할 수 있다. 상향(Bottom→Up)적 신뢰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신뢰=사회적자본'과는 얼핏 다른듯 보이지만 결국 한 갈래다.
만약 솔로대첩을 솔로축제로 만들 생각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모든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기업의 협찬을 받아 '참가하시는 모든 솔로 여성분들께는 벙어리 장갑 1개를 공짜로 드리고, 특이한 코스튬이나 기발한 의상, 별난 화장을 하고 오시는 여성분들께는 참가하신 남성들의 인기 투표에 의하여 0000에서 제공하는 마티즈 5대, 자전거 100대, 시계 500개를 드립니다. 특히 이 날 맺어지는 커플에게는 선착순으로 커피벅스에서 제공하는 무료 쿠폰 10000장을 드립니다.' 정도만 했으면 어쩌면 여의도는 여성들로 미어터졌을 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어쩌면 다음 솔로대첩 몇 달 전부터 솔로 여성들은 레이디 가가를 초월(?)하는 별난 화장술과 코스튬으로 무장하기 위하여 준비를 할 지도 모른다.
2012년 크리스마스 이브의 솔로대첩이 '열린 복잡계'를 구성했었더라면 세계적인 축제 하나가 탄생하는, 대한민국발發 초대형 '20대의 창발'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없다.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 우리는 수 많은 창발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이내믹한 창발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최근 20년 사이에 나타났던 여러가지 창발 현상을 자세히 관찰하면 우리는 이미 거시적 창발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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