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무엇인가를 말할 수 없듯이, 신 안에 자기를 몰입시킴으로써
경험하는 모든 것도 말로 나타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바이용의 엘리자벳이
한 이말은 <신비주의>니 <내적생활>이니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사물 그자체>를 서술하는 것을 불가능하며, 또 설사
그것을 기술했다 하더라도 그런 기술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와같은 영혼의 상태의 개개의
결과를 일반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밖에 시도할 수 없다. 그것마저도 항상
착각이라느니 공상이라느니 하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평소 분별도 있고 세상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 생애의
행복을 공상위에 놓는 짓은 쉽사리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그런
세상 경험이야말로, 도리어 세속인들의 행복이 얼마나 공상적인 것인가,
그렇지는 않아도 아주 불안정한 바탕위에 선 것인가를 매일매일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그들 세속인들이야말로 십중팔구 진짜 몽상가이며, 신비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과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겠다. 즉, 신의 말씀에 순종하고 신의 뜻을 꾸준하고 진지하며 충실히
수행하는 것, 오직 이길만이 대체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완성으로
인도하는 길이며, 그밖의 어떤 길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밖의
다른 종류의 신비주의는 모두 큰 잘못이며, 또 그것이 매우 소박하고
선의의 것이 아니면 역시 영혼을 몹시 손상하게 된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힐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알 힐티의 생애와 사상> (0) | 2015.02.02 |
---|---|
12월 31일 (0) | 2015.02.02 |
12월 29일 (0) | 2015.02.01 |
12월 27일 (0) | 2015.01.31 |
12월 26일 (0) | 2015.01.30 |