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 이야기.

파러스의 판결

별관신사 2012. 11. 27. 19:44

파리스가 이데 산에 버려진 지 1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간 지상과 올
림포스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신들은 권태로워했다. 그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제우스는 두번째 서열에 있던 한 여신의 결흔식을

기회로 큰 연회를 베풀기로 했다. 결혼 당사자는 테티스라는 여신과 미르
미돈족의 지배자인 인간 펠레우스였다. 제우스는 에리스라는 여신을 제외
한 모든 신들을 결혼식에 초대했다. 에리스는 고약한 말투와 심술궂은 성

품으로 유명해서 모임에 참석하기만 하면 사람들간에 분쟁과 싸움을 일으
키곤 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제우스의 그러한 계획은 에리스의 귀에
들어갔고 모욕을 느낀 에리스는 복수를 결심했다. 연회가 시작되어 초대된

사람들이 모두 식탁에 앉았을 때 갑자기 나타난 에리스가 식탁으로 다가와
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황금 사과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사과
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신들은 이제 곧 미인 경연 대회가 벌어질 것이고 우승자에게 사과
가 돌아갈 것임을 알아챘다. 여신들은 법석스러운 소란을 떨며 제가끔 자
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했고, 아우성을 치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녀들

을 진정시키기 위해 제우스는 신들만을 참여시켜 비밀 투표를 함으로써 판
결을 내릴 것을 제안했다. 신들 각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여신의
이름을 적어 투표함에 집어넣은 다음,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여신을 우승자

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
가 아주 곤란하게 나왔다. 헤라와 아테나 그리고 아프로디테가 똑같이 12
표씩 얻어 공동 1위가 되었던 것이다. 다른 소수의 표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여신들에게 던져졌고. 몇몇 익살맞은 신들은 엉End한 표를 던짐으로
써 투표를 조롱했다. 예를 들면, 어떤 신은 아테나의 올빼미를, 또 다른 신
은 여성처럼 나약해진 아레스에게, 게다가 못생기기로 유명한 헤파이스토

스에게 표를 던지기도 했다. 한데, 이같은 상황에서 3명의 동점 자인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때 아테나가 한 가지 제
안을 했다.

"우리 셋이 모두 땅으로 내려가서 무작위로 선택한 지역으로 갑시다. 그
리고는 거기서 맨 처음 만나게 될 남자를 심판관으로 정해, 우리 들 중 누
가 가장 아름다운가를 결정하라고 합시다."

헤라와 아프로디테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식탁 위에 그리스의 지도를 펼
쳐놓았다. 눈을 감은 제우스가 아무렇게나 핀으로 지적한 곳은 이데산 이
었다. 세 여신이 저마다 아름답게 치장을 하는 사이, 제우스의 심부름꾼인

헤르메스는 그녀들보다 먼저 땅으로 내려가 경연 대회를 준비했다 헤르메
스가 맨 처음 만난 남자는 다름 아닌 파리스였다. 그는 피리를 불며 평화
롭게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세 경쟁자의 신분이 파리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일의 전말을 설명했다.
"3명의 여자가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녀들을 잘 살펴본 후에 네 가
보기에 가장 아름답다고 판단되는 여자에게 이 황금 사과를 주어라. 일의

대가로 네게 황금 10냥을 주마."
횡재를 만났다고 생각한 파리스는 헤르메스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했다. 맨
처음 그 앞에 나타난 여신은 아테나였다. 그녀는 횐옷을 정갈하게 입고 화

려한 투구를 쓰고 있었다
"황금 사과를 내게 주면 이 마술 투구를 선물로 주마. 이것은 평생 동안
네게 권력과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 같은 제안에 감동한데다, 아테나의 아름다운 용모와 지적인 눈매에 사
로잡힌 파리스는 벌써 사과를 그녀에게 내주려고 했다. 그때 네 마리의 공
작이 이끄는 마차를 탄 헤라가 나타났다. 그녀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목

이며 손목에 보석을 휘감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은실로 잔 돈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헤라는 마차에서 내려 파리스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왔는데, 치
켜 든 머리와 자신감 있는 태도는 마치 의상 발표회에 나온 모델 같았다.

"황금 사과를 내게 주면 이 마술 지갑을 선물로 주마. 이 주머니는 쓰는
대로 황금 동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평생을 부자로 살 수 있지." 영예와
부, 아테나와 헤라 사이에서 파리스는 머뭇거렸다. 사과를 두 쪽으로 나누

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평소와 다름없는 습관대로 아프로디테가 뒤늦게
도착했다. 그녀가 늦게서야 나타난 것은 몸치장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태어나던 날과 마찬가지로 알몸 그대로였고 몸에 걸친 것이라곤 마

술 혁대가 전부였다. 하지만 차가운 얼굴과 거만한 표정의 다른 두 여신과
는 대조적으로 아프로디테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황금 사과를 내게 주면. 이 마술 혁대를 선물로 주마. 이것을 차고 있으

면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의 힘을 발하게 되지. 그래서 평생 사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라면 파리스가 굳이 마술 혁대를 찰 필요는

없었다. 지금 당장은 그의 젊음과 미모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
가 늙고 추하게 되더라도 여자들에게는 아프로디테의 마술 혁대를 찬 파리
스보다는 차라리 아테나와 헤라가 약속한 영광과 부를 가진 파리스가 더

매력적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의 마음을 정하게 한 것
은 아프로디테가 제시한 선물이 아니라, 순전히 그 여신의 아름다움과 향
기와 미소였다. 그는 주저 없이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네주었다.

