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테세우스가 죽은 뒤에 제우스가 키클롭스들을 살해한 죄로
아폴론을 올림포스에서 추방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제우스는 아폴론에
게 넥타르주와 암브로시아의 배급마저도 끊어버렸는데, 그것은 '이제 네
밥벌이는 네 힘으로 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을 찾아야 했던 아
폴론은 트로이 신문의 구인 광고란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게 되었다.
"성벽 구축을 위한 경험 있는 건축 기사 구함. 지원자는 소개서와 함께 트
로이의 왕 라오메돈에게 문의할 것." 예술의 신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
던 그는 건축 분야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기에 지원에 응하기로 했다. 당
시의 트로이는 광활하고 부유한 도시 국가로 오늘날의 터키의 일부가 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도시는 항구가 아니었
는데도 수십 킬로에 달하는 영토가 에게 해로 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에게
해의 다른 쪽에는 트로이에서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 그리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은 똑똑하고 친절하긴 했지만 양심이 없었다.
자기 나라가 그리스 왕들의 조직적인 침략으로 빈번히 공격과 노략의 희생
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 라오메돈은 튼튼한 성벽을 둘러쌓아 침략자들로
부터 나라를 지키기로 했다. 건축 기사 모집에 지원하기 위해 아폴론은 우
선 건축가로 변장했다.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르고, 턱수염은 귓불까지 이르
게 둥글게 다듬고, 헐렁한 듯 능란한 옷차림과 이러한 직종에서 일하는 사
람들이 흔히 쓰는 태연자약한 말투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자신을 이탈리아
에서 온 건축 기사 포놀라라고 소개했는데, 이 이름은 아폴론의 철자를
뒤바꿔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라오메돈에게 자신이 이미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성벽을 건축한 경험이 있다며 자기가 했던 작업들에 대한 도면과
모형을 왕에게 제시해가며 끝없는 감언이설로 왕을 설득했고, 결국 라오메
돈은 그에게 일을 맡기기로 했다.
"보수는 얼마나 되나요?"
라고 아폴론이 묻자 왕은 대답했다.
"황금 1탤런트를 주겠다. 단, 늦어도 3년 안에 일이 끝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춧돌은 착공 기념식 말미에 내가 하게 될 짧은 축하 연설이 끝나
면 얹어놓을 수 있도록 해라. 만일 불행하게도, 매일매일 해가 지기 전까지
계산해서 정확히 3년 후에 마지막 돌이 놓여지지 않는 다면, 넌 한푼도 받
을 수 없다."
아폴론 아니, 포놀라는 이러한 약정 조항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는
일에 착수했다. 몇 달이 지난 뒤, 수백 명의 석공들과 토목 인부들을 고용
했는데도 일이 빨리 진척되지않자 아폴론은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포세이돈 역시 헤라클레스의 죽음을 교사한 죄목으로 올림포스에 서
추방되었던 터였다. 포세이돈은 에눕텐이라는 가명으로 라오메돈 왕에게
소개되었다. 그의 개입으로 작업은 속도를 내게 되었고 그간의 부진을 따
라잡을 수 있었다. 라오메돈이 정한 최종 기한은 6월 3일이었고, 6월 2일
정오가 되자 모든 작업이 끝났다. 트로이를 둘러싼 15 미터 높이와 2미터
두께의 석재 성벽이 완성된 것이다. 성벽 중간과 꼭대기에는 수많은 총안
들을 만들어놓아, 트로이 사람들이 성 안쪽에서 안전하게 침략자들을 향해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지거나 펄펄 끓는 기름을 들이부을 수 있게 했다. 참
나무로 만든 12개의 커다란 문은 도시의 출입을 자유롭게 했다. 게다가 성
벽 안쪽에 거대한 창고들을 만들어 필요한 경우 트로이 시민들이 성안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살더라도 20년은 버틸 충분한 식량을 쟁여둘 수 있도록
했다. 일에 만족한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라오메돈을 찾아가 기념식에 맞춘
마지막 돌이 예정대로 다음날인 6월 3일에 놓여지게 될 거라고 통고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보수를 지급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라오메돈은 음흥한 계
략을 꾸몄다.
"기념식은 내일 아침 10시에 시작될 것이다. 우선 너회들이 작업과정을
설명하도록 해라. 그리고는 신들에 대한 봉헌식을 거행하여 트로이의 영구
한 보호를 간구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식사를 할 것이고, 점심식사 후 내
연설이 있을 것이고 연설이 끝나면 마지막 돌이 엄숙하게 놓여질 것이다."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이러한 일정표를 받아들였다. 6월
3일 아침나절은 예정된 대로 진행되었다. 우선 건축가들의 설명이 한 시간
동안 이어졌고, 종교 예식은 한 시간 반이 걸렸다. 12시 반이 되자 손님으
로 초대된 2백 명의 왕이 식탁에 앉았다. 향연의 식단은 라오메돈이 직접
짠 것으로, 63가지의 각기 다른 요리들로 되어 있었다. 그러한 식단으로는
식사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게 마련이었다. 사람들이 식탁을 떠난 것이 오
후 5시쯤 되었고. 그제서야 라오메돈은 자신의 연설을 시작했다. 우선 그는
건축가들의 직업 의식과 재능에 대한 길고 긴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는 그간 일어났던 온갖 사소한 사건들을 장황하게 환기하면서 공사 과정의
모든 단계들을 아주 시시콜콜하게 다시 들먹였다. 손님들은 하품을 했고,
심지어는 너무 무거웠던 식사 탓에 앉은 자리에서 졸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8시가 되자 마침내 건축의 역사에 대한 긴 연설을 마친
라오메돈은 공사비 내역에 대한 회계 분석으로써 자신의 연설을 결론짓겠
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3년 간의 공사에 지불되었던 석재, 목재, 모래,
삽, 바구니 등등에 대한 2843건에 달하는 계산서를 일일이 읽어내리기 시
작했다. 그가 모든 걸 다 끝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은 지 오래였고. 횃불을
밝힌 가운데 지친 군중의 박수를 받으며 마침내 마지막 주춧돌이 놓여졌
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급료를 받기 위해 라오메돈의
왕실로 찾아갔다. 왕은 그들에게 말했다.
