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프 톨스토이

현대인에게 나타난 의식의 분열

별관신사 2013. 6. 21. 06:28

「그러나 진실로, 진실로 내 너희들에게 말하리라―지금 그때가 왔노니
죽은 자는 신의 아들의 소리를 듣고 다시 살게 되리라.」그리하여 그
시간은 이미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생활은 무덤의 저편에서만이 행복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든가, 오직 개인적 생활만이 행복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든가 함을 아무리 인간이 스스로 설득시켜 보더라도, 또 남에게서
설득되더라도 도저히 그것을 믿을 수 없다. 인간은 그 마음 속 깊은 곳에

자기의 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싶고, 이것이 합리적인 의의를 주고 싶은
없앨 수 없는 요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덤 저 편의 생활이라든가
불가능한 개인적 행복이라든가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생활은

악이며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미래의 생활을 위하여 살 것인가? 인간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러나
만약 내가 알고 있는 생활의 유일한 본보기인 이 생활―나의 현재

생활이―무의미한 것이어야만 된다면, 이일은 나에게 다른 합리적인
생활의 가능을 증언해 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인생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이어서 이 무의미한 것 이외에는 따로 어떠한

생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 것인가? 그러나 보라, 나의 개인적 생활은
악이며 무의미하다. 자기의 가족을 위해서 살 것인가? 자기의 사회를

위해서 살까? 조국, 전 인류를 위해서 살까? 그러나 나의 개인적 생활이
만약 불행이고 무의미한 것이라면 모든 다른 개인적 생활도 역시
무의미하다. 따라서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개인생활을 아무리 많이

모아본다 한들 하나의 행복하고 합리적인 생활은 구성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남이 하고 있는 일을 하며 살 것인가? 그러나
보라! 나는 남도 또 나와 마찬가지로 저들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자신도 알지 못한다 함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와 같이하여 이제야 합리적 의식이 그릇된 가르침을 뛰어 넘어서
인간이 생활의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고 설명을 요구할 때가 온 것이다.

오직 생활 양식이 다른 사람들과의 교섭이 없는 소수의 사람들, 또
자기의 육체적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연과의 고된 투쟁에
쫓기우는 사람들만이, 스스로 가기들의 의무라고 이름 붙인 그 무의미한

일의 실행을 저들 고유의 인생의 의무일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내세 생활의 준비를 위해서 현재 생활의 부정―말뿐인 부정―을
주장하는 거짓이나 한갓 개인적 동물적 생존을 인생이라 생각하고, 소위

말하는 의무를 인생의 과업이라고 인정하는 일―그와 같은 기만(欺瞞)이
대부분의 사람을 위해서 밝혀지고, 그저 결핍으로 좌절되고 음탕스러운
생활로 말미암아 둔하게 된 자들만이 겨우 그 생존의 무의미함과 불행함을

느끼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아직 생존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그러한
때가 오기 시작하고 있다. 아니 이미 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더 합리적 의식에 깨우쳐서, 그 무덤 속에서 소생한다.
그리고 인간생활의 근본적 모순은 그것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힘과 명료성을 띠고 뭇 사람들 앞에 일어선다.
「나의 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일편단심이다」라고 깨우친 사람은 자기에게 말한다. 그러나 나의 이성은

나에게 말한다. 이 행복은 나를 위해서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무엇이 되든, 무엇을 얻든 모든 것을 똑 같을 결과―고통과, 죽음과,
절멸(絶滅)에 그치는 것이라고. 나는 행복을 원하고, 삶을 바라고, 합리적

의미를 원한다. 그런데 나 속에도, 나를 에워싼 일체의 것 속에도, 있는
것이라곤 오직 악 죽음 무의미뿐이다. 어찌하면 좋을까? 무엇을 하면
좋을까?―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없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주위를 돌아다보며 자기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으나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주위에, 그가 생각도 안하는 의문에
대해서 답해줄 갖가지 가르침은 찾아볼 수 있으되, 그가 일으킬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의 주위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남들이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고 하는 일을, 자기도 뭇은 영문인지도
모르고 하고 있는 사람들의 들뜬 소란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