승리한 아프로디테는 그에게 혁대를 주었고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소식을
알리러 달려갔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헤라와 아테나는 벌써 복수를 생각
하고 있었다. 우선 헤르메스에게 자신들을 모욕한 그 양치기에 대해 빨리

조사 해달라고 부탁했다. 헤르메스는 즉시 파리스의 실제 출생을 밝혀내어
두 여신에게 알렸다.
"그 양치기는 진짜 양치기가 아닙니다. 그는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

들인데 19년 전 부모에 의해 이데 산에 버려졌어요. 그 이유는, 그가 스무
살까지 살아 있으면 자기 민중과 가족과 스스로에게조차 끔찍한 불행을 끌
어들일 거라는 신탁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아테나는 즉각 악의적인 계획을 마련하여 헤라에게 알렸다.
"파리스에게 출생의 비밀을 폭로해서 트로이의 부모에게 돌아가게 만듭
시다. 그러면 신탁의 예언이 실현될 것이고 우리는 복수하게 되는 셈이지요."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긴 하지만, 파리스가 부모에게 가서 자신을 밝힌
다고 해도, 아직 19년밖에 지나지 않은 걸 부모들이 안다면 스무 살이 되
기 전에 이번에는 진짜로 그를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말이 맞네요.

그렇다면, 파리스의 부모가 19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났다고 믿게끔 만
들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도록 일을 꾸며야겠네요. 부모를
속이는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당시 사람들은 해가 지나

는 것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았다. 지금 이 몇 년, 몇 월인지를 알려주
는 달력이란 게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달 모양의 변화나 계절의 순환 혹은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 등과 같

은 자연 현상들을 통해 대강 측정하곤 했다. 특히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올리브나무는 심은 지 꼭 20년이 지나야 첫 열매를 맺는다는 걸 알고 있었
다. 한데 독자 여러분은, 헤카베가 아들을 추억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날에

맞추어 올지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또한 아테네인
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올리브나무를 창조해낸 사람이 바로 아테나였다는
사실도 기억할 것이다. 말하자면 올리브나무는 아테나에게는 아무런 비밀

이 없었고 그녀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 처지였다. 파리스의 부모에게 20년
이란 세월이 이미 지났다고 믿게 하려면 아테나가 올리브나무에게 명령하
여 1년 앞서 열매를 맺으라고 하면 되는 일이었고, 아테나는 그렇게 했다.

올리브나무의 가지에 매달린 열매들을 본 헤카베는 우울한 어조로 프리아
모스에게 말했다.
"어머 이것 봐요! 파리스가 죽은 지 20년이 되었네요. 신탁의 예언은 실

현되지 않았어요. 이제 우리도 편한 잠을 잘 수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 아
이는 영영 다시 볼 수 없겠지요."
바로 그 시간 이데 산에서는 아테나와 헤라가 파리스를 따로 불러 내어 말했다.

"네게 알려줄 커다란 소식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네가 생각하듯이 단순
한 인간이 아니라 여신들이다. 여기 이 사람은 헤라 여신이고 난 아테나 여신이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파리스가 대답했다.

"둘째. 넌 한낱 양치기가 아니라, 트로이의 절대자인 프리아모스와 헤카
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왕실의 피를 받은 왕자이니라."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라고 파리스가 대답했다.

"셋째, 그러니 지금 당장 양떼들과 피리와 요정을 놔두고 얼른 트로이로
가서 부모님께 너를 알려라. 여기서 초라하고 단조로운 양치기 생활을 하
느니 가서 네 신분에 맞는 부귀와 영화를 누려라."

만일 자기 앞에 준비된 불행을 알았더라면 파리스는 지금껏 지내온 평화로
운 삶에 만족하고는 여신들의 그러한 충고를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는 젊었기에 앞을 내다볼 줄 몰랐고 경망했다. 그래서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길을 떠나기로 했다. 자기의 양부인 양치기와 함께 부모의 왕궁을 찾
아간 파리스는 왕과 왕비를 만나 자신이 누구이며, 양치기에 의해 어떻게
구원되어 키워졌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양부인 양치기가 그러한 얘기를

확인해주었다. 게다가 부모를 닮은 파리스의 얼굴은 그 얘기가 진실임을
입증해 주었다. 아테나의 간계로 파리스가 스무 살이라는 위기의 나이를
넘어 섰다고 믿어버린 프리아모스와 헤카베는 몹시 기뻐하며 아들을 맞이

했고 왕궁의 가장 좋은 방에 그의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파리스는 이데 산
에서 함께 지내면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오이노네에게만은 진실을 말
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급한 일로 며칠간 없을 것이다."라고만 말하고

그녀를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는 그녀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가련한
요정은 상처의 치료사라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에게 적용시켜봤지만 헛일
이었다. 어떠한 묘약과 연고도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무력했고, 마음

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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