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8월 23일 일기에는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네 자신부터 두려워한다. 이것은 사랑의 희망이 아니고, 사랑 그
자체가 아닌 경우는 어떻게 해야 되나? 나는 항상 그 여자의 결점만을
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 당시 톨스토이는 무척 외로움과 쓸쓸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같은
무렵의 일기에서
「내겐 참다운 벗이 없다. 나는 외로운 인간이다. 내가 허무 맹랑한
욕망에 사로잡혔을 때만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성 있는 행동을 할
때엔 친구가 없었다.」
그는 친구를 구하고 있었다. 진실한 행동을 같이할 사람을 이를테면
훌륭한 아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8월 26일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포크로프스코에란 고요한 마을에 있는 벨스의 집까지 걸어서 갔다.
정신이 맑아져서 기분이 좋았다. 소냐는 내가 창작한 소설을 읽어 거든
달라고 부탁하였다. 얼마나 단순하고도 진실한 마음인가! 그러나
몹시도 눈에 거슬리는 얄미운 모습과 판단이 변하기 쉬운 일 이란 구절이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나는 안심하였다. 그것들은 내게 관한
것이 아니었다.」
8월 28일의 일기는 자기 자신의 갈등이 적혀 있다.
「버릇이 되어버린 언짢은 기분으로 잠을 깨었다. 일터의 제자들과 만날
것을 생각하였다. 달콤한 꿈을 안고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지는 밤,
원망스러운 이 얼굴, 결혼할 생각은 단념하여라. 그대의 사명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많은 것이 효과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끊임없이 머리 속에 떠도는 사랑의 상대자와 싸웠다.
그러나 그는 차츰차츰 그것에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9월 12일의 일기는 그와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나는 사랑하였다. 인간이 이처럼 불같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쩐지 미치광이가 된
듯하다. 이대로 나가다간 자살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 때엔
줄곧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이 훌륭하다.」
그 다음날의 일기에서 그는 그의 결심을 확실히 나타냈다.
「아침에 잠만 깨면 나는 갈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청혼을 할
것이다. 만일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엔 나는 자살을 할 것이다.」
마침내 톨스토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로웬팬트게 톨스토이의 부인은 당시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톨스토이는 그 당시 하루도 빠짐없이 저의 집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그가 우리들의 언니에게 마음이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역시 그가 나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는 청혼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1862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머니를 따라 그해 8월 야스나야 폴리야나를 거쳐 할머니가
계신 곳까지 간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톨스토이의 누이동생을 찾아가 볼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곳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습니다.
톨스토이는 우리들에게 애정을 나타내곤 하였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교제는 매우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으므로 톨스토이는 언제나 서슴지 않고 우리들을 대해
주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명의로 된 농토가 있는 이비쓰이라고
불리는 지방은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50리쯤 떨어진 곳입니다. 며칠 후
레오 톨스톨이와 우리들은 그곳으로 갔었습니다. .....」
그때부터 톨스토이는 소냐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서로 마음을 주고받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소냐 안드레예브나의 생일인 9월 17일에 편지로 청혼을
하였다. 그는 결혼 승낙을 쉽게 얻어냈다. 그러나 소냐의 아버지는
소냐의 언니를 그대로 두고 동생을 먼저 출가시킨다는 것에 몹시
불만스러워 했으나 톨스토이의 열성과 소냐의 굳은 결심에 도저히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톨스토이는 마침내 정식으로 결혼의 승낙을 얻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너무 기뻤다. 그러나 과거에 자기가 저지른 일들을 아내가 될 소냐 에게
숨기면서까지 결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기의 일기를 모두 소냐 에게 보여주었다.
소냐는 1844년 8월 22일에 출생하여 그때는 18세였다. 소냐로서는
톨스토이의 일기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톨스토이가 걸어온 발자취가
너무나 험난하였음에 충격을 받고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웠으나 새로운
용기를 내어 산란한 마음을 가다듬고 톨스토이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였다.
결혼식은 1862년 9월 23일로 결정되었다.
그들은 크레믈린 궁전내의 천주교회에 가설된 예식장에서 엄숙한
결혼식을 올린 다음 여섯 마리의 말이 이끄는 여행 마차를 타고 야스나야
폴리야나로 갔다.
두 사람은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결혼생활은 톨스토이의 마음을 끝없이 즐겁게 하였다. 그들은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야스아야 풀리야나로 돌아갔다.
톨스토이의 가정은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행복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가정도 언제까지나 평화스럽지는 않았다.
1863년 1월 15일의 일기에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사소한 일로서 말다툼한 것은 나에게
자그마하나마 괴로운 시간을 남겼다. 이것은 어쨌든 사랑의 흠이다.
정신을 흐릿하게 하는 일, 화내는 것, 자기 자랑, 교만 같은 것들의
순간적인 감정은 결국 사라지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작은 일일자라도 이
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랑에 있어서도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다.」
2월 8일의 일기엔 다음과 같이 쓴 것이 있다.
「.....나는 마음이 매우 기쁘다. 나는 몹시 그녀를 사랑한다!」
이때 그는 주로 농사에 힘을 기울였다. 소냐도 톨스토이와 같이 일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들에게 관리인이란 것이 없었다. 농사일과 건축
방면엔 조수가 있었지만 금전 출납은 소냐가 처리를 하였다.
톨스토이는 양봉과 젖소, 과수원 등을 가지고 순조롭게 가정을 이끌어
나갔다. 그의 가정생활은 그가 꿈꾸고 있었던 것을 충분히 실현시키고
있었다.
