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이야기.

토르, 대지를 칭칭 감은 뱀을 낚아올리다

별관신사 2015. 10. 22. 05:54

토르는 생각할수록 분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거인 놈들을 혼내주겠다고 요툰헤임까지 갔
다가 도리어 놈들에게 속아서 헛심만 쓰다가 돌아왔으니...
토르는 와신상담 끝에 다시 거인국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래도 복수를 하지 않고는 못 견

딜 것 같아서였다. 그는 청년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히미르란 거인의 집을 방문했다. 새벽
에 아스가르드를 떠났는데 도착하고 보니 이미 이슥한 저녁 무렵이었다.
토르는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그 집의 주인인 거인 히미르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낚시 도구를 챵겨 바다로 고기를 낚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토르는
벌떡 이렁나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자네 같은 애송이는 별 도움이 안 되네. 늘 하는 대로 바다 멀리까지 나가소 오랫동안

배를 띄우고 있으면 자넨 아마도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을걸.
토르는 속에서 욱하고 끓어오르는 걸 참고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나도 얼마든지 멀리까지 노를 저어갈 수 있어요. 게다가 아마 당신이 나보

다 먼저 돌아오자고 하게 될걸요.
평소의 성미대로라면 토르는 아마 그 자리에서 도끼를 휘둘러 거인 히미르를 비명횡사시
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때인가? 우트가르드-로키의 요술에 속아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토르가 다른 곳에서 다른 거인을 상대로 자기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순간이 아
닌가?
토르가 또다시 매달리자 히미르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었다.

정 따라나서려거든 미끼는 자네가 알아서 챙겨.
그리고는 바닷가로 걸어가면서 빈정거리는 말투로 덧붙였다.
우리 집 뒤의 들판으로 가보게. 거기 소들이 많이 있으니까 소들이 싸지른 똥을 실컷 주

어다 자네 미끼로 쓰면 될 것 같구면.
토르는 듣기 거북한 히미르의 말투를 흘려 넘기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들판으로 갔다.
그곳에서 하늘이 쩌렁저렁 울릴 만큼 크게 울어 젖히는 황소 한 마리를 점찍어 그 소의 뿔

을 잡았다. 그리고 우악스럽게 뿔을 지틀어대자 처음에는 두 뿔이 쑥 뽑혀져 나왔고, 다음에
는 소대가리가 통째로 ha통에서 떨어져 나왔다. 토르는 이 황소 대가리를 미끼로 삼아 히미
르의 낚싯배에 올랐다.

히미르는 한 것 노를 저어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건만 토르는 좀더 멀리 가자고 주문했다.
그러나 히미르는 그 이상 나가면 대지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와 마주친다면
거부했다. 토르는 인상을 붉히며 제 손에 쥐고 있던 노를 힘차게 저어 평소 히미르가 나갔

던 데보다 훨신 멀리 나갔다. 히미르는 토르의 노젓는 힘에 주눅이 들어 더 이상 뭐라고 말
은 못했지만 기분이 여간 나쁜 게 아니었다. 게다가 불안하기까지 했다.
이봐, 젊은 친구! 자네 요르문간드가 얼마나 무서운 뱀인지 알고나 있는 거야?

토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단단한 낚싯줄, 그리고 세사에서 가장 커다란 소의 대가리를
끼운 날카로고 거대한 바늘 등 낚시 도구를 챙겼다. 거인 히미르가 불안하게 바라보는 가운
데 토르는 낚싯줄을 어깨너머로 휙 던졌다. 무거운 미끼를 단 낚싯바늘은 바다 밑으로 서서

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토르는 우트가르드-로키가 자신을 놀리던 일을 떠올리면서 바다 밑을 향해 목청
껏 외쳤다.

야, 그 밑에 사는 피래미 같은 녀석아! 우리 아버지 오딘께서 네놈을 바다 속에 던질 때
어디 너보고 대지에 들러붙어 있으라고 했느냐? 모래 속에라도 파고 들어가서 조용히 지낼
일이지...네 꼴을 좀 봐! 제 꼬리를 제 입으로 물고 앉아 있는 몰골을 오늘 밤엔 네 녀석을

회쳐서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그 순간, 무언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자 토르는 재빨리 낚싯대를 낚아챘다. 해수면 위로
쑥 올라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거인 히미르는 그놈을 보고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낚싯바늘

에 입안을 꿰인 채 소대가리를 입안 가득히 물고 있는 것은 수여이 성성한 요르문간드의 머
리통이었다. 로키의 아들, 늑대 펜리르와 지옥의 마녀 헬의 형제인 요르문간드였던 것이다.
거대한 뱀이 포효하자 거인 나라의 신들이 메아리쳤다. 대지는 덜덜 떨었다. 뱀이 몸을 한

번 뒤챌 때마다 바다에는 해일이 일고 낚싯대를 잡은 토르의 손이 뱃전에 이리저리 부딪쳤
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토르는 젖먹던 힘까지 내려갔다. 그리하여 바다 밑바닥을 딛고 선
토르와 바다 표면까지 딸려올라온 뱀 사이의 사투는 차으로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토르는 뱀을 배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거인 히미르는 하얗게 질렸다. 토르
가 도끼를 높이 치켜들어 뱀의 모가지를 내리치는 순간, 히미르가 달려들었다. 그가 고기 내
장을 딸 때 쓰는 칼로 토르의 낚싯줄을 베어버리는 바람에 뱀은 극적으로 토르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요 미구라지 같은 뱀 녀석이 어딜 달아나려고 해!
토르는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바다 밑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뱀을 향해 바른 속도로

도끼 묠니르를 던졌다.
어떤 사람은 그 도끼에 맞아 마침내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의 몽은 두 동강이 났다고 전한
다. 첨단 현대 해양과학으로도 대양 속에서 지구를 감쌀 만한 크기의 뱀을 간측한 일은 없

으니까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의 말로는 요르문간드는 여전히 북유
럽의 바다 밑에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토르가 히미르에게 무섭게 화를 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두 주먹을 잔

득 움켜쥐고 훼방꾼에게 핵주먹을 날렸다. 히미르는 애송이 라고 우습게 보았던 토르의 강
타를 맞고 시커먼 바다 속에 빠져 버렸다. 물론 아무리 사나운 뱀이라고 해도 자기를 살려
준 생명의 은인을 덥석 먹어치울 수는 없는 법이다. 히미르는 몇날 며칠을 고생하며 헤엄친

끝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뱀 요르문간드가 살아남아 바다 속에서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면 토르의 복수혈전은 절
반의 성공으로 끝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