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19-31, 이른바 <영원한 잠>에 든 사람들이 이 지상에서의
생활에 대해 확실한 추억을 가지며, 또 이세상의 생활에 뭔가 영향을 끼칠
수가 있는지 어떤지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성서의 어디에도 명백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위에 든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확실히 직접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좌우간, 이 이야기에서 이해되는 것, 또 자연의
논리에서도 생각되는 것은, 오직 좋지 못한 사람들만은 무익하게 보낸 지상
생활을 틀림없이 깊은 후회로써 추억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연히 같은 시대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비록 은총을 입은
사람들 끼리도)다시 서로 만난다는 것, 더욱이 이번엔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은 특별하게 마음의 격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
지상에서의 분명 이상적이 아닌 인간관계에 대한 추억이 저 세상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오히려
그런 관계는 완전히 끊어 버리고 싶으며, 사실 지상의 죽음으로써 단절한
것이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이미 이 지상에서의 정복의 시작이다. 망각의
레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강, 이 강의 물을 마시면 모든 것을
잊는다고 함.)의 냇물이 없고, 온갖 괴로운 것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는다면 정복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단테 (신곡) 연옥편 제 31곡
그렇지만 그처럼 이 세상의 명료한 추억이 있는지 어떤지 극히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서로 사랑했던 고인과 언제까지고 맺어져
있다고 믿는 것은 실로 인정의 어쩔수 없는 소원이다. 또 우리는 실로
그들이 아직 지상의 일을 기억하고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는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간혹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