「나는 네 자신부터 두려워한다. 이것은 사랑의 희망이 아니고, 사랑 그
자체가 아닌 경우는 어떻게 해야 되나? 나는 항상 그 여자의 결점만을
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 당시 톨스토이는 무척 외로움과 쓸쓸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같은
무렵의 일기에서
「내겐 참다운 벗이 없다. 나는 외로운 인간이다. 내가 허무 맹랑한
욕망에 사로잡혔을 때만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성 있는 행동을 할
때엔 친구가 없었다.」
그는 친구를 구하고 있었다. 진실한 행동을 같이할 사람을 이를테면
훌륭한 아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8월 26일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포크로프스코에란 고요한 마을에 있는 벨스의 집까지 걸어서 갔다.
정신이 맑아져서 기분이 좋았다. 소냐는 내가 창작한 소설을 읽어 거든
달라고 부탁하였다. 얼마나 단순하고도 진실한 마음인가! 그러나
몹시도 눈에 거슬리는 얄미운 모습과 판단이 변하기 쉬운 일 이란 구절이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그렇지만 나는 안심하였다. 그것들은 내게 관한
것이 아니었다.」
8월 28일의 일기는 자기 자신의 갈등이 적혀 있다.
「버릇이 되어버린 언짢은 기분으로 잠을 깨었다. 일터의 제자들과 만날
것을 생각하였다. 달콤한 꿈을 안고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지는 밤,
원망스러운 이 얼굴, 결혼할 생각은 단념하여라. 그대의 사명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많은 것이 효과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끊임없이 머리 속에 떠도는 사랑의 상대자와 싸웠다.
그러나 그는 차츰차츰 그것에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9월 12일의 일기는 그와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나는 사랑하였다. 인간이 이처럼 불같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쩐지 미치광이가 된
듯하다. 이대로 나가다간 자살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 때엔
줄곧 그녀의 곁에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이 훌륭하다.」
그 다음날의 일기에서 그는 그의 결심을 확실히 나타냈다.
「아침에 잠만 깨면 나는 갈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청혼을 할
것이다. 만일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엔 나는 자살을 할 것이다.」
마침내 톨스토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로웬팬트게 톨스토이의 부인은 당시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톨스토이는 그 당시 하루도 빠짐없이 저의 집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그가 우리들의 언니에게 마음이 있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역시 그가 나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는 청혼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1862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머니를 따라 그해 8월 야스나야 폴리야나를 거쳐 할머니가
계신 곳까지 간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톨스토이의 누이동생을 찾아가 볼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곳에서 여러 날을 머물렀습니다.
톨스토이는 우리들에게 애정을 나타내곤 하였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교제는 매우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으므로 톨스토이는 언제나 서슴지 않고 우리들을 대해
주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명의로 된 농토가 있는 이비쓰이라고
불리는 지방은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50리쯤 떨어진 곳입니다. 며칠 후
레오 톨스톨이와 우리들은 그곳으로 갔었습니다. .....」
그때부터 톨스토이는 소냐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서로 마음을 주고받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소냐 안드레예브나의 생일인 9월 17일에 편지로 청혼을
하였다. 그는 결혼 승낙을 쉽게 얻어냈다. 그러나 소냐의 아버지는
소냐의 언니를 그대로 두고 동생을 먼저 출가시킨다는 것에 몹시
불만스러워 했으나 톨스토이의 열성과 소냐의 굳은 결심에 도저히 반대할
도리가 없었다.
톨스토이는 마침내 정식으로 결혼의 승낙을 얻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너무 기뻤다. 그러나 과거에 자기가 저지른 일들을 아내가 될 소냐 에게
숨기면서까지 결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기의 일기를 모두 소냐 에게 보여주었다.
소냐는 1844년 8월 22일에 출생하여 그때는 18세였다. 소냐로서는
톨스토이의 일기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톨스토이가 걸어온 발자취가
너무나 험난하였음에 충격을 받고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웠으나 새로운
용기를 내어 산란한 마음을 가다듬고 톨스토이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였다.
결혼식은 1862년 9월 23일로 결정되었다.
그들은 크레믈린 궁전내의 천주교회에 가설된 예식장에서 엄숙한
결혼식을 올린 다음 여섯 마리의 말이 이끄는 여행 마차를 타고 야스나야
폴리야나로 갔다.
두 사람은 야스나야 폴리야나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결혼생활은 톨스토이의 마음을 끝없이 즐겁게 하였다. 그들은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야스아야 풀리야나로 돌아갔다.
톨스토이의 가정은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행복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가정도 언제까지나 평화스럽지는 않았다.
1863년 1월 15일의 일기에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사소한 일로서 말다툼한 것은 나에게
자그마하나마 괴로운 시간을 남겼다. 이것은 어쨌든 사랑의 흠이다.
정신을 흐릿하게 하는 일, 화내는 것, 자기 자랑, 교만 같은 것들의
순간적인 감정은 결국 사라지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작은 일일자라도 이
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랑에 있어서도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이다.」
2월 8일의 일기엔 다음과 같이 쓴 것이 있다.
「.....나는 마음이 매우 기쁘다. 나는 몹시 그녀를 사랑한다!」
이때 그는 주로 농사에 힘을 기울였다. 소냐도 톨스토이와 같이 일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들에게 관리인이란 것이 없었다. 농사일과 건축
방면엔 조수가 있었지만 금전 출납은 소냐가 처리를 하였다.
톨스토이는 양봉과 젖소, 과수원 등을 가지고 순조롭게 가정을 이끌어
나갔다. 그의 가정생활은 그가 꿈꾸고 있었던 것을 충분히 실현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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