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을 떠났던 토르는 얼어붙은 황야를 하루종일 가로질러 어느 해협 앞에 섰다. 이곳을
건너야 아스가르드로 돌아갈 수 있건만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던 토르의
눈에 멀리 건너편 바닷가 모래밭에 누워 있는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의 옆에서는 배 한 척
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어이! 자네 뱃사공인가?
토르가 부르는 소리에 해협에는 풍랑이 일었다. 사내는 단잠에 빠져 있었던지 벌떡 일어
나 반쯤 감긴 눈으로 토르를 바라보더니 기분 나쁘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데 이 조용한 바닷가에서 소리를 질러대고 난리야?
토르는 어이가 없었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서 웃는 낯으로 사내를 달랬다.
이보게, 날 좀 건네주게. 내 보상은 얼마든지 함세. 내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이 배낭
에는 먹을거리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네.
그러나 사내는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는 푹 눌러썼던 모자의 챙을 약간 들어올리며 토
르를 놀리기 시작했다.
자네 꽤 기분 좋은 모양인데...이봐, 자넨 집으로 돌아가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곡소
리만 요란할걸. 왜냐하면 말이지...
사내가 씩 웃으며 말을 끌었다.
자네 엄마가 죽었걸랑.
뭐라고!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아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토르는 사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아는지 따져볼 생각도 하지 않고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
런 순진한 토르를 향해 사내의 조롱이 날아들었다.
한심한 녀석같으니라고. 맨발에다 거지 행색하고는...바지도 제대로 못 입고 말야. 네 녀
석이 돌아갈 집이라도 있는지 의시스럽구만.
토르는 신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센 자신을 이토록 업신여기는 사내가 너무도 얄미웠다. 그
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것뿐이었다.
사내는 꾸물거리면서 토르의 약을 올렸다.
살인자 힐돌프가 이 배를 내게 맡기면서 말했네. 좀도둑이나 말 도둑 따위는 절대로 태
우지 말라고. 그러니 오직 태울 만한 가치가 있는 자만 태울 수밖에. 이 바다를 건너고 싶으
면 자네 신분을 대게.
오너ㅑ, 좋다. 내 이름은 토르다. 최고신 오딘의 아들이며 마그니의 아버지다. 지금 네 녀
석은 신들 가운데 가장 힘이 센 벼락의 신 토르 님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지. 이젠 네 이름
을 밝혀라.
나는 하르바르드. 내 이름을 숨기는 일은 별로 없어.
별 대단한 이름도, 아닌 것 같은데 숨기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나? 혹시 죄라도 짓고 쫓
겨 다니는 녀석 아냐?
이거 왜 이래?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오히려 네놈이 도망 다니는가 보군. 안 그래도 행
색이 수상쩍다 했더니. 그러니 네 녀석을 어떻게 내 배에 태울 수 있겠어?
토르는 두 주먹을 꼭 쥐고 한번 부르르 떨었다. 하르바르다는 제 손으로 엉덩이를 톡톡
치면서 다시 한번 토르를 놀렸다.
난 여기 꼼짝않고 앉아 있겠어. 가만 보니 네 녀석은 거인 흐룽그니르하고 싸운 이래 나
만한 임자를 만난 적이 없는 것 같군그래.
토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촌뜨기 뱃사공이 녀석이 그래도 이 토르 님의 무용담은 얻어들었나 보군. 흐룽그니르를
아나? 그놈은 거인 가운데 최고 장사였지. 머리통은 단단한 돌이어서 웬만큼 얻어맞아서는
끄떡도 하지 않는 괴물이었다고. 그런 물건을 내가 한방에 보내버려다는 거 아냐. 어떤가,
자네도 뭐 내세울 만한 무용담이 있나?
사공 하르바르드는 씩 웃으며 맞받았다.
이 몸께선 알그론 섬에서 5년을 보냈지. 거기서 일곱 명의 아가씨와 밤마다 즐겼다 이
말Tam이야. 내가 그 재주 하나는 죽여주거든. 자, 어디 또 한번 힘 자랑 해보시지?
토르의 눈이 작아졌다. 쥐새끼 같은게 여자 꼬시는 재주는 있네 하고 중얼거리고는 다시
벽력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이 토르 어르신은 고원지대를 어슬렁거리는 추잡한 거인 계집을 없애버린 적도 있느니
라. 그년을 내버려뒀으면 대지 위에 남아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을 거야.
인간들을 꽤나 위해주시는군.
하르바르드가 이죽거렸다.
이봐, 나는 어쭙잖은 인도주의자들을 싫어하거든. 오히려 인간들 사이에 싸움을 불러이으
키는 게 내 취미야. 싸움에서 죽은 고귀한 전사 계급은 오딘에게 가서 보살핌을 받니. 글너
데 토르네 녀석은 비천한 노예들을 위해서나 힘을 쓰는 얼간이라고.
천둥시노가 뱃사공ㅇ느 그 후로도 오랳동나 설전을 계속했다. 말싸움이 이어지면 이어질
수록 성급한 토르는 더욱더 화를 참을 수 없게 되어 마침내 도끼를 치켜들고 울부짖으리라.
사공 하르바르드의 뱀 같은 혀는 물러설 줄을 몰랐다.
얘, 네 계집 시프한테 애인이 생겼단다. 힘을 쓰려거든 바람난 연놈한테나 쓰거라.
토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공 하르바르드의 애꾸눈이 석양에 반사되어 이글이글 타올
랐다. 바다 저편으로 해가 떨어지는 절보면서 토르는 절망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사공에게
다시 한번 사정을 해야 했다. 그러나 사공이 말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이보게, 날 태워주기 싫으면 돌아서 아스가르드로 가는 길이나 알려주게.
그거야 간단하지. 물론 간단하다는 얘기고 실제로 걸어가려면 다리 품 깨나 팔아야 될걸.
왼쫏으로 죽 가다보면 미드가르드가 나올 걸세. 거기서 자네 어미 표르긴을 찾게. 그 여자가
무지개 다리로 가는 길을 알려줄 걸세.
토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발길을 옮겼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내 오늘의 수모를 반드시 갚아주겠네.
석양빛을 받으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천둥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공은 생각에 잠신 듯
외눈을 깜박거렸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챙 넓은 모자를 벗었다. 착잡함이 가득한 표정의 구
릿빛 얼굴은 바로 오딘의 얼굴이었다. 얼마 전에 아들 토르에게 당했던 수모를 앙갚음하기
위해서였던가? 가면의 신 오딘은 사공의 모습을 하고 아들 앞에 나타나 독설을 퍼부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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