"자네들 농담하는가? 보수는, 공사가 시작된 날로부터 하루하루 계산해
서 3년째 되는 날 '해가 지기 전에' 마지막 돌이 놓여져야만 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기한이 지켜지지 않았네. 그러니 내가 어제 제공한 만
찬과 자네들을 여러 사람 앞에서 칭찬해준 것을 급료로 생각하게나." 아폴
론과 포세이돈은 어안이 벙벙해서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목이
꽉 막힌 아폴론이 마침내 외쳤다.
"돈을 내놔. 이런... 이런..."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걸맞은 욕설을 찾아내려 했다. '도둑'으로는 충분
하지 않았고, '산적', '사기꾼', '더러운놈' 혹은 '악당' 같은 그런 욕이어야
했다. 포세이돈이 그를 도왔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
'날강도'라는 말은 당시나 지금이나 특별히 염치가 없는 강도들을 지칭했
다. 또한 이때부터 회의에서 끝없는 연설로 투표나 결정을 지체시키는 연
설가를 가리키기도 했다. 라오메돈은 두 건축가의 협박에 아랑곳도 하지
않았고, 정작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한 채 거침없이 그들을 내쫓아버렸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를 상대로 그같은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 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 후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제우스와의 면
담을 요구했고, 그들이 겪어낸 오랜 고통을 감안한 제우스는 그들을 용서
하고 신권을 복원해 주었다. 라오메돈에게 복수하기 위해 포세이돈은 즉시
해일을 일으켜 트로이 주변의 평지를 온통 물에 잠기게 했다. 한편 보건
문제를 담당했던 아폴론은 도시에 페스트 전염병을 퍼지게 하여 수많은 민
중을 죽게 했다. 이런 종류의 자연 재해가 발생하면 당시의 지도자들은 으
레히 신탁을 찾아가 의논했다. 신탁은 신들의 의지를 알고 있다고 여겨진
사제 같은 인물이었다. 라오메돈도 신탁을 찾아갔다. 그 신탁은 비밀을 밝
혀주었다.
"당신이 골탕먹인 그 건축가들은 바로 아폴론과 포세이돈이오. 지금 이
나라에 흥수와 페스트가 번진 것은 바로 그들의 복수 때문이오. 당신 자식
들 중 하나를 바위 위에 묶어 바다 괴물의 제물이 되도록 희생시켜야만 그
들의 화가 풀릴 것이오."
라오메돈은 자식이 둘밖에 없었다 아들은 프리아모스였고 딸은 헤시오네였
다. 길고도 고통스러운 망설임 끝에, 아들은 어쨌든 자신의 왕위를 계승해
야 했으므로, 라오메돈은 헤시오네를 희생시키기로 했다. 그는 신들의 요구
대로 헤시오네를 바위 위에 묶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이 보낸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이 물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보자 딸을 잃게 된다는 생각
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그는 올림포스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했다 "내
딸을 구해주는 자에게 제우스로부터 받은 가장 훌륭한 말 2필을 선물하겠
다."
불멸의 권한을 부여받은 이래 올림포스에서 권태롭게 지내던, 게다가 말을
몹시도 좋아하던 헤라클레스는 아직 자기의 손에 위력이 남아 있다는 걸
과시할 이러한 기회를 대단히 기뻐했다. 그리하여 갑자기 괴물 앞에 나타
나 맨손으로 괴물의 목을 졸라버렸다. 그리고 라오메돈이 약속했던 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라오메돈은 불치의 위선가였다.
"내 가장 훌릉한 말 2필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명
목상의 소유권을 주겠다는 거였지 죽을 때까지 내가 갖게 되어 있는 말의
실제 사용권을 주겠다는 건 아니었네."
"그렇다면 네 그 사용권의 기간을 마감해주지."
헤라클레스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기지를 발휘해 대답하고는 한방의 주먹
으로 라오메돈을 절명케 했다. 그리고 나서 헤시오네를 낚아채어 에게 해
를 건너 자기 친구인 텔라몬에게 선물했다. 살라미스 섬의 왕이었던 텔라
몬은 곧이어 그녀와 결혼했다. 자신이 유난히 좋아했던 누이가 떠나는 모
습을 본 프리아모스는 몹시 심란해졌다. 그래서 누이를 결코 잊지 않을 것
이며 언젠가 그녀를 다시 자기 나라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맹세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맹세가 얼마나 많은 민중의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를 치르어내게 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神話 이야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러스의 판결 (0) | 2012.11.27 |
---|---|
파리스의 탄생과 유년 시절 (0) | 2012.11.27 |
헤라클레스의 죽음 (0) | 2012.11.27 |
헤라클레스의 두번째 결혼 (0) | 2012.11.27 |
거인 안타이오스와 씨름을 (0) | 2012.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